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자 어제 눈이 내렸던가 싶게 맑은 하늘이다. 하지만 창을 여니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앉은 먼 산을 덮은 눈은 그대로다. 털갈이하는 동물의 털 빠진 몸뚱이가 사람 사는 동네를 크게 품고 있는 듯 보인다.
오전 내내 정신없이 바쁜 일을 끝내고 점심 후 공원으로 나갔다. 평소 같으면 북적거릴 공원이 한산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이어서일 것이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이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2학년을 맞았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온라인 수업으로 1학년을 마친 아이들이다. 초고령화 시대다. 건강하게 지내야겠다. 그 아이들에게 나의 미래를 책임져 달라고 한다는 건 참 염치없고 미안할 일이다.
돌아보면 나의 과거는 가난과 더불어 시작했지만 마냥 짙은 회색만은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식민지 시대와 전쟁은 부모님이 대신 다 경험하고 물리쳐 주셨고 의술의 발달과 경제 성장 덕분에 아프면 병원 가고 오래 살게 되었다. 나이 들어 일손을 일자리가 없어 사랑도 결혼도 임신 출산도 포기한다는 젊은이들에게 의탁하며 사는 시대가 되었다. 평균 수명만 늘리는 100세 시대는 편치 않을 것이다.
계절은 3월이라는데 마음은 갑자기 1월로 그것도 겨울 한가운데로 거꾸로 소용돌이치며 빠져드는 느낌이다. 사는 일이 언제 그리 쉬웠던 적이 있었던가. 오늘 오전만 해도 참을성 없던 예전 같으면 하던 일을 팽개쳐 버렸을 것이다. 참아야 한다. 참는 자가 이긴다. 참는 자는 신께서도 어쩌시지 못한다. 왜냐하면 신은 늘 참고만 계시기에 참는 자의 심정을 가장 잘 아시기 때문이다.
눈을 드니 구름다리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가다 먼 창공 속으로 사라졌다. 하늘은 아침처럼 파랬고 먼 산허리 눈들은 몇 시간 사이 말끔히 녹아 흔적도 없다.
언제 눈이 내렸던가? 아니 언제 우울했던가? 가까운 나무에 꽃봉오리들이 미친 듯이 부풀고 있다. 누가 나무뿌리에 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나 보다. 그럴 줄 알았다, 꽃 한 송이가 나 보는 앞에서 팡 터졌다. 드디어 나무가 땅의 이야기를 알아듣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 추웠던가? 춥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아무리 펑펑 눈이 내려도 아무리 큰 얼음덩이를 갖다 놓아도 삼월이 가만둘 리가 없다. 나의 우울한 생각들도 꽃봉오리들처럼 하나씩 바람을 머금었다.
눈과 얼음이 녹아 사라지듯 삼월엔 우울한 생각도 터져서 꽃이 된다. 지난 1년의 기억이 이제 2학년이 된 어린이들에게 큰 정신적 재산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 봄, 꽃을 몰고 오는 삼월이에게 모든 걸 맡겨도 괜찮겠다.
삼월아, 우울이 뭐야?
괜찮아 괜찮아. 알려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몰라서 좋을 것들이 더 많은 봄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