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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Oct 30. 2022

6. 엄마와 타협하다

18. 담임선생님의 전근     


  1학년 1학기가 끝나기 얼마 전이었다. 아이의 피아노 학원 원장인 육성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담임선생님께서 신설 동네 신설 학교로 전근을 가신다는 소식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날, 육성회장을 비롯한 같은 반 엄마들이 학교에 모였다. 나는 아무 감투도 쓰지 않았지만 학교 바로 앞에 산다는 명분으로 그 엄마들 사이에 끼었다. 담임선생님이 이렇게 된 사정을 설명하고 새로 담임이 되실 선생님을 소개했다. 교실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말 한마디에 전 담임이 되어 버린 선생님 팔을 잡고 다리에 매달리며 “가지 마세요, 선생님.”을 외치는 아이들에 책상에 엎드려 훌쩍거리는 아이들, 아직 뭐가 뭔지 분간이 서지 않는 듯 멀뚱 거리는 아이들이 지금도 한 폭의 그림처럼 떠오른다. 한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과 헤어지는 아이들의 마음에 동화되어 엄마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전 담임이 되어 버린 선생님은 난처한 듯 아이들을 어르고 달랬다. 새로 오신 선생님은 헤어질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과 전근 가실 선생님, 그리고 방관자인 듯 아닌 듯한 엄마들이 소용돌이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교실 한쪽에 서 있었다. 엄마들이 아이들의 소동을 말리며 교실은 조금씩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아이를 비롯한 몇 아이들은 아직도 작은 소리로 선생님을 부르며 일어서서 창밖을 내다보거나 눈물을 흘렸다. 새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섭섭함을 다 털어낼 때까지 기다릴 작정인 듯 아무 말이 없었다. 교대를 갓 졸업했을 법한 앳된 여선생님이었다.


  참다못한 내가 교단에 섰다. 그리고 아이들의 주의 집중을 위해 손바닥으로 교탁을 한 번 쳤다. 내 행동이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에게는 월권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지낼 새 담임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더는 보고 있기가 민망했다.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뜨뜻 미지근한 나를 행동하게 했다.

  “여러분, 1학기 동안 여러분을 가르쳐 주신 담임선생님은 다른 동네 살고 있는 여러분의 친구들을 가르치기 위해 다른 학교로 가셨어요. 그리고 지금 여기엔 여러분을 가르쳐 주실 새로운 선생님이 와 계십니다. 여러분이 가신 선생님께 정이 들고 감사하여 울고 매달린 것은 여기까지였으면 좋겠어요.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여러분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데 여러분은 언제까지 선생님을 기다리시게만 할 건가요?”

  슬픔으로 울며 충혈된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여러분, 가신 선생님이 아쉬워 눈물 흘린 만큼 더 큰 박수로 새로 오신 우리 선생님을 환영합시다. 자, 박수.”

  “맞습니다.”

  엄마들이 먼저 박수를 쳤다. 아이들은 주변을 돌아보며 서먹하게 박수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언제 울었더냐 싶게 손바닥이 터져라고 크게 오래도록 박수를 쳤다.


  새 담임선생님은 앳된 인상 그대로 이번 해 교대를 졸업했으며 이 학교가 첫 부임지이며, 아이네 반에 처음 담임으로 오게 되어 반갑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다른 학교로 가신 선생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열심히 여러분과 생활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아이들은 다시 한번 선생님께 큰 박수를 드렸다. 처음 맞이한 뜬금없는 이별을 아이들은 나름대로 잘 소화해냈다. 살아가는 동안 앞으로 아이들 앞에 펼쳐질 이별 또한 이 아이들은 잘 헤쳐 나가리라 믿었다.          



19. 내가 음악 실기 백 점 받은 게 싫어요?     


  새 담임선생님이 오시고 바로 학기말 시험이 있었다. 아이는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엄마 엄마, 나 음악 시험 백 점 받았어요.”

  “그래. 잘했네. 시험지도 갖고 왔니?”

  “아니, 노래 부르기였어요.”

  “어? 노래 부르기를 백 점 받았다고? 아니 어떻게 노래 실기를 백 점을 주실 수가 있지?”


  내 상식으로 실기 백 점은 거짓말이었다. 무엇보다 음악 실기에서 백 점을 받아본 적 없는 내게는 당연했다. 그래서 한두 번도 아니고 거듭거듭 ‘아니 어떻게 음악 실기가 백 점이야? 이상하네.’를 연발했다. '딸이 실기 백 점 받을 정도로 완벽하게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의심 어린 말투의 반복이었다. 결국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울면서 자신의 백 점을 믿지 않는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음악 실기 백 점이라면 엄마가 더 좋아할 줄 알았어요. 내가 백 점 달라고 선생님께 떼를 쓴 것도 아니에요. 음악 시간에 배운 대로 그냥 열심히 불렀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백 점을 주신 건데 왜 엄마는 자꾸 이상하다고 하는 거야? 선생님이 백 점을 주셨는데 왜 엄마는 자꾸 백 점일 리가 없다고 하세요?”


  이건 아닌데.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음악 실기 백 점 받아온 게 이상하다고 아이를 울리는 엄마라니. 내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한 거지? 그것도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이 부른 노래 백 점에 왜 초를 치는가 말이다. 내가 하려던 얘기의 본질은 결코 딸을 울리려거나 마음 상하게 하려던 게 아니었음에도 아이가 울었다. 

  시험에는 실기라도 백 점을 줄 수 있는 기준이 있다. 박자와 가락, 숨쉬기, 크레셴도와 디크레센도 등 그 노래를 부르는 기준에 맞다면 누구라도 백 점을 받을 수 있다. 나는 내 아이가 어느 기준에 맞춰 노래해야 백 점을 맞을 수 있다고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이에게 사과해야 할 일을 또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거듭되는 사과에도 아이는 좀체 마음을 풀지 않았다. 이후로도 아이는 그때 일을 떠올릴 때마다 두고두고 서운해했다. 합격과 불합격의 기준이 있는 것처럼 만점의 기준에 맞으면 만점을 준다는 점을 왜 내 아이에게는 적용하려 하지 않았는지 그날의 나는 내게도 의문이었다. 만점에 대한 내 기준과 실제 기준은 전혀 별개임을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서야 머리를 쳤다. 아이의 노래는 대중의 선호도에 따라 인기가 달라지는 유행가가 아니었다.


  12월 초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다. 아이의 전학 수속을 밟고 배정된 반에 들렀다. 1학기 말 전근 가셨던 선생님이 계신 학교 그 선생님 반에 배정되었다. 



20. 산에 갈 땐 바지를 입어야 해     


  차를 샀다. 피서철이면 등에는 텐트 등을 꾸려 한 짐 지고 어깨엔 내 백을 걸치고 양손엔 내가 들 수 있는 자질구레한 쇼핑백까지 들어야 마음이 편했던 남편이 가장 좋아했다. 가족의 짐은 모두 자신의 짐이라 생각하는 남편에게 나는 ‘팔러 가는 당나귀’ 이야기를 자주 상기시켰다. 남편의 남성이라는 천성에 마초 기질이 있어서인지 착한 남편 콤플렉스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당나귀에 물건을 좀 싣지 그러느냐고 당신을 비웃을걸. 난 당신이 어깨에 메고 다니는 당나귀가 되고 싶지 않아요.”     


  차를 산 후 첫나들이 날이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뒷산을 목적지로 정했다. 집에서 가깝다는 것이 차 구입 후 첫나들이 장소로 택한 첫 번째 이유였다. 가을이었고 단풍도 보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날씨는 제법 쌀쌀한데 우리 가족 모두의 사활을 걸어야 하는 남편의 운전 실력이 왠지 미덥지 않아서였다. 운전면허는 20대에 땄지만 회사에서 가끔 차를 몰아본 외에는 운전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남편의 운전 실력을 테스트하는 데는 가까운 거리가 정답이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멀리 다녀오기에는 어린 둘째의 먹을 것과 기저귀 등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첫째가 원피스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낮은 산이지만 산에 가는 길이니 바지를 입자는 엄마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복 바지 위에 스타킹을 신고 굳이 원피스를 입겠다고 입을 삐죽거렸다. 실랑이 끝에 아이가 원하는 대로 했다. 제 맘에 맞게 차려입은 아이는 가족의 첫 차를 타고 가는 첫나들이의 기쁨에 흠뻑 빠졌다. 평소에도 늘 신이 나 있는 아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마침 남편이 좋아한다는 보니 엠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이는 마치 그 음악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흥얼거렸다. 가만있으려는 둘째의 손을 잡고 춤을 만들어가며 첫 차 나들이를 만끽했다.     

 

  가을 산은 생각보다 추웠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차를 세워두고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자 하늘까지 솟은 미루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와, 크다. 첫째가 환성을 질렀다. 차가 생기니 원하는 곳일을 편하게 할 수 있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차를 가지려는 가장 큰 이유가 거기 있었다. 둘째는 손을 하늘로 뻗으며 아직은 연습이 더 필요한 달리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미루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자현암이라는 절이 있어. 엄마는 6학년 때 이 길을 따라 저기 산 위 절까지 소풍도 갔었다. 지금보다 조금 이른 가을소풍이었어. 친구들이 따 온 머루를 먹었지. 머루는 작은 포도처럼 생긴 열매인데 맛이 달고 좋았어. 입이 아주 시꺼멓게 돼 가지고 서로 쳐다보며 웃고 난리도 아니었단다.”

  내 이야기에 아이들이 흥미를 보였다. 머루? 그게 뭔데? 머루 알을 먹어보기는 했지만 머루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자라는지는 전혀 몰랐던 때다. 남편이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포도잎과 비슷한 잎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자라고...... 아빠의 머루 설명을 듣는 동안 첫째의 관자놀이 솜털이 오송송 서는 걸 보았다. 그러나 첫째는 추운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남편이 걸치고 있던 점퍼를 벗어 첫째에게 걸쳐 주었다. 두꺼운 옷을 입고 모자까지 쓴 둘째도 진저리를 쳤다. 


  집으로 오는 길, 엄마가 들으면 민망할 것 같아서였는지 첫째가 둘째에게 귓속말을 소곤거렸다.

  “엄마가 바지 입자고 하면 바지 입어야 해, 알았지? 진짜 춥다.”

  굳이 치마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린 탓에 추워서 덜덜 떨었지만 긴장을 해서였는지 아이는 그날은 감기에 걸리지 않고 넘어갔다. 철이 든 어느 날 아이는 그날의 기억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그날 정말 추웠어요 엄마. 다시는 엄마가 말리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죠. 바지를 입어야 할 땐 바지를 입어야지. 특히 산에 갈 때는 바지를 입어야 해.”


  아이는 그날 엄마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삶은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다. 결심과는 달리 부모가 하지 말라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자식의 특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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