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정신과 치료 과정을 녹음하게 되었나?

[2부: 시작] 정신과 치료는 그렇게 시작됐다

by 네오

정신과 면담이 끝나면 주치의가 했던 말을 매번 핸드폰 메모장에 복기하기 바빴다. 치료가 4년 정도 접어들었을 무렵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듣고 흘려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내용이 많은데 녹음을 해두면 필요할 때마다 계속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나> 선생님, 녹음해도 돼요?


주치의> 당근이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녹음을 흔쾌히 허락한 내 주치의. 내가 녹음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주치의의 주옥같은 치료적 멘트 때문이었다. 심리 상담과 달리 정신과 치료가 도움이 됐던 건 내 호소 문제에 대해서 주치의가 메디컬 하게 풀어줬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사와 정신과 의사는 문제 접근 방식이 달랐다.


예를 들면 내가 '카메라 공포증'을 호소했을 때 심리상담사는 불안한 심리 기저와 동반되는 감정을 다루며 인지 교정 또는 심리 과제를 점진적으로 해 나가는 식이었다. 반면 정신과 의사는 이런 식이었다.


- 진료 녹음 파일 중 일부 -


주치의> 얼굴에 수백 가지 근육이 있거든요. tension(긴장).. 핵심은 불안과 긴장이에요. 통제 욕구고. 여하튼 다 텐션으로 정리가 되는데 그 긴장이 몸으로 내려 버리게 되고 어떤 분은 이게 부정맥이 되고 또 어떤 분은 위염이 생기고 과민성대장 증후군이 있듯이 (네오 님은) 하필 얼굴 이쪽으로 온 거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얘네들이 죄가 없는데 (웃음) 근육이 약간이라도 한두 개라도 긴장이 안 풀리면은 부자연스럽게 되고 본인도 그걸 느끼니깐 이 느낌이 불안을 더 악화시키는 거거든요.


두 접근법 중 내 Pick 은 후자이다. 나는 정신과 치료가 더 잘 맞는 사람이었다. 내가 만난 4명의 정신과 의사 모두 감정적으로 얘기하는 나를 보며 팩트 체크와 뼈 때리는 얘기만 했었다. 난 오히려 그게 편했다. 그러고 보면 대학 심리학 과목 중 선호했던 과목은 인지심리학, 지각심리학, 신경심리학, 생리심리학과 같은 주로 뇌 과학을 다루는 분야였다. 상대적으로 싫어했던 과목은 성격심리학, 상담심리학과 같은 누군가의 뇌피셜과 상담 기법들로 상대적으로 과학적인 검증이 어려운 것들이었다. 내 모든 의문에 해답을 갖고 있었던 주치의. 나중에는 범위도 범주도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궁금했던 모든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성장 과정상 내 물음에 답을 해주는 친절한 어른은 없었다.


그렇게 난 주치의와 소크라테스식으로 엄청난 질문을 주고받았다. 주치의는 늘 내게 화두話頭를 던져주었고 나는 그 화두를 일주일 내내 풀며 살았다. 다음 내원일까지 정신과 치료 녹음은 출퇴근 길에 매일 듣는 루틴이 되었고 나는 스스로 훈습*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 훈습: 내담자가 상담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일상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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