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관계 맺기 2: 좋은 사람 곁에 자주 머물기
※ 본 글은 2부와 3부 사이 쉬어가는 글입니다.
10대 때 나를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 상상과 예술이라면 20대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남사친들과 술이었다. 나는 평생 마실 술을 20대에 다 마셔 버렸다.
20살부터 시작된 중2병.
‘건드리면 다 죽여버릴 거야’
사춘기는 아주 무서운 병(?) 임에 분명하다. 억눌린 20년의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내 안에서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세상을 향한 강한 분노의 에너지는 나를 집어삼키기 충분했고 인간이 이렇게까지 추하고 못나고 바닥인가 싶을 정도로 나는 내 인격의 바닥을 봐버렸다. 그런 내가 큰 사고 치지 않고 무사히 20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다 남사친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나를 마음껏 웃게 해 주고 떠들게 해 주고 끼와 에너지를 발산시킬 수 있도록 도와줬었다.
행복과 재미를 담쌓고 살아온 내게 그들은 '세상을 이렇게 재밌게도 살 수 있구나'를 가르쳐 줬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미쳤을지도 모른다. 나는 주로 남사친들과 어울려 놀았다. 내가 여사친보다 남사친이 많았던 것은 그들 특유의 단순함과 유쾌함, 무모함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 현상은 칼 융의 '그림자', '아니무스'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동네 이름을 따서 ○○파, △△파 이렇게 두 파가 있었고 나는 ○○파의 홍일점이었다. 두 파가 다 모이는 날에는 인원이 많아 술집 잡는 게 일이었다. 열 마디에 아홉 마디가 욕과 비속어인 세종대왕도 울고 갈 언어 창조자(?) 들이었고, 9시 뉴스에 '무서운 10대'라는 제목으로 뉴스에도 출현했을 만큼 노는 모습이 거친 아이들이었지만 나한테 만큼은 착했으며 나를 많이 아껴줬었다.
페르소나 뒤에 숨어 살던 '참 나'를 알아봐 준 그들 덕에 나는 내 그림자를 만날 수 있었다. (참) 이슬을 마시며 (아침) 이슬을 맞이했던 무모했던 지난날을 떠올려 본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 자학하던 나를 대신해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해 줬던 연인들.
땡스, 마이 보이프렌즈 & 나의 연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