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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Oct 30. 2022

9. 아줌마는 어른 아닌가요?

27. 화장실에서 보자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의 다급한 목소리, 깨랑이였다. 아이는 다급한 마음만 짧게 전했다. '점심식사 후 친구와 화장실에 다녀오는 중이었다. 6학년 언니가 수업 끝나고 화장실에서 보자고 했다.'

  “깨랑, 화장실에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 그 언니 이름 알아? 은별이? 어느 동네 사는데? 그래. 알았어.”

  같은 반 회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은 나중에 이야기할 테니 6학년 은별이네 전화번호를 빨리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몇 다리를 거쳐 알아봤는지 30여 분 후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아이가 헐레벌떡 달려들어왔다. 눈에는 겁이 잔뜩 담겨 있었다. 괜찮아. 아이를 안고 다독였다. 아이는 자신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아이가 되어 있음을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운동회 율동 건 이후 학급이나 학년 전체 앞에서는 결코 튀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아이의 뒤를 따라다니지는 않았으니 아이가 엄마 눈이 머물지 않는 장소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려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믿어서 그랬는지 내 눈에는 집에서의 아이 행동 역시 차츰 여러 사람 앞에 나서는 일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은별이네 전화를 넣었다. 저편의 목소리는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은별이 동생이었다. 내가 깨랑이 엄마라고 밝히자 은별이는 은별이는 사과부터 했다.

  “죄송해요, 아줌마. 잘못했어요.”

  동생과 함께 온 은별이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동생도 따라서 무릎을 꿇었다.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니 편히 앉으라고 말문을 열었다. 미리 시켜두었던 피자가 도착했다. 

  “그냥 노래도 잘하고 재미있는 아이 같아서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은별이가 피자 조각을 든 채 머뭇거리며 말했다. 체격이 우리 아이처럼 자그마한 동생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은별이는 6학년이라고 하기엔 많이 성숙한 티가 났다. 얼굴에는 여드름이 시작되고 있었으며 살집 많고 키 큰 여고 1학년쯤으로 보였다. 반면 동생은 3학년이라는데 맨 앞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생각 같아서는'이란 말을 '현실을 생각하면'으로 바꿨다.


  “아줌마가 널 야단치려고 보자고 한 건 아니야. 그런데 왜 화장실로 불렀을까? 화장실은 은별이도 알다시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과 좋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나는 데는 아니지 않니? 화장실에서 보자고 하면 많은 아이들이 겁부터 먹지 않겠니? 보다시피 우리 깨랑이도 네 동생처럼 체구가 작잖니. 어렸을 적엔 힘센 사람이 때리면 약한 아이들은 맞을 수밖에 없단다. 은별이 넌 마음까지도 건강해 보여 좋은데.”

  동생이 나서며 저도 키 큰 형한테 맞고 울었던 일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은별이가 팔꿈치로 동생을 쳤다. 

    

  다음날 저녁 무렵, 아담한 체구의 은별이 엄마가 은별이 동생과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다. 직장 다니느라 은별이에게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이며 동생까지 다 맡겼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며 거듭거듭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냥 넘어가셨더라면 우리 은별이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아찔하네요. 어제 은별이와 이야기 많이 나눴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얘도 동네 형한테 크게 맞고 돈도 뺏겼던 적이 있거든요.”


  화장실, 뒷간, 측간. 그곳은 아무리 깨끗하고 고급스럽더라도 그 이름의 냄새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배설의 냄새 가득한 곳이다. 그곳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하며 결과에 대한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탁했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생리적 볼일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이 공간이 누군가를 험담하거나 위협하는 장소는 아니기를 바란다. 



28. 생각하는 산수공부     


  선행학습을 반드시 학원에 다니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전혀 상상 밖의 계산 문제 하나를 틀렸을 때 스스로 회초리를 들고 와 몇 대 맞겠다고 했던 적이 있다. 살아가면서 일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을 때 아이가 이때를 가끔 상기하기를 바란다. 아이는 단순 계산 문제만을 일주일 이상 풀고 또 풀었다. 다시는 유사한 문제에서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다짐이었다.     


  학교에서 과학탐구반 학생들을 상대로 ‘생각하는 산수공부’라는 책을 권했다. 난이도에 따라 단계별로 잘 편집된 책이었다. 몇 해 즐겁게 해 오던 공부방을 접어야 할 큰 이유도 생겼으니 ‘생각하는 산수공부’는 아이에게 ‘혼자 하는 산수공부’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내리라 믿었다.     

  공부방도 접었으므로 ‘생각하는 산수공부’를 아침 등교 전 두세 문제 정도 푸는 게 어떨지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가 그러마고 대답했다. 아침잠 많은 아이에게는 공부방 접기를 바라던 저의 바람을 받아준 엄마의 제안을 물리치기 힘들었을 수도 있었다. 


  “오늘은 세 문제만 풀고 밥 먹자.”

  아침식사 전 씻고 나온 아이에게 문제집을 내밀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꺾쇠 표시를 해 둔 세 문제를 훑으며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책을 펼쳤다. 때때로 문제 풀기를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공부가 최고야‘를 외치며 생각하며 문제를 푼 아침을 상쾌하게 맞이하곤 했다. 기특한 반면 눈을 비비며 아침 문제 풀이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주 드는 생각이지만 아이들이란 목에 끈을 매단 가축과 같아서 목줄을 잡은 이가 이끄는 대로 이끌려가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런 생각은 친정에서 키우던 하얀 강아지 천만이와 함께 떠오른다. 오래전 첫눈 성글게 내리던 오후였다. 건강 때문에 흰 개를 찾는다는 환자의 보호자에게 목줄을 넘기는 순간 천만이는 고개를 두어 번 돌려 나를 바라보았을 뿐 아무런 저항 없이 성근 눈발 속으로 사라졌다. 곧 세상과 이별할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목줄을 잡을 사람을 따라가고 있었다. 오래도록 지켜보았던 천만이의 뒷모습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힘없는 어른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 이건 좀 어려워요. 학교 다녀와서 풀게요.” 

  “엄마, 다 풀었어요. 오늘 문제는 정말 생각하게 하네.” 

  아이의 아침 산수공부는 오래 지속되었다. 때때로 아이가 진정 즐거워서 산수 문제를 푸는지, 싫지만 엄마와의 약속을 깰 수 없어 억지로 푸는지 눈치를 살피곤 했다. 목줄을 쥔 어른이고 싶지는 않았으나 목줄을 쥐고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아이를 끌고 가는 건 아닌가 의문을 품던 시절이었다. 



29. 회장단 선거 패배     


  어려서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가난한 아이들은 눈치가 백 단이었다. 학급 반장조차도 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학교 나들이가 받쳐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임을 알고 있었다. 반장으로 뽑힌 친구가 극구 반장을 하지 않겠다고 물러서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 다음으로 반장이 된 아이들까지 서너 명은 줄줄이 사양하다 선생님께 걱정을 듣기도 했다. 결국은 옷 잘 입고 오는 아이가 반장 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의 엄마는 담임선생님과도 친했지만 교장선생님 방에도 자주 드나들 정도로 친하다고도 알고 있었다.

  시대가 변하여 국가 경제 수준의 향상과 함께 가정 경제 수준도 내 어린 시절과는 격세지감이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내 아이가 학급 회장이 되었다고 해서 그 반 아이들에게 한 턱 내지 못할 엄마는 없다. 육성회장이나 어머니회장 자리는 엄마들 사이에서 대체로 이미 내정된 상태로 진행되곤 한다. ‘**이 엄마가 육성회장 해.’라는 식이다. 첫째는 이런 지원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어려서부터 학급의 회장은 자주 맡았다.


  6학년 초, 첫째가 회장단 선거에 출마했다. 회장단이 엄마의 여러 역량과도 관계가 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아이의 회장단 출마를 손뼉 쳐 가며 환영하지는 않았다. 본인이 선거 문구를 만들어 자문을 구하고 약간은 들뜬 듯 즐거워하는 데야 격려까지 마다할 수는 없었다. 

  회장단 선거 날 아침, 첫째에게 일렀다.

  “깨랑, 회장단 선거에서 좋은 결과 있기 바란다. 혹 회장단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기죽을 일이 아닌 것도 잘 알았으면 좋겠고. 그리고 딸이 회장단이 되지 않더라도 회장단에 뽑힌 친구에게는 축하해 줄 줄  여유도 잊지 않는 딸이길 바란다.”

  기왕 시작한 대결이니 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첫째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집에 돌아온 첫째가 눈가를 적시며 알려주었다.

  “엄마. 네 표 차로 떨어졌어요. ***이가 회장, ***이와 ***이가 부회장이 됐어요. 그리고 엄마가 일러주신 대로 회장단 아이들에게 축하한다고도 말해 줬어요.”


  아이를 끌어안으며 위로를 보냈다. 회장단에 든 친구들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라던 내 주문이 아이에게는 잔인했을 수도 있었다. 이 회장단 선거가 삶의 긴 여정에서는 그렇게 큰 의미를 둘 일도 아니므로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을 단단히 잡아매고 언제나 당당하라는 뜻이었을 뿐이다. 아이가 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지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스스로 판단할 것이다.     

 

  격려 외에는 어떤 조언이나 도움도 없었던 엄마와 아빠에게 서운한 마음을 표현했을 법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에둘러 장래의 자신을 다지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아이의 말에서 나오는 힘에서 지금은 한없이 작지만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 그 이상을 느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그 흔하면서도 화려한 초콜릿 상자는 한 번도 아이의 차지가 아니었다. 아이는 다소곳하지만은 않았다. 예의 바르되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었다. 삶의 어느 시기에나 볼 수 있는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여자 아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타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힘으로 굳건히 설 때까지는 보호자의 손을 빌리더라도 언젠가는 스스로 우뚝 서겠다는 의기가 넘쳐흘렀다.          



30. 아줌마는 어른 아닌가요?     


  같은 동에 사는 둘째의 놀이 친구 엄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녀도 나도 둘째가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는 아이를 둔 엄마로서 눈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였다. 늦은 결혼에 늦은 출산으로 나이 든 엄마인 나는 그러나 나이 든 엄마들의 전형은 아니었다. 소위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젊은 엄마들에게 슬쩍 말을 놓는다거나 상식을 전문지식인 양 아는 체를 하는 식으로 나이 든 티를 낸 적은 없었다. 젊은 엄마들 중에는 요즘 난무하는 ‘언니’가 아닌 언니로 나를 부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또한 탓할 일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것보다는 젊은 엄마들에게서 배울 점이 훨씬 많았다. 그녀가 귀갓길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귀갓길에 먼발치에서 우연히 둘째들끼리 노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 서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더니 그녀의 둘째가 우리 둘째에게 모래를 끼얹었다. 그녀가 말리기 위해 걸음을 빨리하는 사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큰 깨랄이 나타나 동생의 머리에 뿌려진 모래를 털어내면서 그녀의 둘째를 나무랐다.

  “민선아. 친구끼리 그러면 안 되지. 이제 뭐야?”

  갑자기 등장한 큰 깨랑의 호통에 그녀의 둘째가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잰걸음으로 다가가며 한 마디 했다.

  “야, 너는 언니가 돼 가지고 왜 애들 노는 데 끼어드니? 넌 6학년이고 얘들은 1학년이야.”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튀어나온 첫째의 다음 말이 그녀의 말문을 막았다. 

  “그럼 아줌마는 왜 애들 일에 어른이 끼어드세요? 제가 어른인가요, 아줌마가 아이인가요?”

  “......”

  “애들이든 어른이든 놀이가 싸움으로 번지면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 동생이 아줌마 딸 머리에 모래를 끼얹었더라도 저는 같은 말을 했을 거예요. 잘 놀다가 친구가 제 맘에 들지 않는다고 친구 머리에 모래를 끼얹는 건 아니죠.”

  “......”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그 순간에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아줌마에게 알려드리려고 전화를 걸었다.     



  큰 깨랑이 지나쳤던 건 아닌지 나는 민선 엄마를 위로했고 민선 엄마는 오히려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아녜요. 아이들에게도 나름 이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이치를 풀어내는 재주가 부러웠구요. 나는 그런 이치를 지금까지 전혀 눈치 못 채고 살았네요.”

  첫째에게 둘째 친구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첫째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내가 아줌마 아이를 혼내는 장면만 본 것 같아서 속상했어요. 대들려고 했던 건 아니구요, 대들지도 않았어요.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다 보니 어쩌다 대든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야’가 뭐예요, '야'가. 아줌마가 내 이름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야’ 소리를 들은 순간 이 아줌마가 화가 났구나 싶으니까 나는 더 화가 났다고 알려주고 싶었구요. 적어도 내가 왜 그러는지 물어보고 시작해야죠. 그리고 자기 동생 머리에 모래를 끼얹는 걸 보고 화 안 날 언니 있어요? 나도 화가 나 있는 걸 꾹 참고 한 마디 한 건데 그걸 애들 일에 언니가 왜 끼어드느냐고 해서 나도 한 마디 했을 뿐예요. 그 아줌마가 어른인 건 사실이고 애들 일에 끼어든 것도 사실이니까요.”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첫째의 말을 귀담아 들어준 둘째 어린 시절의 그 친구 엄마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 아이들은 주변의 이런 영양가 풍부한 관심으로 더 바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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