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유월 중순에 한여름처럼 더위가 몰려왔다. 며칠간 창문을 두어 뼘 열어 두고 잤다. 이 계절이면 먼동이 밝아옴과 동시에 눈이 떠지는 건 어렸을 때나 나이를 먹은 요즘이나 한결같다.
언제부턴가 이 무렵 잠에서 깰 때면 유난히 시끄럽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창밖에는 아직 어둠이 밝음보다 더 진하게 깔린 시각이다. 여느 해나 다름없이 갓 이소한 새들이 비행 연습 중에 내는 소리려니 했다. 어미 품을 떠나 세상을 향해 첫 날갯짓을 하면서 먹이도 찾고 짝도 찾아야 하는 바쁘고도 위험할 수 있는 자신을 동료나 형제에게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여명 속에서 어리다고 추측하는 새들이 예닐곱 마리씩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몰려갔다 몰려오곤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 요즘이다. 그때마다 새들의 지저귐이 왁자지껄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나무와 나무가 만든 사잇길에도 골목대장이 있음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녹음 짙어가는 새벽이다.
때때로 소란스러움을 느끼면서 그대로 다시 잠을 청하면 바로 잠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런 날은 개운하다. 하지만 오늘처럼 한 번 깬 잠이 멀리 달아나 버린 듯 다시 잠을 이룰 수 없는 날이 훨씬 더 많다. 그럴 때면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소란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와, 짝을 찾았네. 그것도 이 새벽에.' 작지만 기쁜 탄성이 나도 몰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이 신새벽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한 몸인 듯 날고 있는 새 두 마리에 시선이 꽂혔다. 새 두 마리는 삑삑삑삑 노래하며 나는데 여명 속 나무들은 어지러운 새소리에 일찍 눈뜬 나처럼 피곤한 건 아닌가 싶었다. 문득 황조가와 그 주인공 유리왕 이야기가 떠올랐다.
翩翩黃鳥(편편황조) 펄펄 나는 저 꾀꼬리
雌雄相依(자웅상의) 암수 서로 정답구나.
念我之獨(염아지독) 외로울사 이내 몸은
誰其與歸(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유리왕은 첫 왕비가 죽은 후 화희와 치희를 후실로 들였다.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두 여인은 질투가 심하여 서로 화목하게 지내지 못했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나간 사이 두 여자는 크게 다투었고 한나라 여자인 치희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은 치희를 데려오려 뒤쫓아갔으나 마음을 다친 치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꾀꼬리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왕이 자신의 심정을 빗대어 노래한 시가 바로 이 황조가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노래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이 시가를 접한 때는 중학교 2학년 때다. 정책 때문이었는지 학자들의 이론이 세를 얻었다 잃었다 한 때문이었는지 우리 학년은 한자를 배우다 말다 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런 과정에 중2가 되면서 한자 시간이 따로 생겼다. 한자를 배우는 건 싫지 않았으나 열다섯 나이에 남녀 간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더 나아가서는 실연의 아픔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 몸 어딘가가 아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는 하다. 하기야 국어 교과서에서는 인간애가 넘치는 글 외에도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시나 글들이 참 많이도 실린다. 춘향전은 단골 메뉴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세상길을 걸으며 그 시기를 돌아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경험해 본 적도 없고 경험하기 쉽지 않은 사랑이야기를 교과서에 싣는 뜻을 나름대로 정리하게 되었다. 교과서를 통해 우선 타인의 사랑을 맛본 후에 실제 사랑에 적용하라는 깊고 깊은 뜻 말이다. 모든 교과 과정이 내포하고 있는 심오한 뜻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관한 내용이야말로 대부분이 미래에 적용 가능한 것들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한 쌍의 새들은 우듬지쯤에 내려앉는 듯하더니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르기를 몇 차례 더 했다. 그런 다음 나무와 나무 사이로 들더니 오래 나타나지 않았다. 그 여운을 아침을 여는 자동차 소리들이 어지럽게 지우며 지나갔다. 뒤를 이어 다른 새들이 몇 마리 날았고 동녘이 밝아오면서 눈을 뜬 많은 소리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기 시작했다. 까마귀 한 마리가 건너편 옥상 난간에 날아와 앉아 짝을 부르는 듯 깍깍 노래했다. 부엉이 울음소리 비슷한 낮은 울림도 섞였다.
방으로 들어와 아직 깊은 잠 중인 남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남편은 어제 코로나19 예방 백신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받았다. 아직까지 이상 반응은 없다. 부디 남편 몸이 예방 백신을 잘 받아들여 코로나19 항체가 생성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얼마가 남아 있을지 모를 노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기를 빈다. 2~3일간은 특히 주의를 기울이며 관찰하고 그 후로 적어도 28일 동안은 지켜봐야 한다는 안내 글귀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유리왕이 황조가를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의 슬픔을 노래했다면 오늘 이른 아침 나는 이름 모를 새들의 비행을 보며 나이 듦이 주는 우리 부부의 사랑을 생각한다.
사랑을 소리 없이는 할 수 없는 시기가 있다.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 진정한 사랑일 것 같은 사랑 말이다. 사랑을 향기 없이 할 수 없는 시기도 있다. 사실은 향기가 사랑을 하게끔 유혹한다는 말이 맞겠다. 사랑에 관한 한 특별히 더 요란하고 유별난 사랑도 종종 만나곤 한다. 사랑이 지나쳐 싸움질로 변하는 예도 적지 않다.
어디 아득한 산에서는 밤꽃이 피었는지 비릿한 밤꽃 내가 두어 뼘 열어둔 창으로 새어 들어왔다. 문을 닫았다. 새벽의 서늘한 기운과 여기저기 난무하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뚝 끊겼다. 해가 얼마큼 가까워지고 있나 보다. 새벽잠을 깨울 정도로 요란스러운 새들의 사랑질에 미소가 지어진다. 사랑이라서 그렇다. 어쩌면 새들의 사랑놀음에서 첫사랑을 본 것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곱고 밝은 햇살 물이 사방으로 번지는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