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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Oct 27. 2024

지지리도 눈치가 없는 우리 팀장님

ep 7. 팀장님 제 옆에서 좀 떨어져 주세요


우리 팀이 하는 대기업 내에서의 현장조사는 2인 1조 작업을 준수해야만 했다. 원래는 팀장님 과장님 그리고 선임님 이렇게 총 3명이서 현장에 나갔기에 2인 1조 작업이 성립되지 않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과장님과 선임님이 퇴사했으니 최소 1명 이상은 사람이 더 필요했다. 난 현장조사팀에 투입되지 않았다. 난 애당초 도면 작성을 위해 이 회사에 영입된 것이기도 했고, 내 입장에서도 현장일을 할 거였으면 굳이 연봉이 반토막 나는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날더러 이제부터 현장에 나가야 한다고 했으면 단번에 거절했을 것이다. 혹 거절을 거절당했다면 퇴사라도 했을 것이다. 팀장님과의 현장조사는 웬만한 현장일보다도 더 힘들었으니까.


다행히 과장님이 퇴사하고 선임님마저 회사를 떠나기 전에 팀장님은 현장조사를 함께 할 새로운 과장님을 영입했다. 이과장님이라고,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그렇게 이전 회사에서부터 연을 이어오던 부하직원 두 명과 매일 아침 현장으로 나서던 팀장님은 이제 이과장님과 두 명이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두 분이 조사를 하고 있으면 난 사무실에서 혼자 도면을 그렸다.


퇴사한 과장님과 선임님이 없는 것 말고는 모든 게 그대로였다. 팀장님이 현장에서 사무실로 복귀하는 시간도, 내가 야근하는 시간도, 가끔 현장조사 지원을 나가면 쉬지도 않고 하염없이 눈앞의 일에만 정신 팔려 점심시간과 퇴근시간 어기는 건 다반사인 것도.


그 사이 난 수습기간이 끝나고 정직원이 되어 있었다. 사실 수습 기간 동안 야근을 얼마나 하는지 지켜보다가, 상황이 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정직원이 되기 전에 퇴사를 해야겠다고 한참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수습 기간이 한 달도 넘게 남은 시점에 갑자기 팀장님이 점심을 먹던 도중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수습이 아직 한 달 남긴 했는데, 내가 대표님한테 잘 말해서 다음 달부터 바로 정직원으로 올리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


그렇게 난 타이밍을 놓쳤다.


말로는 날 좋게 봐서 수습 기간을 앞당겨 정직원을 시켜준 거라며 팀장님은 말했지만, 뭔가 내가 과장님이나 선임님처럼 도망갈까 봐 그런 느낌이 없잖아 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직원이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5년형)' 얘기를 팀장님이 먼저 꺼냈기 때문이다. 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도. 물론 내일채움공제를 시작하고 지정된 기간만큼 근속하면 그만한 목돈이 나오니 나야 뭐 하면 당연히 좋긴 했다. 그런데 여태껏 그런 걸 상사가 먼저 챙겨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으며 그림도 좀 이상했다. 5년 짜리라서 은근히 부담이 되기도 했다. 과거 5년은 무슨, 1년 이상도 재직해 본 적이 나로서는 과연 5년 동안 무탈하게 잘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뭐 어쨌든 그렇게 난 얼떨결에 정직원이 되어 버렸다.




팀장님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고 나니 그들의 도맡아 하던 잡일은 모두 내게 넘어왔다. 덕분에 팀장님과 나의 관계는 돈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제발 내 옆에 앉지 마라'라며 맘 속으로 비는 게 더 이상 소용이 없을 만큼 팀장님은 퇴근만 하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조사한 내용을 직접 알려주겠다며.


팀장님에게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였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볼 테니, 굳이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업무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팀장님이 내게 가르쳐주는 건 현장에서 본인이 직접 스케치한 종이에 다 기재된 것들이었다. 나도 눈이 있고 손이 있고 생각이란 게 있는데 뻔히 스케치 종이에 적힌 것들을 토대로 도면을 수정하거나 엑셀에 기입만 하면 됐었다. 그러니까 내게 그냥 페이퍼만 주면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왜 굳이 그런 것들을 일일이 읊어가며 알려주는지, 그리고 그걸 실시간으로 옆에서 검사까지 하는 건지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받아 적을 것들이 한두 가지면 말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업무 특성상 기재해야 될 것들의 항목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니 팀장님이 한 번 입을 떼기 시작하면 기본 30분은 잡아먹고 들어갔다.


팀장님은 눈치가 없었다. '제 할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팀장님은 팀장님 할 일이나 좀 하시면 안 될까요'라는 마음을 한껏 담은 눈빛을 보내도 팀장님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사무실에 컴퓨터는 세 대나 있는데 정작 사용되는 건 내가 쓰는 컴퓨터 한 대뿐이었다. 눈앞에 나무 한 그루에 얽매여 숲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증이라도 하는 듯, 팀장님은 나머지 컴퓨터를 활용할 생각은 일절 없어 보였다.


받아 적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의 항목들을 엑셀에 반복적으로 기입할 때면 이래 저래 복사할 일이 많은데, 복사하는 순서나 방식 등의 별의별 것들까지 팀장님은 일일이 다 관여를 했다. '여기 있는 것들 다 저 밑으로 그대로 복사해', '이전에 했던 파일 복사해서 그대로 가져와'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특히나 입력된 값과 수식 그리고 병합된 셀이 많은 엑셀 파일일수록 그냥 복사해서는 안 된다. 충돌이 일어나서 어차피 복사도 못한다. 서로 맞물린 요소가 많은 만큼 틀이 깨지지 않는 선에서 어느 정도 조정을 하여 복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뭐 하나 다운로드 받으면 그 파일이 어딨는지 몰라 한참을 헤맬 만큼 컴퓨터 활용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팀장님은, 복사해서 붙여 넣으면 다인 줄 아는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었다. 


해야 될 일을 시키고 물러나면 별 탈 없이 순식간에 끝날 일을 팀장님이 매번 간섭하는 바람에 작업량과 작업 속도는 수 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에게 답답한 마음이 일어나는 불편한 상황이 초래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열이 받는 건 그날 당장에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퇴근 후에 남아서 밥도 굶어가면서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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