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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l 05. 2024

내 글이 재수 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ep 10. 글쓰기가 좋은 이유


아쉽게도 생애 첫 투고는 그렇다 할 성과가 없었습니다(아내 몰래 투고한 건 잘한 일이었습니다). 충분히 실망할 법도 했지만 실망하는 것도 자격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따지고 보면 글쓰기를 시작한 지 불과 1년 만에 투고를 하면서 출간을 노렸던 거니까요. 아무리 1년 동안 매일 빠짐없이 글을 썼다 해도, 이미 작가의 반열에 오른 분들도 출간이 쉽지 않은 마당에 저 같은 사람이 한 번의 투고로 출판사와 계약한다는 건 일어날 수 없는 일에 가깝긴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그때쯤에는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지경에 이른 상태였는데 전 그것만으로도 풍족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써 일상을 가득 채우니 부족한 것도 더 필요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만큼 글쓰기는 쉬지 않았습니다. 쓰고 쓰고 또 썼습니다. 브런치북 공모전 수상을 못했어도, 100여 군데가 넘는 출판사로부터 긍정적 회신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음에도, 글쓰기 루틴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업무를 보다가도 글을 쓰고, 퇴근을 해서도 글을 쓰며 살았습니다. 다른 부족한 게 있어서 부업 같은 걸 뛰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같은 집에 살면서 얼굴도 잘 내비치지 않고 글 쓰러 돌아다니는 남편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는 아내와 결혼한 것에도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제 글들이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모르게 묘하게 재수 없는 느낌이 들었습니다(지금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만). 그동안 썼던 것들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니 무슨 미국풍 자기계발서같았습니다. 필체의 모양이 어쩌다 그리 잡힌 건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성향 탓도 있을 것이고 자기계발서 위주로 독서를 많이 한 탓도 있을 거라 지레짐작할 뿐이었습니. 그러다  불현듯 예전에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니 좀 재수 없네."


왠지 제 글을 돌아볼 때가 온 것만 같았습니다. 원인이 어떻든 간에 일단 제 눈에도 제가 쓴 글들이 아니꼬워 보이는 마당에 계속 그런 식으로 글을 써나갈 순 없었습니다. 더불어 아내가 넌지시 던진 말들도 생각났습니다. 글이 불친절하다든지, 내용전개가 너무 빠르다든지, 쓸데없이 진지하다든지 그런 얘기들을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당시엔 그리 와닿질 않았는데 마음엔 남아 있었나 봅니다. 어쩌면 피드백은 적당량의 글을 써야만이 비로소 받아들여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이참에 전 저를 돌아보는 글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그게 바로 <난 어쩌다 재수없는 인간이 되었을까>라는 브런치북이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은 남아 있는 게 별로 없었지만 생각나는 대로 막 썼습니다. 다행히 평소에 글을 많이 쓴 덕분에 무작정 쓰고 보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포기했던 이유, 책을 만난 계기, 친구들과 멀어진 이야기 등의 성장과정을 자세히 담아보려 애를 썼습니다.




경험상 글을 쓰다 보면 의외의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았습니다. <난 어쩌다 재수없는 인간이 되었을까>를 처음 쓸 때만 해도 어쩌다 지금의 나로 거듭나게 됐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브런치북을 다 쓸 때쯤에 제가 마주한 건 한때 가장 친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전 글을 쓰면서 인간관계를 많이 잃었습니다(원래도 연락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긴 했습니다). 카톡 친구창엔 직장동료와 친척들을 포함해 80명도 없습니다. 다만 계모임 하는 친구들과는 가깝게 잘 지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게 삶의 낙이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면서부터 모임을 잘 나가지 않으니 그들은 제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론 그들이 저를 그렇게 여길 법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게 한마디 말도 없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그들이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인생 한 번 잘 살아보겠다고 애쓴 것 말고는 딱히 피해를 준 것도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응원은커녕 점차 거리를 두는 그들이 야속할 따름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때 가장 친했지만 이젠 한없이 멀어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리운 건 그 친구였습니다. 제게 재수 없다는 말을 건넨 것도 그 친구였습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미련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근데 아니었습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와의 추억을 기리고 있었다는 걸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그와 다시 친해질 일은 없을 거였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세가 너무도 다른 나머지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으니까요.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여겼습니다.


여하튼 <난 어쩌다 재수없는 인간이 되었을까>를 쓴 이후로는 최대한 재수 없지 않게끔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겉으로는 큰 성과가 없어 보여도 내면적으로는 필체가 달라질 만큼 유의미한 성장을 겪게 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혹여나 또 이전처럼 쓰지나 않을까 싶은 마음에 글 쓰는 속도는 현저히 줄었지만 차라리 느리게 쓰더라도 못나게 쓰는 것보단 나았습니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서 글쓰기는 좋았습니다. 목적이 어떻든 간에 글을 씀으로써 가장 많은 이득을 보는 건 다름 아닌 글쓴이라고 생각합니다. 써도 써도 적응이 되지 않는 게 글쓰기이지만, 쓰면 쓸수록 애정이 깃드는 것도 글쓰기였습니다.




에세이 출간 소식
'사회적 통념을 극복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이 보장된다.'

독서모임에서 만나, 돌잔치홀에서 결혼하고, 각방을 쓰며, 양가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지 않고, 서로를 배우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결혼생활을 독자들에게 내보임으로써 결혼과 관련된 각종 고정관념을 깨뜨리고자 책을 썼습니다.

결혼하면 고생길로 접어든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정해진 틀’에 자신들의 삶을 끼워 맞출 필요는 없으며, 결혼의 본질은 ‘서로 잘 지내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우고자 저와 아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옮겨 쓰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만의 남다른 결혼생활이 많은 분들에게 결혼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한 사유를 해볼 수 있는 촉진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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