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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Oct 30. 2022

7. 엄마, 그러면 안 되는 거죠?

21. 알림장을 정독하자    

 

  지금도 나는 우리 가족이 여행을 가게 되면 특히 치약과 새 칫솔에 이니셜이나 이름을 적는다. 집에서 쓰는 칫솔에도 당연히 각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누가 다른 사람의 치약이나 칫솔에 눈독을 들일까마는 자칫 잊어버리거나 바뀔 염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같은 방을 쓰게 된 누군가와 치약을 나눠 쓰는 행동 역시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라면 주의를 당부한다. 유난스럽다고 하던 가족들도 요즘은 내가 이름을 써 주기를 바란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이런 행동은 살아가는 동안 여러 일들의 기초가 된다고 믿는다.

  이는 내가 내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물론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새 교과서며 필통, 노트, 신발주머니 등에 먹을 갈아 세필로 반, 번호, 이름을 정자로 써 주셨다. 아버지의 애정을 새삼 느끼며 아이의 책이며 노트, 필통, 실내화와 신발주머니 등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알림장의 중요성을 아이에게 주지시켰다.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 후 삼월 한 달 동안 아이와 함께 알림장을 정독했다. 알림장은 초등학교 입학 초기 아이의 건강과 안전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필수 목록이다. 알림장은 아이와 학교와의 소통인 동시에 아이와 학부모, 학부모와 학교의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알림장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 이 관계가 어긋나고 따라서 그날 하루가 엉망이 되어 버린다. 

  4월이 되면서 나는 아이의 알림장으로부터 졸업했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정독했던 방식을 따라 알림장에 적힌 대로 알아서 숙제도 하고 스스로 준비물도 챙겼다. 급식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때여서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가끔 도시락은 잊고 갈지라도 준비물을 빠뜨렸던 적은 없었다. 첫째와 다섯 학년이나 차이가 나는 둘째가 가끔 언니의 도시락을 배달하곤 했다.   

   

  아이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는 습관을 심어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알림장이었다. 더불어 3월 한 달 열심히 아이와 함께 알림장을 정독하고 그대로 실천한 엄마인 내게는 아이의 성장과 함께 아이에게 매달리지 않고 내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나는 오랜 기간 날마다 반복되는 단순한 일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일에 약하다. 아이와 함께한 알림장 정독은 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버지 역시 그러셨을 것이다.          



22. 엄마와 함께하는 공부방

  

  공부방을 열었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지 두 달, 아이가 2학년으로 올라간 3월부터였다. 

  공부방 초기 멤버는 여섯 명이었다. 공부방을 연 목적은 경제적 목적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보다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알차게 보내는 데 있었다. 또한 내 아이는 물론 다른 아이에게도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었다. 

  그 인원으로 몇 해 공부방을 운영했다. 우리 아이들이 커 가는 만큼 다른 아이들도 성장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같은 동에 사는 여자 아이가 공부방에서는 늘 백 점을 맞는데 학교 시험은 아주 낮은 점수를 받곤 하는 것이었다. 그 오빠가 이유를 알려주었다. “얘 말이에요, 집에서 맨날 해답지 베껴요.” 


  그동안 좋았던 분위기가 일시에 깨졌다. 해답을 베낀 아이에게 왜 그랬는지 추궁하지 않았다. 공부가 끝나고 그 엄마에게 차 한 잔을 권했다. 자초지종을 전하며 미리 알아채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했다. 부디 당신 딸에게 이런저런 탓을 하거나 스트레스 주지 말고 이 공부방 대신 다른 곳을 알아보도록 청했다. 그렇잖아도 내가 내 아이에게 어쩌다 한 번 아이 발표를 시킬라치면 그 아이는 입을 내밀고 샘을 냈다. 마침 다른 단지에서 오던 아이 둘도 우리와는 서울 대각선 끝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공부방 방을 붙이느니 공부방을 접기에 좋은 구실이 되기도 했다.  내 자식의 잘못은 나부터 모두 부모의 잘못이다.  

 

  그 엄마는 다른 공부방을 알아보지 않고 우리 집에 계속 보냈다. 그 딸의 이야긴 즉 이랬다.    

  “엄마가 깨랑이가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한테 이쁨도 많이 받으니까 깨랑이 옆에서 친하게 지내랬어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잘하는 사람 옆에 있어서 뭔가를 잘하게 된다면 누군들 그 이치대로 행동하지 않겠는가. 본인이 열심히 할 생각이 없다면 아무리 잘하는 사람 곁에 있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 것이며 어떤 점이 향상할 수 있겠는가. 나는 외모 가꾸기에 자신이 없다. 외모를 잘 가꾸는 멋쟁이 친구를 아무리 오래 사귀어도 나는 멋쟁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외모 가꾸기나 멋 내는 일에 관심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끼리는 줄곧 같은 반이기도 해서 티격태격하면서도 가깝게 지내는 듯 보였다. 어느 날 우리 첫째와 그 딸 사이에 엄마들이 보는 앞에서 다툼이 있었다. 그 엄마가 우리 첫째에게 말했다. 

  “깨랑아. 너는 공부도 잘하고 이쁘니까 니가 우리 진경이 좀 봐주라.” 

  내 아이와 동갑내기인 자신의 딸을 앞에 두고 어떻게 저런 판단을 할 수가 있을까. 내 아이에게 스트레스이면서 그 딸에게는 자존심 상할 말이 아닌가. 그런 말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그녀에게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고 한 마디 던졌다. 

  “우리 깨랑이가 진경이 언니라도 되니? 자기가 진경이 달래서 친구랑 잘 지내도록 하는 게 순서지. 그런 후에 우리 깨랑이에게 양보해 달라고 해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엄마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경우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기에 할 말을 참고 어느 정도 참고 지낼 뿐, 정작 해야 할 말을 제때 하지 않는 건 내 사전에 없다. 또한 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이사하기 전까지 나와 막역하게 지냈음은 물론이다.  

   

  아이는 밝고 맑게 자랐다. 웃음이 예쁜 어린이들 사이에 끼어 찍은 큰 사진이 학교 입구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걸려 있기도 했다.           



23. 엄마그러면 안 되는 거죠?     


  아이는 어느새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손을 씻고 나오며 물었다. 

  “엄마, 오늘 둘째 시간 끝나고 간식 먹을 때 일인데요,...”     

   


  친구와 함께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때 개구쟁이 남자아이가 다가와 그 친구에게 친구가 싸온 간식 중 둥글게 자른 귤 한 조각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그럼 날 한 번 웃겨 봐. 이 간식 다 줄게.’ 그러면서 깔깔깔 웃었다.     



  “엄마, 그럼 안 되는 거죠? 난 개가 하는 말과 걔가 깔깔깔 웃을 때 많이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 깨랑.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딸 얘기 들으면서 엄마도 놀랐는걸.”


  아이를 꼭 안아주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 깨랑이는 왜 많이 놀랐을까?”

  “같은 반 친구끼리 과일 한 조각 정도는 나눠 먹을 수 있지 않아요?”

  “그럼 깨랑이는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아이는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일단은 과일을 하나 건넸을 것 같아요,”

  “그런 다음엔? 네 친구는 과일 한 조각 나눠 주기가 아까웠을 수도 있지 않았겠니? 그 친구 엄마가 저 먹으라고 정성 들여 싸 준 간식인데 하나 달라는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럴까요? 걔네들은 평소 엄청 친해요. 음, 난 그냥 맘에 들지 않은 친구라도 과일 한 조각 정도는 나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간식을 안 갖고 오는 애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엄마가 간식을 싸 줄 땐 늘 그러잫아,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엄마로부터 자신을 두둔하는 답을 원했던지 아이는 약간 맥 빠진 듯 나를 바라보았다.

  “맞아, 깨랑. 네 생각이 옳아. 뭐든 나눌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그중에도 먹을 걸 나눌 수 있다는 건 더더욱 귀하고 좋은 일이지. 친구 사이에는 더더욱.”

  “안 나눠 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저를 웃기면 과일 한 조각을 나눠 주겠다는 건 상상하기 쉽지 않아요.”

  “그러게. 그래서 과일 한 조각 달라던 친구는 어떻게 했니?”

  “그냥 멋쩍게 웃으며 다른 데로 갔어요. 원래 엄청 재밌는 아이인데 웃겨 보라니까 못 웃기더라구요.”

  “그랬구나. 과일 한 조각 먹고 싶었던 그 친구 마음이 부끄러웠겠다. 음식이란 게 그래. 어른들은 같이 밥을 먹으며 친해지기도 하거든. 마음을 나누는 거지. 어른은 아니지만 네 친구는 그 재밌는 친구에게 마음을 나눠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나 보다.”

  “그런가? 나도 걔하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치만 과일 한 조각 먹기 위해 원숭이처럼 친구를 웃긴다는 건 말도 안 돼요, 엄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아이는 눈에 가득 고이는 중인 눈물을 손등으로 쓰윽 훔쳐내며 웃었다. 나는 아이의 의견에 토를 달았고 답은 아이가 도출해 냈다. 아무리 과일이 먹고 싶어도 과일 한 조각 얻어먹기 위해 원숭이처럼 친구를 웃길 수는 없다는 아이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아이는 그 친구와 거리를 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가 가진 자와 그 친구가 가진 자는 동류의 길이나 무게 등을 잴 때 기준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얼마 후 그 친구의 엄마를 포함한 같은 반 엄마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 아이가 그 친구에게서 느꼈다는 그 미묘한 감정을 나 또한 그 엄마에게서 느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었으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그 엄마의 태도에서 작은 이해관계에 아주 밝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보고 배운 상대는 언제나 나를 통해서 나오게 되어 있다. 많은 부분을 닮을 수밖에 없는 관계가 부모 자식 관계임을 보여준 경험담 중 하나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 친구는 세상에 나가 소위 말하는 잘 사는 사람이 되겠구나 확신이 들었다. 세상사에 밝고 영특하여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자기 것 손해 보지 않고 잘 사는 사람 말이다.     

  

  이 일이 있기 불과 한 달 전 2학년 초 담임선생님과의 면담 때 있었던 일이다. 엄마가 바라는 장차 아이의 상에 대해 선생님께 말씀드렸었다.

  “깨랑이가 밝고 명랑하고 적극적인 점은 참 좋은 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가 잘나 그런다고 자만하지 않도록 지도 부탁드립니다.” 

  담임선생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친구들도 많고 제 눈에는 이쁘기만 합니다. 다른 어머니들은 앞에 좀 내세워 달라고 하시는데 어머니는 의외시네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그래도 어머니 말씀 잘 알아들었으니 많이 참고하겠습니다.”

  친구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한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들으면서 아이에 대한 내 믿음이 뿌리 없는 풀은 아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잘 자라준다면 담임선생님 말씀처럼 기본이 된 인간으로 자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9살이 된 아이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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