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글쓰기는 내 인생의 과업이다. 난 이미 내가 한 명의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수많은 글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쓰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글쓰기에 열정적인 사람 치고는 한 가지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건 바로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은 '퇴고'가 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퇴고라는 단어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 뜻이 뭔지는 몰랐다. 매일 글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글쓰기와 관련된 책과 영상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거기서 퇴고라는 단어를 여러 번 목격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데 정신이 팔려서 퇴고가 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정확한 지점은 모르겠지만, 아마 몇 달간은 퇴고가 뭔지도 모르고 글을 마구잡이로 썼었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퇴고를 하지 않았기에 초반에 많은 양의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요는 글쓰기를 처음 하는 사람일수록 퇴고를 무시하고 쓰는 게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퇴고에 온 신경을 들여가며 글을 썼다면,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퇴고를 거치지 않으면 마치 글에 구멍이 뚫린 것마냥 완성도가 부족하겠지만 그렇게 많은 글을 토해내듯 쓰진 못했을 것이다. 퇴고는 정말 중요하다. 퇴고를 하는 만큼 글이 다듬어지고, 퇴고를 하면 할수록 필력이 점점 올라감을 매번 느낀다. 그러나 그런 퇴고도 적당히 하지 못하면 그것만큼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도 없다. 퇴고의 적정선을 본인과 제대로 타협하지 못하면 아마 퇴고만 하다가 날이 샐 수도 있다. 퇴고에 집착하면 썼다 고치기를 반복하다 결국 글 한편을 옳게 매듭짓지 못하고 마음만 흐트러지게 된다.
난 지금도 글을 쓰다 보면 가끔씩 퇴고지옥에 빠진다. 그럴 때면 한 문장을 마음에 들게 고치지 못해서 몇 시간을 날려 먹기도 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항상 경계하려고 하지만, 욕심과 욕망의 힘은 얼마나 강한지 틈만 생기면 언제든 마음에 비집고 들어와 한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간을 들인 만큼 확실히 문장이 만족스럽고 깔끔해지긴 하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힌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다. 많은 글을 써 보는 경험이 가장 필요한 입장일수록 이런 시간적 체력적 소모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모든 건 기회비용이다. 퇴고를 하는 건 좋지만, 퇴고하는 만큼의 시간 동안 쓸 수 있었던 글은 쓰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퇴고가 한 편의 글을 다듬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과정인 건 맞지만, 그렇게 필수적인 과정인 것 치고는 절반은 의미 없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렇게 퇴고를 공 들여서 세상에 내놓아봤자 정작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정성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퇴고는 어찌 보면 본인만족의 지분이 대부분이다.
물론 퇴고에 정성을 들인 만큼의 기운은 모든 글에 스며든다. 혼을 불어넣은 글은 확실히 글쓴이의 영혼이 담겨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하지만 글쓴이가 글에 쏟아붓는 애정과 정성만으로는 살짝 부족한 감이 있다. 좋은 글이 탄생하는 건, 쓰는 자와 읽는 자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달리 말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상태와 태도가 하나의 글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극찬하는 명저를 읽어도 삐딱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마음이 맑으면 초등학생이 쓴 일기에서도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퇴고하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 계속 다듬고 다듬는 이유가 만약 남들의 시선 때문이라면 나름의 적정선을 긋고 적당히 하는 게 좋다. 그게 정신건강에도 좋고, 기회비용면에서도 합리적이다.
퇴고에 빠진다는 건 자기 신뢰의 부재로도 귀결된다. 끊임없이 수정한다는 것 자체는 결과물을 더 좋게 만드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의심을 걷어내지 못한 데서 오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퇴고도 적당히 하면 다듬기가 되지만, 집요하게 퇴고에 집착한다면 본인 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표지로 매겨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가 쓴 글에 대해 끝까지 애정을 붙이지 못한다면, 그건 필력을 탓할 게 아니라 본인의 마음가짐을 점검할 일이다. 뭔가를 믿지 못하는 마음은 한 자리를 무한히 맴돌게 만들어 버린다. 정신을 차릴 때까지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효율적인 퇴고는 많은 글을 써 보는 것이다. 완성도 95%의 글을 100일 동안 10편 쓰는 것보다는, 완성도 60%의 글을 100일 동안 50번 쓰는 게 글쓰기와 관련된 모든 능력이 올라가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글 한 편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비슷한 주제이든 전혀 다른 글이든 간에 매듭이 지어진 글을 여러 번 써 보는 것도 일종의 퇴고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글 한 편을 고치는 과정에서 스스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게 퇴고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의미 있는 발전은 원활한 순환 속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가다 막히고 오다 막히는 답답한 과정을 통해 걸작이 나온다 한들 '다음'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만한 고생을 또다시 감내할 수 있는 인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글쓰기로 해결하는 게 가장 시원한 방법이다. 생각으로 어찌 해본다는 생각만큼 어리석고 비효율적인 생각도 없다. 잦은 퇴고는 시간을 낭비할 뿐이지만, 잦은 글쓰기는 나를 점점 상위로 끌어올려준다. 특히 글쓰기가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퇴고는 글 한 편당 약 20%의 에너지 정도만 할애하는 게 적당하다. 그 이상은 더 이상 해롭다.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만 신경 쓰는 게 좋다. 글 앞에서 한 명의 글쓴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쓰고 쓰고 또 쓰는 것밖에 없다. 기껏 힘겹게 써낸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리 공들여 고쳐봤자 자신이 가진 것 이상으로 높은 퀄리티를 뽑아낸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글을 많이 쓰면 쓸수록 퇴고에 그리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될 만큼 필력이 올라간다는 건, 확실하게 보장되는 일이다.
글은 그저 한 사람의 마음이 표현된 것뿐이다. 퇴고지옥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글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의외로 시원하게 털어버릴 수도 있다. 최고의 글쓰기 방법, 최고의 퇴고법은 쓸 수 있을 때 더 많이 쓰는 것뿐이다. 그 방법 말고는 도저히 다른 해법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무작정 많이 쓰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그런 노력을 들일수록 스스로가 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와 믿음을 갖고 글쓰기를 임하는 게 좋다. 강한 지속성의 원천은 자기신뢰라는 샘물에서 우러나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