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미 Oct 30. 2022

8. 문을 쾅 닫는 일만은 말아주세요

24. 과학탐구반 

    

  아이가 4학년이 되던 봄 과학탐구반이 신설되었다. 신설학교니 해마다 새로운 활동반이 생기는 것이 신기할 것도 없었다. 다만 과탐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 했다. 같은 반 아이들 몇몇이 함께 지원했다. 합격자 발표와 함께 문제가 발생했다. 시험에서 떨어진 아이가 먼저였는지 떨어진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아쉬운 마음이 먼저였는지 그 둘이 동시에 작용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며칠 시간이 흐르면서 진정되었으나 엄마들은 달랐다. 자신의 아이가 당연히 과탐반에 들어갈 거라 믿었던 엄마들 중에서 시험 결과에 대해 학교에 따지는 등 시끄러웠다. 과탐반에 들어간 아이의 엄마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불만을 털어놓았다.


  결과에 승복한다는 것. 그것은 내가 살아온 세대의 미덕이었다. 내 의견과 다르고 불만스럽더라도 결과를 깨끗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배웠고 배운 대로 실천했다.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런 부정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이것이 세대 차이인가 했다. 돌이켜보면 중학입시가 있던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사이에도 작은 데서부터 괴리를 느끼긴 했었다. 점차 더 자유롭고 편한 것을 원하고 자기 것을 챙기는 데 익숙한 세대가 우위를 차지하는 세대로 자리매김하는 중이었다.      


 과학을 논할 때 특히 남녀차가 영향을 미치는지는 개인차가 있을 뿐이다. 당시 과탐반에 여학생은 우리 아이 하나였다. 여학생이 과탐반에 들어갔다고 주변에서는 더 큰 축하를 해 주기도 했다. 유명한 퀴리 부인은 내게 여성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자다. 그런데도 주변의 축하를 받는 동안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면서도 내심 으쓱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끝이 나야 끝나는 것이듯 이런 자만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한동안 그 자만에 물들었다. 그러나 과탐 대회 때마다 대상을 타는 다른 아이를 지켜보면서 내 자만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과학자가 꿈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관심을 접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과학적 재능이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아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과학탐구반에 대한 아이의 관심도 차차 시들해졌다. 

  신설학교는 몇 해 사이에 크게 발전했다. 더불어 사회의 원동력이 될 아이들의 학부모 특히 엄마들의 입김은 날로 거세지고 있었다. 급변하는 사회 현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변화에 바로바로 대처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들 덕분에 숟가락 하나 들고 더는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며 쫓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지 않으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새 동네를 만들고 새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상대를 세워주기보다 주저앉히는 데 익숙한 사람들도 많았다. 남을 주저앉힌 그 위에 자신만은 우뚝 서야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부모의 거울은 그 부모의 자녀다. 부모가 이기적이면 대체로 그 자녀 역시 이기적이다. 이런 모습은 살아나가는 동안 큰 교훈이 되었다. 그들은 어디서나 그럴 것이다. 그때마다 대적할 필요는 없다. 꽃 향기까지는 아닐지라도 인간의 향기는 이런 것이로구나 느끼면서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것도 삶을 살아내는 방법이다. 


     

25. 운동회가슴 쓰린 추억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과 더불어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방학 숙제를 제출한 아이 중에 너무 멋지게 잘해 온 아이가 있어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아이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는 얘기가 들렸다. 당시엔 이름도 낯선 파일이란 것으로  숙제를 정리해 제출했다고 대단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정도라면 애가 했을 리 없잖아? 다 엄마 숙제였겠지.” 

  본 적 없는 어떤 일의 과정에 대해 확신에 찬 말들이 돌아다녔다. 그 아이가 방학숙제 1위로 상을 받았을 때는 소문은 그 새 한 편의 소설이 되어 있었다. 그 엄마의 동생이 어디 어디 근무하는 누구라더라까지. 

  그 아이는 1학기 중간에 전학을 왔다. 그 아이 엄마 자신은 자신보다는 자녀들에게 마음 많이 쓰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다만 그 엄마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결코 나올 수 없을 그 엄마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자랑들이 이웃 엄마들을 통해 들려오고는 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 학교 운동회를 알리는 음악이 한창이었다. 첫째가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운동회 날 단상에 올라 4학년 율동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수업 끝나고 따로 남아 연습하기로 했다는 아이의 표정에서 마치 무언가 이루고 있는 듯한 자부심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 운동회가 끝나면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조금만 더 자제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어 좋을 게 없는 시절을 사는 부모는 어린 자녀가 무탈하게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데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다. 요즘처럼 유아 성애자나 유아 성폭행 같은 말은 등장하기 전이었으나 학교 앞이나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의 유괴에 관한 기사는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었다.      


  운동회 당일, 아이의 율동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김밥을 준비하여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점심 후 드시라며 담임선생님께 준비해 간 과일을 건넸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한쪽으로 이끌었다.

  “오늘 우리 깨랑이와 윤지가 단상에 올라 율동을 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취소됐어요.”

  “네? 그동안 수업 끝나고 매일 연습한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네. 실은 한 어머니가 교장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왔답니다. 별것도 아닌 율동을 누구는 단상에서 하고 누구는 운동장 바닥에서 따라 해야 하느냐며, 좀 시끄러웠답니다.”


  맥이 풀려 더 이상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아이는 피아노 학원도 공부방도 쉬면서 열흘 이상 연습에만 열중했었다. 운동회 전날까지 율동 연습을 하도록 하더니 운동회 당일 아침에 한 엄마의 전화를 받고 운동회 프로그램을 변경해야 할 정도로 학교는 무기력했다. 누구나 억울한 일을 겪으면 하소연할 수는 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연습한 두 아이의 수고와 실망감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으셨을까? 그 엄마에게는 다른 아이가 잠시나마 단상에 올라 리더가 되는 것이 당일 아침 그 아이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야만 할 정도로 불공평하게 느껴졌을까? 하향 평준화를 향해 가는 길이란 다른 데 있지 않다. 내가 못하는 일은 너도 못해야 한다. 


  이 일로 나는 다른 엄마들로부터 진정한 위로인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 아이와 아이의 친구였는데도 말이다. 위로는 사과와 함께 마땅히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받아야 했다. 그러나 정작 학교는 담임선생님 외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게 위로를 보낸 엄마들 가운데 운동회 당일 아침 교장실에 전화를 걸었던 엄마가 있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소문의 진위를 떠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두껍고 다양한 색과 모양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도 나도 삶에 괜찮은 무늬가 될 하나의 큰 옹이를 품었다. 

  적어도 괜찮아 보이는 자리에 있는 나를 누군가가 끌어내리려 안간힘을 쓸 때조차도 상처받지 않으면 될 일이다. ‘좋아. 그럼 내려와 주지’ 할 정도의 내성의 싹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끌어올려주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어딘가 오르고 있거나 올라 있는 이를 끌어내리지는 말자는 다짐도 했다.        

 


26. 부탁문을 쾅 닫는 일만은     


  한 엄마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헸다. ‘감동이네요’라는 내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내게 건넸다. 

  “깨랑이 엄마예요. 고맙습니다. 저를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다 계시다니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면 저희 집으로 오세요. 차 한 잔 하시게요.”


  차를 내놓는 그녀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집안 살림살이도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아이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며 어떤 학원을 어떤 이유에서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나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교육관도 없고 피아노 학원 외에는 보내는 학원도 없다고 말했다. 

  잠시 후 그녀의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그 엄마가 인사를 시키자 여전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고개만 까딱했다. 그 엄마가 내게 권했다. 

  “댁에 전화해서 깨랑이도 오면 좋겠네요. 친구도 더 사귀고.”

  

  깨랑이가 신이 나서 달려왔다. 아이들은 이내 마음을 열고 조잘조잘 친해졌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녀가 자신의 딸에게 미술 학원 숙제했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딸은 이제 할 거라고 했다. 고개를 갸웃했다. 미술 학원 숙제를 했는지 먼저 물은 다음에 우리 아이를 불렀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 아이가 피아노 학원에 다녀오겠다며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딸이 우리 아이를 배웅하고 들어오며 물었다.

  “엄마. 나 오늘 미술 학원 쉬면 안 돼?”

  “안 돼. 그게 얼마 짜린데. 한 번 쉬면 얼마가 날아가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니?”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용하고 침착했으나 지금까지와는 달리 날 선 가시를 세운 말씨였다. 우리 아이를 만나는 동안 즐거웠던 그녀 아이의 얼굴이 학교에서 돌아오던 때로 돌아갔다. 아이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쾅. 문 걸어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톡. 

  익숙지 않은 광경에 놀란 나는 동공확장을 들키지 않으려 다른 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딸의 그 행동이 익숙한 듯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와 숙제를 마친 아이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혹시 엄마가 엄마도 모르게 우리 랑이 기분 상하게 하더라도 문을 쾅 닫는 일만은 삼가 주면 좋겠다.”

  아이가 문을 쾅 닫았던 적은 내가 알기로는 그때까지는 한 번도 없었다. 아이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가 답을 하기까지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한 영원처럼 길었다.

  “네, 엄마. 문 쾅 닫지 않도록 조심할게요.”

  “고마워, 딸. 엄마도 우리 랑이가 문 쾅 닫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가지 않도록 할게. 랑이가 문을 쾅 닫는다면, 기분 나쁠 일을 엄마가 시작했다 할지라도 나중엔 말로는 해결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알겠어요, 엄마.”     


  아이는 어느 순간 문을 더 조심스럽게 천천히 소리 나지 않게 닫았다. 문을 쾅 닫지 않으니 문을 걸어 잠그는 일도 없었다. 이 조용한 시위가 문을 쾅 닫는 일보다 훨씬 강도가 높았다. 후에 둘째가 딱 한 번 문을 쾅 닫은 후 걸어 잠갔던 일이 있다. 이때 문 밖에서 나는 내가 첫째에게 부탁했던 이야기와 첫째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들려주었다. 둘째는 이내 문을 따고 나와 사과했다.


  첫째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엄마의 그 부탁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참았는지를 들려주었다.

  “나라고 문 쾅 닫고 싶었던 순간이 왜 없었겠어요. 엄마랑 나 사이를 돌아보면 엄마도 아시겠지만요. 그때마다 엄마가 내게 부탁했던 그 말이 떠올랐어요. '문을 쾅 닫는 일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던 엄마의 그 말을 앞으로도 나는 어느 곳에서나 살아 있는 동안은 지킬 것 같아요. 마음이 안 좋을 때는 오히려 평상시보다 문을 더 소리 안 나게 닫으려 노력했어요. 그렇게 해 보니 문을 쾅 닫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죠. 기분과 문 사이엔 아무런 연관성도 없잖아요.”


  아무 연관성 없는 일을 화풀이 대상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은 얼마나 큰 평온을 유지하는지 살아가면서 더 크게 느끼게 될 터였다.

이전 07화 7. 엄마, 그러면 안 되는 거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