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 룩소르 리조트 & 스파
살다보면 인간관계에 지쳐 홀로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서로 부대끼며 정을 나누고 싶은 때도 있다.
나 개인으로만 보면 보통은 전자인데, 이상하게 아이와 함께면 후자가 된다.
룩소르 공항에서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아침 8시 30분이다.
룩소르의 아침은 찬란한 햇살과 맑은 공기가 어우러져 쾌청하다.
적당히 느리고 적당히 한가로운 이곳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택시?”
이집트 전통 의상인 긴 원피스처럼 생긴 갈라베야를 입은 택시 기사가 다가온다.
“힐튼 호텔! 100파운드.”
“노노 200파운드!”
“100파운드 아니면 앱으로 부를래.”
“오케이 100파운드.”
이렇게 흥정을 한 기사는 하마다라는 이름의 말이 많은 남자다.
호텔을 가는 내내 그는 룩소르와 다른 투어 상품 등을 소개한다.
나는 또 호객꾼에게 걸렸다고 생각하고 철벽 칠 다짐을 한다.
말할 때마다 그는 ‘마담’이라는 호칭을 붙여 대접받는 느낌이 들게 하는 스킬도 쓴다.
“거리가 엄청 한가하네. 카이로는 너무 복잡했는데, 참 좋다.”
“룩소르에 온 걸 환영해, 마담. 이집트는 금요일, 토요일이 휴일이야. 그래서 금요일인 오늘은 거리가 더 한산해.”
“그럼, 일요일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
“응, 마담. 일요일은 다 학교에 가. 마담, 오늘 오후에는 뭐 할 거야?”
“모르겠어, 우선 호텔에서 쉴 생각이야.”
“룩소르 시내 둘러볼 거면 나한테 연락해, 마담. 내가 150파운드에 시내 다 돌아 줄게. 룩소르 신전, 카르낙 신전, 그리고 왕들의 계곡도 가야지, 마담.”
“내가 원데이 투어를 내일 예약해서, 오늘은 그렇게 여러 군데 갈 생각은 없어. 저녁에 잠깐 룩소르 신전만 가려고 하는데, 거기 야경이 멋지다고 들어서. 오후에 나가게 되면 연락할게.”
“좋은 생각이야, 마담. 내 명함 여기 있어. 언제든지 필요하면 왓츠앱으로 연락해.”
공항에서 호텔 오는 10분 거리가 한국 돈으로 치면 4,500원인데, 오후 내내 신전을 돌고 식당까지 가서 기다려 주기까지 하는데 150파운드, 6,800원을 받겠다니 신기한 셈법이다.
나가게 된다면 꼭 나를 환대해 준 셈이 어두운 듯한 하마다를 부르기로 한다.
체크인 전에 먼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나일강 앞 식음료 업장으로 향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갔는데 아직 영업 전이라고 한다. 이제 이런 말에 절망하지 않는다.
“나 너무 배고프고, 방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 가능한 메뉴 있을까?”
“그럼, 뭐 시킬지 골라봐. 내가 지금 가능한지 셰프랑 확인해 볼게.”
규칙을 무시하는 태도가 이곳 사람들의 융통성이 마음에 든다.
Yul은 햄버거와 치킨 너겟을, 나는 그릭 샐러드에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기쁘게도 모든 메뉴가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나일강을 병풍 삼아 근사한 식사를 즐기게 됐다.
강 건너편 사자들의 땅은 푸른 잔디 뒤로 노란색 사막 언덕이 쭉 펼쳐진다.
우리는 야자수 아래서 식사하며, 햇빛을 받아 다이아몬드를 풀어놓은 것 같이 반짝이는 강 건너로 사막의 풍경을 감상한다.
바람이 약해 강은 어느 때보다 고요한데, 그래서 바람을 동력으로 이동하는 이집트 전통 배, ‘펠루카’가 운행하지 않아 아쉽다.
그래도 약한 바람 덕을 톡톡히 봤다.
샤르도네 한 잔과 그릭 샐러드는 잔잔한 나일강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환상의 마리아주를 선사했다.
처음 마셔보는 이집트 와인 케이프 베이(Cape Bay)는 부드러운 질감에 상큼한 과일 향이 너무나 훌륭하다.
와인과 경치를 번갈아 음미하는 내 앞은, 연회용 테이블과 무대를 설치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흰색 테이블보와 의자 덮개는 그들의 분주함까지 백조의 날갯짓처럼 우아하게 만들어준다.
오랜만에 마신 와인 몇 모금 때문일지도.
“이거 뭐 때문에 설치하는 거야?”
호텔에서 행사가 있으면 참여하고 싶어 테이블을 세팅하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후 세 시부터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란다.
운 좋게도 이집트 결혼식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다.
나와 Yul은 체크인 후 낮잠 자고, 수영장에서 결혼식을 구경하기로 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멜라토닌을 많이 합성해서인지, 꿀 같은 낮잠을 잤다.
비행의 피로를 말끔히 푼 우리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카이로 메르디앙 호텔의 야외 수영장 물 온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지만, 햇빛이 포근하게 내려와 그럭저럭 수영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수영장에는 동양인 아빠와 남매, 세 명만 있는데, 무척 반가운 한국어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들리는 한국어가 꾀꼬리의 지저귐처럼 귀에 착착 감긴다.
심지어 아이들은 Yul이 또래 같다.
어떻게 온 건지, 얼마나 있는지, 어느 나라에 사는지 등 궁금한 게 많은데 감히 말 걸 용기가 나지 않는다.
흘끔거리며, 우리 목소리도 들으라고 또박또박 한국말을 한다.
그런데, 그 남매는 Yul에게 영 관심이 없어 보인다.
부끄러움이 많은 Yul도 먼저 다가서지는 못한다. 내가 용기 내어 옆으로 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속삭이는 소리의 인사가 돌아온다.
아이들도 굳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그 가족은 주문한 피자를 먹으러 선베드로 갔다.
이게 끝이라니, 아쉽기만 하다. 혼자 여러 가지 상상을 해 본다.
‘음… 독일이나 영국에 사는 한국 가족인가? 거기서 한국 커뮤니티를 탈출해 여기 여행 온 거일지 몰라. 그런데 또 한국인이 말을 거니 불편했나 봐.’
‘아니면, 저기 선베드에 있는 와이프 눈치를 봤나?’
‘또는…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놀고 싶어서 한국인 없는 여행지를 찾아왔는데 내가 눈치 없이 말을 건 걸지도 몰라.’
이렇게 상처받은 마음을 온갖 추측으로 위로해 주려고 하니 씁쓸하다.
세 시에 시작한다는 결혼식은 네 시가 되도록 준비가 한창이다.
그 앞으로는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하객들이 한 손에 칵테일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갈라베야를 입은 전통적인 결혼식 풍경을 상상했는데, 꽃장식이며 테이블 세팅, 하객들 옷차림까지 미국이나 영국 결혼식과 비슷하다.
새로운 구경거리는 없겠다 싶어, 나와 Yul은 그 한국 가족을 다시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빌며 다음 일정을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내가 소심했던 걸까, 그들이 냉랭했던 게 맞을까?
그들의 사정이야 어찌 됐든, 이런 어색한 만남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다행히 이후 3일간, 호텔에서 그 가족을 다시 보지는 못했다.
이 만남을 생각하니, 서울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만난 한국 아저씨도 떠오른다.
여동생 두 명과 온 듯한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았다.
카이로 공항부터 환승하는 도하 공항까지 드문드문 마주치는데, 처음에는 서로 흘끗 거리며 탐색을 했다.
도하 공항 환승 편에 타려고 기다리며 ‘한국인’이라는 걸 확신했는지 아저씨는 본격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한다.
“아이고, 이제야 한국인을 만나네! 이집트에 한국인 진짜 없죠? 꼬맹이는 재미있었어?”
“네.”
“그런데 고생 마이 했나 부네. 입술이 다 터졌네.”
나와 Yul은 서로 마주 보고 씨익 웃는다.
Yul 윗입술은 소위 말해 ‘발랑 까졌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Yul 학교 양호실에서 알레르기가 심한 것 같다며 입술이 많이 부었다고, 약을 먹여야 할지 전화가 올 정도였다. 양호 선생님 눈에 익은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
“아이고, 어쩌나. 약은 발라 줬어요?”
나와 Yul은 다시 눈을 마주치고 피식 웃는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눈치 없이 계속 입술 걱정이다.
“약 있는데, 줄까요?”
“아니요, 얘 원래 이렇게 생겼어요.”
머쓱해진 아저씨는 동생들 찾는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런 한국인 정서가 그리웠는데, 그 유쾌하고 오지랖 넓은 아저씨가 반갑기만 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출국장을 나가니, 그 입술을 Yul에게 물려준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Yul이 아빠에게 안겨 있는데, 그 아저씨가 지나가며 인사를 한다.
“조심히 가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는 인사를 하고도 한참을 남편 입술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간다.
나와 남편은 집에 가는 차에서 그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웃었다.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쉬고싶은 여행이 있고, 사람 속에서 부대끼며 온기를 나누고 싶은 여행이 있다.
이렇게 사람 성향과 상황이 다 다르니 누군가에게 호의와 반가움이 누군가에게는 오지랖과 간섭이 된다.
나는 룩소르 호텔에서 한국인 가족에게 불청객이, 공항에서 만난 아저씨에게는 반가운 한국인이 됐다.
그래도 Yul과 있는 시간만큼은 피하고 싶은 사람보다는, 힘께 웃을 수 있는 인연을 많이 만나고 싶다.
Yul이 살아갈 세상은 경쟁보다는 협력이 더 중요한 기술일거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