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보의 짧은 소설 4
그녀와 만난 지 7년 만에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식 준비는 세 달 만에 끝냈다. 조금 서둘렀다. 연애 기간이 길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단 다른 이유가 컸다. 나만큼 연애를 오래 한 커플 중에 결국 헤어지고 다른 사람과 결혼한 케이스를 은근히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관계는 무탈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괜히 불안했다. 다만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신이 그녀를 허락하지 않은 것만 아니면 차질 없이 유부남으로 진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박학다식해서 좋았다. 그녀는 남들에게 딱히 친절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인간관계가 좋아서 좋았다. 그녀는 하루종일 누워 자기만 하는 것 같은데 집이 깨끗해서 좋았다. 그녀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보기 좋았다(난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차마 그러질 못해서 더 그럴지도). 그리고 그녀는 음식을 가려 먹을 것 같은데 못 먹는 게 없어서 좋았다. 아, 못 먹는 게 한 가지 있긴 했다. 그건 바로 양념통닭이었다.
그녀와 함께 지내는 동안 치킨을 셀 수 없이 많이 시켜 먹었다. 근데 그중 가장 맛있는(물론 내 취향이지만) 양념통닭은 먹지 않았다. 안 먹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는 양념통닭을 혐오했다. 연애 초반에 다른 건 다 좋은데 양념통닭만 시키지 말아 달라며 사전에 미리 통보도 할 정도였다. 이유를 물어봤다.
"양념통닭에 들어가는 양념에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게 일어나."
라는 게 그녀의 답변이었다.
신기했다. 그런 건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다니까 더 이상은 물어보지 않았다. 양념통닭이 아무리 맛도리라 한들 몸에 이상 증세가 생긴다면 나 같아도 안 먹을 것 같았다. 덕분에 양념통닭을 안 먹은 지도 7년이 되어 갔다.
한 번은 이런 날도 있었다. 오랜만에 치킨을 먹고 싶어서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시켰다. 그런데 가게 사장님 실수로 양념 치킨이 배달됐다. 아무것도 모르고 포장지를 뜯은 우리는 반응이 갈렸다. 난 약간 당황한 것에 그쳤는데, 옆에 있던 그녀는 몸을 살짝 떨면서 입맛이 사라졌으니 혼자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가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에 난 그녀를 찾아갈 법도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일순간 비친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곧 유부남이 되는 입장에서 아내로 맞이할 그녀를 떠올릴 때 유일하게 찝찝한 점은 그날 그녀의 돌발행동이었다. 그런 적은 그때 단 한 번뿐이었지만, 은근히 뇌리에 강하게 박혔는지 종종 꿈에도 나올 정도로 쉽게 잊히지 않았다.
여하튼 그날 이후로 난 치킨을 시켜 먹을 때만큼은 할인 쿠폰이나 배달비보다도, 메뉴에 양념 비스무리한 거라도 들어가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게 됐다. 가게 요청사항에 '필히 메뉴 더블체크 해주세요'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심지어 나 혼자 시켜 먹을 때조차도 그랬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날이었다. 보통 넉넉 잡아 일 년 정도는 걸린다는 결혼 준비를 세 달 만에 끝낸 것 치고는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담백한 프러포즈로 비록 한 방울 찔끔이지만 그녀의 눈물도 추출(?)했고, 이미 서로 잘 알고들 계시는 부모님들 간의 만남도 무탈했으며, 우리의 관계도 항상 그래왔듯 더할 나위 없이 돈독했다. 남은 건 식장 앞에서 하객분들을 맞이하다가, 시간이 되면 사회자의 로봇처럼 잘 따르면서 사람들 앞에서 유부남이 되었음을 당차게 선포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손님들을 맞이하던 도중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웬만해선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괜히 무리했다가 평생의 한 번뿐인 결혼식을 개그콘서트장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지못해 속전속결을 되뇌며 급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뒤이어 사람들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예진이 연애 길게 해서 살짝 불안했는데 결국 가긴 가네."
아내 쪽 사람들인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이모부 없이 컸는데 저 정도면 정말 참하게 자랐지. 이모가 많이 허전하시겠다."
"근데 이모부가 뭐 때문에 돌아가셨다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교통사고였을 걸."
"아이고.. 어쩌다가?"
"이모부가 통닭 한 마리 사들고 집에 가고 있었는데, 예진이가 전화로 양념통닭 먹고 싶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던 길에 사고 난 거래."
"에~?"
"나도 나중에 엄마한테 들어서 알게 된 건데 그때 예진이 충격이 심했는지 한동안 많이 아팠다더라."
"미친, 뭐 그런 일이 다 있냐."
"그니까. 그래도 잘 컸지. 신랑도 멀쩡해 보이던데. 누구처럼 안 싸우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신부, 입장."
나의 그녀가 버진로드 끝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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