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초진의 추억

[2부: 시작] 정신과 치료는 그렇게 시작됐다

by 네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초진 시 많은 검사들을 받게 된다. 심리적으로 아사 직전인데도 불구하고 수 장에 걸친 자기 보고식 문항부터 성실히 응답해야 하며 이상한 전선들을 몸에 연결시켜 스트레스 반응 검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후에야 의사를 대면할 수 있으며 두근두근 진료실에 들어서면 처음 보게 되는 의사 앞에 막상 앉으면 말갛게 리셋되어 버리는 뇌 상태.


'넌 환자. 난 의사. 뭐든 물을게. 어서 대답하렴' 의전문가 포스 뿜으며 어떤 일로 오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힘들었는지,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일은 하고 있는지,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운동은 하는지 등 진료를 위한 질문 세례를 받게 된다. 정신과 의사 앞에 정신적인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러게... 나 왜 왔지?'라는 순간 현타가 찾아온다. 신뢰와 불신 사이를 오가며 정신과 의사 간 보는(?) 단계는 딱 3번째 만남이 고비였던 것 같다. (뭐든 삼세판, 기본 3번은 만나보시길 권유드립니다!)


정신과는 부끄럽게도 넘사벽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정신과에 대한 고루한 편견이 심했던, 심리적 문턱이 굉장히 높았던 사람이다. ‘정신과 치료 병력이 남아 내 인생을 발목 잡으면 어쩌지?’하는 불안과 걱정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거 따질 만큼 아직은 살만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나중에 정신과 갔을 때는 '오늘 진료받고 내일 죽으리라'이런 비장한 각오로 갔으니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 (X)

아픈 만큼 골병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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