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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쩌다 재수 없는 인간이 되었을까

문득 내가 쓰는 글이 재수 없게 느껴지다

by 달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다 보니, 글쓰기는 습관을 넘어서 일상이 되었다. 굳이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정신 차려보면 뭔가를 끄적이고 시간들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내가 글쓰기를 하지 못해서 애 먹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남들이 겪는 슬럼프 같은 건 웬만해선 겪지 않을 줄 알았고, 그런게 나를 덮쳐도 얼마든지 그간 터득해 온 온갖 방법들로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막상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쓰는 글과 썼던 글에 대한 의심과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쓰고 있다는 환상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더 많은 글을 썼다. '이럴 때일수록 최대한 더 많은 글을 쓰는 게 무조건 좋은 일이고, 내게 남는 장사야'라고 나를 속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마음처럼 계속 써 내려갈 수가 없었다. 열 손가락으로 자판을 눌러가며 꾸역꾸역 만들어 내는 글자 수보다 한 손가락으로 눌러대는 백스페이스의 횟수가 더 많았다. 한참 글을 쓰고 나서 마지막에 모니터를 바라보면 화면에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지. 해결하고 싶었다. 내게 질문을 해봤다.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나도 모르게 은근히 피하고 있는 건 없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글로써 아는 척했던 건 아닐까'

'글을 너무 함부로 썼던 걸까'

'혹시 내가 그새 오만해진 걸까'

와 같은 말들을 천천히 걸으면서 되뇌었다.


하지만 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네가 원하는 답은 스스로 찾으라'는 무언의 메시지만 돌아올 뿐이었다. 꼭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말해주지 않는 내면의 고약한 심보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거나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텐데, 다행히 이젠 그런 존재가 한 명 있었다. 바로 나의 아내다. 약한 모습을 보이긴 싫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이러다 내상이 곪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용기를 내서 입을 뗐다. 근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첫 질문이 참 생뚱맞았다.


"여보, 내 글이 좀 재수 없나?"

난 대체 왜 재수 없냐고 물어봤을까. 평소에 '재수 없다'는 말 자체는 아예 생각도 언급도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사실 이때 아내에게 질문을 던지는 찰나에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질문이 곧 대답 같이 느껴졌다. 내가 봐도 내 글이 재수 없어서 이런 말을 아내에게 던진 건 아닐까 싶었다. 더군다나 아내는 단칼에 부정하지도 않았다.


"음, 글쎄."


아내는 신중한 표정으로 어떤 대답을 돌려줘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의 침묵은 날 긴장하게 만들었다. 아내의 대답을 기다리며 빨래를 개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봤다.


"내가 여보 글을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여보 글이 좀 함축적이긴 해. 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글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런지 글이 좀 불친절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


당황스러웠지만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핑계를 댈 만한 여지도 없었다. 200% 수긍이 가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내 글을 다시 읽어보지 않아도 그런 기운이 내 글에 스며있다는 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A에서 B로 넘어갈 때 갑자기 훅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당황스러운 부분도 종종 있어. 좀 더 풀어서 설명해 줄법도 한데, 핵심적인 내용만 툭툭 던지니까 가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어."


아내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다른 글을 읽을 때 대충대충 읽는 버릇이 떠올랐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읽는 글뿐만 아니라 책도 그렇게 읽고 있었다.


일부러 대충 읽으려고 그런다기보다는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생각으로 글쓴이가 전달하는 바, 혹은 글이 담고 있는 핵심내용을 서둘러 얻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건너뛰듯 읽게 된다.


그게 안 좋은 건 줄 알면서도 급한 성격 때문인지 자꾸만 그렇게 읽어버린다. 그런 부분을 개선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강하게 나서지도 않았다. 근데 그리 방치했던 그 안 좋은 버릇이 결국 내 글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내게 말하는 동안 그 잠깐의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졌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계속 가만히 앉아 있었다. 죄 없는 검지손가락의 날 선 손톱을 바닥에 톡톡 두드리며 소심한 층간소음을 유발하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아마 그건 '받아들임'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나의 결점이 고스란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미리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는지, 심란함과 편안함이 49:51 정도의 비율로 날 감싸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여보."


"응?"


"많이 쓰는 건 좋은데, 너무 쫓기듯이 쓰는 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오히려 여보한테 독이 될 수도 있어. 글 발행 수도 좀 줄이고 여유를 가지고 다시 써 봐."


난 변명할 여지도 없이 아내의 말을 새겨듣기로 했다. 그래, 난 좀 멈출 필요가 있었다. 글쓰기에 빠지고 난 후 그렇게 무리를 해가면서도 여태껏 방전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보통 난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시도했다가, 초장에 힘 다 빼고 퍼지는 바람에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글쓰기 앞에서만큼은 포기라는 단어를 전혀 떠올리지 않았다. 다만, 깊은 반성과 진중한 고민은 좀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매일 새로운 글을 발행하는 건 확실한 이점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매일 글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많이 써지게 된다. 일종의 촉진제라고 해야 하나.


혼자 조용히 몰래 썼으면 하루이틀은 빼먹을 법도, 글을 대충 쓸 법도 한데 확실히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검열장치가 허공에서 나를 응시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뭐든지 지나치면 오류를 야기하는 법인가 보다. 솔직히 요즘엔 '매일 하루하루 글을 써서 올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만 같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원래는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글이어서 대충 쓰지 않을 수가 있었는데, 이젠 매일 써야 한다는 집착과 압박감으로 인해 오히려 더 글을 대충 쓰게 돼버렸다.


한 두 번은 그냥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글 혹은 다시 읽어보면 엉망진창인 글을 매일 써서 올리다 보니, 어쩌면 내 글에 가장 관대한 존재인 나조차도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내 글을 묵묵히 읽어 주시고 라이킷과 댓글의 흔적까지 남겨준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심지어 수십 번을 더 해도 모자란 퇴고를 겨우 한 번 정도에 그치고야 마는 일도 적지 않았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쓰는 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사유를 하게끔 유발하거나, 혼잡스러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내가 쓰는 글들이 오히려 '읽음으로써 마음이 더 불편해지기만 하는 게 아니었을까'라는 강한 의심이 든다.


맞는 말만 골라서 전해주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 재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처럼.


난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금 나를 천천히 돌아보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 이렇게 예정에 없던 글을 새로이 쓰고 있다.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점점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리도 깊게 파고 들어가게 될 줄이야.


아내와의 대화가 끝난 후, 거실을 지나 화장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근데 아내가 처녀귀신처럼 내 뒤를 슥 지나가면서 채찍인지 위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한 마디를 던졌다.


"여보, 중요한 것만 골라서 읽을 거면 차라리 유튜브를 보지 뭐 한다고 괜히 브런치까지 들어가서 글을 읽겠어? 여튼 나 잔다!"


난 나를 돌아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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