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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Oct 30. 2022

10. 왕따? 웃기고 있네

31. H.O.T      


  “이 노래 바로 뜬다. 엄청 뜰 거야.”

  처음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들으며 나는 흥분하며 단언했다. 내 말을 듣고 첫째가 반색을 하며 두 손을 모았다. 진짜 떴다. 이후 아이들은 제 맘에 드는 새 노래가 나오면 곧잘 내게 들려주며 묻곤 했다. 이 노래 정말 맘에 드는데 이 노래도 뜨겠느냐고 내 귀에 뜨거운 바람을 넣곤 했다. 그걸 다 맞힐 수 있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겠는가, 이 가상한 따님아. 그래도 히트할 거라 찍었던 노래들 중 꽤 많은 노래들이 오래도록 유행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등장한 아이돌이 H.O.T다. 소녀들의 환호성만을 먹고도 충분히 살 수 있는 대중가요의 시대의 도래였다. Highfive Of Teenager의 앞글자로 알고 있다. 두 아이 모두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즐겨 부르기도 한다. 이 부분은 아이들이 모두 남편을 닮아 흥을 드러낼 줄 아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나는 합창이나 중창의 화음을 즐긴다. 열 번을 들어도 곡명조차 외우지 못하는 클래식도 좋아한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건 아주 투명한 침묵이다. 침묵 속에 침잠할수록 편안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가족과 약간의 불협화음 인자임을 인정한다.      


  첫째는 서태지와 아이들 바로 다음에 등장한 H.O.T에 더 열광했다. 아이의 사춘기 시작과 맞물려 등장한 H.O.T는 당시 소녀들의 우상이었다. H.O.T 브로마이드를 모아 침대 밑 공간을 차곡차곡 채웠다. 침대 머리맡에는 실물 크기의 큰 장우혁이 버티고 서 있어 아이 방에 들어설 때면 불편한 심기를 숨길 수 없었다. 

  “저것 좀 떼라. 큰 남자가 우리 딸 방에 떡 버티고 있는 게 엄마는 많이 불편하네.”

  첫째의 눈빛이 언제부턴가 약간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추운 일요일 아침, 일이 터졌다. 엊그제 집으로 배달되어 온 팬 카페 회원 관련 안내장이 발단이었다. 음악에 빠진 웃음 뒤에 엄마에게 숨기려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참기 힘들었다. 드디어 아이의 방을 뒤집었다.      



  H.O.T H.O.T H.O.T H.O.T H.O.T H.O.T H.O.T H.O.T H.O.T H.O.T H.O.T H.O.T H.O.T..........     



  갱지 연습 노트 한 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 글자로 채워져 있었다. 껄렁해 보이는 검은 통바지 두 벌은 상자 안에 숨겨져 있었다. 모두 침대 밑 브로마이드 상자 안쪽 깊숙한 자리에서 죄수처럼 끌려 나왔다. 남편이 ‘그러다 당신이 쓰러지겠다’는 걱정 한 마디 했을 뿐 조용한 가운데 내 행동이 만들어내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이윽고 일이 끝났다. 10만 원짜리 수표 석 장과 약간의 현금을 챙겨 바닥에 놓았다. 일련의 행동을 하는 동안 나는 지나칠 정도로 침착했다.

  “나가. 현금은 당장 수표를 바꾸기 어려울 것 같아서 챙겼다.”


  자식에게 이런 말을 뱉는 순간의 심정은 같은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러나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면 어떡하나?’란 생각은 나가라는 말을 내뱉기 전부터 머리를 짓눌렀다.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한다 하더라도 바로 화해가 되지는 않을 일이었다. 잠시 마음을 찢는 말들이 조용하게 오가고 '죄송해요' '엄마가 과했다' '죄송해요' '거짓말은 안 된다' 등으로 버무리며 둘이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어쩌란 말인가. 어른이라는 나도 나를 모르겠는데 저 중학교 2학년짜리 아이의 난감함이야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그레이엄 그린의 ‘인간의 심연’ 중 한 마디가 떠올랐다. ‘그 끝이 절벽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할지라도 시작한 이상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 이보다 적절한 말이 있을까. 

  아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었다.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수표와 현금을 집어 들었다. 표정 접은 아이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아이가 꿇었던 무릎을 세우며 일어섰다. 순간 내 몸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의 손목을 잡아챘다. 아이가 휘청했다. 어른이란 그런 것이다. 제 입에 맞게 다 짜 놓고 각본대로 흘러가면 또 이현령비현령으로 저만 빠져나간다. 남편이 나섰다.

  “잘못했다고 말씀드려야지 어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아이는 빌지 않았다. 다짐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철이 들 무렵 두 손을 비비는 일은 파리가 할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빌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될 일이다. 아이가 돈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발자국 위로 눈물 몇 방울을 더 떨궜다. 아이는 문도 닫지 않았다. 오히려 활짝 열어 두었다. 그것은 몇 해 전 엄마가 부탁했던 말을 떠 올려서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문을 쾅 닫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을 그 순간을 아이는 없었던 일로 지워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로서는 과거에는 물론 현재나 미래 어느 때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그것이 아이가 가진 정체성이다.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이는 천사와 지옥을 동시에 품은 엄마라는 긴 터널을 잘 참고 견뎠다.          



32. 왕따즐기면 되지     


  첫째가 드디어 중학생이 되었다. 입학한 지 두어 달쯤 지났을 무렵 학교에서 돌아온 첫째가 요즘 학교 생활이 많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이유인즉, 하지도 않은 일, 있지도 않은 일로 첫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급우들 사이에 떠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름 하여 왕따가 되어 있었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지냈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중 비로소 알게 되었다며 낙담한 표정이었다. ‘잘난 척 마녀에 엄마가 과외선생이라고 으스댄다’는 식의 소문이었다. 과외를 그만둔 지 삼 년이나 지났는데 그런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굴까?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퍼뜨렸는지 알 수 없지만 과외를 했던 일은 사실이다. 선생님께서 조금만 더 관심 갖고 지켜봐 주시면 깨랑이가 무턱대고 잘난 체하거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아이가 아님은 금세 아시게 될 거다.’      


  얼마 후 학교 행사 때 선생님을 뵈었다.

  “깨랑이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시샘받을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바람결처럼 저 또래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극복하면 삶의 보약이 되리라 믿어요.”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드렸는지 모른다. 살아가는 동안 선생님이라는 안내자만큼 공평한 사람을 만나기를 쉽지 않다. 독불장군은 없다. 급우들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만한 관계를 회복했다.


  당시 아이에게 엄마는 왕따를 즐겼다고 알려주었다.

  “괜찮아. 왕따는 나 스스로 즐길 수 있으면 최고의 시간이 될 수 있어.”

  “?”

  “엄마가 잘났다는 뜻은 아니야. 엄마 같은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야. 엄마는 왕따를 즐긴 사람 중 한 사람이라 생각해. 시끄럽게 떠들고 별 것도 아닌 일로 잘났다고 다투고 아우성치는 아이들 사이에서 엄마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수학 문제를 풀곤 했어. 걔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도 한 적 없고 내 자리를 옮겨 앉지도 않았어. 묵묵히 내 자리에서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와 거의 말을 섞지 않았어. 그렇다고 자신들의 성향을 감추려 들지도 않았지. 같은 반에 두어 명 정도 나와 이야기 나누는 친구들이 있었을 뿐이야. 나와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이었지. 자리는 이 끝이나 저 끝으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성향 자체가 그러니 같이 모이는 일도 별로 없었고 모여 앉아도 할 말만 하고 이내 조용해졌지.”

  “힘들지 않았어요?”

  “원해서 왕따가 됐는데 힘들 이유가 없지. 시험 끝난 날 우리 학교에서는 소위 말하는 일류 극장으로 단체 영화 관람을 가곤 했어. 엄마는 영화 관람 요금이 비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아까웠지. 영화관에 오가는 시간과 영화 관람 시간까지 합하면 세 시간은 족히 되지 않니? 도서관에서 그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내 맘에 드는 책 한 권은 뚝딱인데 영화만 권하는 게 맘에 들지 않기도 했어. 물론 영화 안 본다고 징계를 받지도 않았어. 어쨌든 내 곁에는 가끔 나와 같은 성향의 친구들이 모이곤 했지. 일종의 소수파였다고나 할까. 선생님들 누구도 나의 이런 행동에 대해 관심 가진 분은 없었겠지만 말이야.”


  당시 내게는 영화 한 편 관람료가 높은 벽이긴 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마음 자세로 그 상황을 대하는가에 따라 삶은 다른 길을 열어 준다. 어떤 마음 자세를 취하든 그에 걸맞은 결과로 이끄는 것 또한 삶은 잘 설계해 놓았다. 설계 변경 가능성 역시 무궁무진하다.           


         

33. ‘웃기고 있네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말을 많이 하게 되고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흐트러진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날은 낮 동안에 같은 동 주민들과 분리수거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분리수거를 주민이 할 것인지 주민이 한다면 참여하지 못한 세대는 벌금을 물려야 한다든지,  분리수거 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등 좋은 의견이 많이 나왔다. 그중에는 한 번 던져보는 말도 안 되는 의견도 있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얼토당토않은 의견을 낸 사람에게는 속엣말을 한 마디씩 던졌다. 누군가 작은 소리로 당시 유행 중이던 ‘웃기고 있네.’라고 말했다. 처음과는 달리 약간 어수선해지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 모임 시간에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모처럼 가족들이 둘러앉은 저녁시간이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던 중 큰 아이의 이야기에 한 마디 토를 달았다. 낮 동안 의견 수렴 때 한 번 크게 뱉었어야 할 ‘웃기고 있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딸의 말에 대한 반박으로 튀어나왔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들으면서 사실은 마무리가 깔끔하게 끝나지 낮 동안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첫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엄마, 어떻게 엄마가 딸에게 ‘웃기고 있네.‘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엄마 맞아요?”


  말을 뱉은 나도 깜짝 놀랐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아까운 딸의 의견에 ‘웃기고 있네.’라니. 주워 담고 싶었으나 가족들의 귀청을 때린 말의 여운만 남았다.

  “엄마가 전에 그랬죠. 나와 친한 누군가가 누가 나를 ‘야’라고 부른다면 결코 돌아보지 말라고. 엄연한 내 이름을 아는 상대가 내 이름 대신에 ‘야’라고 부르는 건 나와 친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고. 왜 ‘야’라고 부르느냐고 따지면 상대는 그럴 거랬지. ‘친한 사이에 야는 어떻고 이름이면 어떠냐’며 오히려 의아해할 거라고. 하지만 ‘야’라는 부름에 고개를 돌리거나 대답을 한다면 앞으로도 나는 주욱 ‘야’라고 불러도 좋다는 첫 단추를 그것도 스스로 끼우는 거라고. 친할수록 이름을 불러주는 게 예의라고. 엄마 얘길 듣고 나서 누가 나를 ‘야’라고 부르면 머리끝이 쭈뼛했었어요. 그 친구에게 내 이름을 불러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었어. 그런데 엄마 나 조금 전에도 나를 ‘야’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상으로 머리끝이 쭈뼛 선 거 아세요? 남도 아닌 엄마가 딸인 나한테 ‘웃기고 있네.’라니. 우리 엄마 정말 변했다......”     


  낭패였다. 나도 내가 이런 말을 뱉을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길 바랐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 말과 물이라 했다. 딸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낮 동안의 일을 열거해 가며 이해해 주기를 원했다. 딸은 즉답을 피했다. 방에 들어가 문을 조용히 닫았다. 저 순간 역시 문을 꽝 닫고 싶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 딸이 나왔다. 시무룩해 있는 내게 오히려 사과했다.


  “엄마 마음 상하게 했다면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오늘 엄마의 ‘웃기고 있네.’는 앞으로 두고두고 한 번씩 꺼내 맛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진심 죄송하지만 저 또한 진심 놀랐어요.”

  “그래,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 네가 사과할 것까지는 없어. 엄마가 잘못한 건데.”

  딸에게 거듭 사과하며 그 순간을 넘겼다. 그러나 딸의 말대로 심심하면 그때의 ‘웃기고 있네.’가 튀어나와 나를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       


  그때부터였다고 생각한다. 배려의 기본은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다. 마음은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사회 전반적으로 거친 언어를 용인하는 풍조가 번지고 있었지만 내 생활에 여유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언어가 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여겨지면 바로 지적해 주기를 주문했다. 부탁의 효과가 있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예전처럼 바르고 고운 말만을 사용하게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력과 반대로 가지는 않았다. 배려라는 바탕 위에서 공평은 빛난다. 아이가 삶의 기본 바탕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했는지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하는 속에서 하나 둘 펼쳐지리라 믿는다. 노력의 과정은 힘들고 어렵지만 그 결과는 노력을 배반하지 않기에 말이다.




맺음말      


   삶의 첫 계단에 올라선 아이와의 사이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하고 버려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시대가 변하여 골동품 상에 가 있어야 할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노력이 노력으로 끝나 버리는 건 아닌가 회의에 빠졌던 날도 많았습니다. 

  내가 엄마 자격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처음 엄마가 되어 좌충우돌 속에서도 사람됨만은 잃지 않기를 바라며 떠오른 것이 엘리트였습니다. 엄마가 바라는 인간상으로 아이가 성장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기로 합니다. 어쩌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성인이 된 오늘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는 배려와 공평을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 스스로는 배려와 공평을 잃는 모순은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부모는 아이의 성장과 함께 성장합니다. 지금 아이는 첫 계단이 가물거릴 만큼 여러 계단 위에 서 있습니다. 첫 계단을 탄탄히 디디지 않았다면 두 번째 계단부터는 허상이었을 것입니다. 첫 계단에 올랐을 때의 그 감동으로 알림장을 읽습니다.

  첫 아이의 이야기부터 정리했습니다. 깨랑이는 제가 두 딸들을 부르는 애칭입니다. 첫째는 큰 깨랑, 둘째는 작은 깨랑, 함께 부를 때는 깨랑이들이죠. 아이들을 키우는 마음으로 읽어 주셨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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