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 신전
나는 관광업으로 번성한 나라, 그리고 더운 나라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심하게 말하면 게으르고 관광객에게 사기 칠 기회만 노린다는 편견이다.
이집트는 두 가지 다 해당하고, 카이로에서 고생했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룩소르에서는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사람을 대했다.
특히, 공항에서 만났던 택시 기사의 ‘마담’이라는 호칭이 달콤했던 만큼(프랑스 귀족이 된 기분이 들게 했다), 그의 모든 말을 의심부터 했다.
룩소르 첫날, 오후 관광을 위해 하마다에게 왓츠앱으로 연락했다.
‘나 오늘 카르낙 신전 - 룩소르 신전 – 저녁식사 – 호텔 복귀하는 일정으로 4:30에 호텔에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우리 도와줄 수 있어?’
‘Yes ma’am’
‘150파운드, 오케이?’
‘Yes ma’am’
‘알았어. 4시 30분에 호텔에서 봐’
‘I will be on time ma’am’
의례 예상했던 지루한 흥정 과정 없이 너무 쉽게 알았다고 하니 더 의심스럽다.
그리고, 시간 약속은 잘 지킬지, 아니 나타나기나 할지 걱정된다.
4시 29분 호텔 입구로 간 나는 50%의 확률로 호텔에서 택시를 따로 부를 생각도 한다.
그런데, ‘나 지금 호텔 입구야!’라고 왓츠앱을 보내기가 무섭게 하마다의 흰색 택시가 미끄러지듯 내 앞에 와서 선다.
나는 먼저 카르낙 신전으로 가 달라고 요청했다.
신전을 관광할 생각은 없고, 체류기간 동안 룩소르의 대부분 유적지를 관람할 수 있는 ‘룩소르 패스’를 사려는 목적이었다.
“마담, 룩소르 패스는 추천하지 않아. 너무 비효율적이야. 그냥 관광지마다 개별적으로 티켓을 구매해서 들어가는 게 더 저렴할 거야. 정말 그거 사는 건 너무 낭비야, 마담.”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게다가, 룩소르 패스는 현금으로 달러 결제해야 하는데 지금 환율 고려하면 그냥 이집트 파운드로 개별 티켓 사는 게 이득이야, 마담.”
‘너는 떠들어라, 나는 그래도 계획대로 사련다. 우리 꼼꼼한 블로거들이 얼마나 자세한 정보를 올려놨는데, 다 읽고 비교해보고 사기로 한 거야. 안 들을래, 안 들려! 안 들려!!’
나는 편견으로 가득 차, 하마다가 해주는 ‘들어야 할 조언’을 걷어찼다.
유로화와 달러를 카이로 공항에서 다 환전해 버린 나는 룩소르 패스를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카르낙 신전 앞에 내렸다.
“룩소르 패스만 사서 오면 되니까, 금방 나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 줘.”
“응, 마담. 여기 있을게.”
아집이 강한 한국 관광객은 그렇게 하마다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으며 카르낙 신전 매표소를 향했다.
뭐, 결과야 정해져 있었다.
현금이 없는 나는 결국 250달러나 하는 룩소르 패스를 구매하지 못하고 나왔다.
그리고 타의로 사지 못했지만, 천운이었다 생각한다.
내가 블로그에서 찾은 정보는 체력이 좋은 젊은 배낭 여행객들이 올려놓은 거 위주였다.
그들은 모든 유적지를 둘러보고도 다음날 다시 가고 싶은 곳에 두세 번 더 방문하는 부지런한 이들이다.
하지만, 나와 Yul은 그 많은 룩소르 유적지 중 선별해서 몇 가지만 봐도 벅찬 3일 일정이었다.
결국 하마다의 조언은 옳았다.
카르낙 신전을 빈손으로 나오는 길에, 호객꾼에 이끌려 Yul은 밥그릇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긴 작은 아랍 전통 모자를 50파운드에 샀다.
“오! 진정한 아랍의 아들이 돼서 나왔구나.”
하마다는 이 어리석은 관광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네 말이 맞았어. 룩소르 패스는 안 샀어.”
“정말 잘했어, 마담. 따로 사는 게 훨씬 이득이지.”
이때까지도 나는 하마다가 티겟을 따로 사도록 유도하며, 본인이 아는 투어를 연결해 주고 우리를 등쳐먹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계속 의심했다.
다음 코스는, 내가 신뢰해 마지않는 한국 블로거가 추천한 현지 맛집이다.
하마다는 본인이 이 지역에 빠삭하다며 다양한 정보를 늘어놓는다.
“마담, 그 집은 생선구이가 주메뉴야. 그런데 비슷한 음식점이 주변에도 많아. 특히 지금 옆에 보이는 저기가 그런 종류 음식점 중 제일 큰 데야. 음식은 다 비슷한데, 이 동네 사람들은 저기 많이 가. 마담, 네가 원하는 데로 가면 돼.”
‘본인이 커미션 받는 레스토랑으로 유도하려는 걸 거야!’
나는 또다시 하마다를 믿지 않고, 블로거가 추천한 좁은 골목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갔다.
“우리 40분이면 다 먹을 거야. 식사 끝나기 10분 전에 왓츠앱으로 연락할게.”
“걱정 마, 마담. 나는 근처 커피숍에서 수다 떨고 있을게. 천천히 먹고 연락해.”
음식점 들어가는 데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찌른다.
Yul이 그나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생선구이와 오징어튀김, 새우구이가 함께 나오는 메뉴를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기본 찬이 깔린다.
커리 소스에 버무려진 가지, 고수가 듬뿍 들어간 토마토와 양파 오이를 버무린 샐러드, 후무스가 그것인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기쁜 마음에 가지 하나를 베어 무는데, 차가운 가지 요리는 생각했던 것과 다른 맛이다.
상상했던 태국 혹은 인도식 커리가 아닌, 낯선 이집트 향신료가 들어간 커리에 한국 가지나물을 섞은 맛이다. Yul은 망고 주스만 홀짝인다.
메인 메뉴가 나오는 데만 30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나는 기다릴 하마다가 걱정돼 왓츠앱으로 연락했다.
‘미안해, 메인 음식이 이제 나와, 앞으로 30분 정도 더 걸릴 것 같아.’
‘걱정 마 ma’am. 천천히 즐기고 식사 끝나면 메시지 줘.’
하마다의 배려로 여유 있게 식사할 수 있었지만, 그런 여유가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메인 메뉴는 향신료와 양념이 매우 강하다.
생선 위에 듬뿍 올라간 양념을 걷어내고 속살만 발라서 Yul 앞에 놔준다.
흰 살에 묻어있는 노란색 양념에 거부감을 느꼈는지 Yul은 깨작대기만 한다.
오징어튀김에도 향신료 가루가 잔뜩 뿌려져 있어, 한 개 이상 먹지를 못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하마다가 추천한 크고 대중적인 식당으로 가서 빠른 서비스와 쾌적한 환경이라도 누릴 걸 그랬다.
반도 먹지 못하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하마다 차에 탔다.
이집트 현지식을 잘 못 먹는 Yul을 위해 다음날 투어할 때는 바나나랑 빵을 챙겨 나오기로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야경이 아름답다는 룩소르 신전으로 향했다.
다음날 개인 가이드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기로 하고, 이날은 어둠 속 조명 빛을 받아 신비롭고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신전 기둥을 배경으로 사진만 몇 장 찍고 쓱 둘러보고 나올 생각이다.
“우리 사진만 몇 장 찍고 금방 나올 거야. 30~45분? 나올 때 왓츠앱 보낼게”
“응, 마담. 천천히 구경해. 나오면 여기 도로 쪽에서 만나자. 여기 차들이 못 서니까 조금 떨어져서 저 위쪽에서 기다릴게.”
하마다와 헤어진 우리는 야경을 보러 온 관광객으로 붐비는 룩소르 신전에 들어갔다.
신전 입구 중앙에는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그 뒤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람세스 2세의 석상이 여섯 개가 늘어서 있다.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고대 이집트 문자인 히에로글리프가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선명하고 깔끔하다.
몇천 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또렷하다.
자연 풍화도 겪지 않은 것일까?
그 영원성에 다시 한번 놀란다. 궁금한 게 많지만,
다음날 가이드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급히 포토스폿을 찾아다니며 인증숏 찍기를 한다.
지치고 허기진 Yul은 이미 호텔에 돌아갈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
“아, 엄마! 우리 빨리 가자. 힘들어.”
“한 장만. 저기만 보고 오자.”
그렇게 불만 가득한 아이를 끌고 인생샷 건지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시큰둥한 표정에 축 처진 몸으로 아이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진만 잔뜩 남았다.
다음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룩소르 신전 관광을 마친 나는 하마다와 약속한 곳으로 갔다.
왓츠앱을 남기고 5분쯤 기다려도 하마다가 오지 않는다.
나는 비용을 선불로 내지 않는 것을 내심 다행이라 여기며, 길가에 서있었다.
기다리는 내내 말을 탄 사람, 오토바이를 탄 청소년들이 계속해서 본인들 이동 수단을 쓰라고 성화다.
나는 그제야 믿음직한 하마다가 있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하얀 택시 문밖으로 손을 흔드는 하마다가 보인다.
백마 탄 기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든든하다.
이제야 마음의 문을 연 깍쟁이 한국 관광객은 하마다가 추천하는 열기구 투어를 하기로 한다.
“하마다, 내일은 내가 예약된 룩소르 일일 관광이 있고, 내일모레 열기구 투어하고 싶은데 아는데 추천해 줘.”
“물론이야, 마담. 두 가지 타임이 있어. 1부는 일출 보는 열기구이고 호텔에서 4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할 거야. 2부는 그다음 타임인데 출발은 6시에 해.”
“고민되네… 내일 오후 컨디션 보고 시간 정해도 될까?”
“물론이지, 마담. 내일 오후 4시 전에는 확정해 줘야 예약 가능하니 그때까지만 확정해서 연락해.”
이렇게 다음을 기약하고 고마운 하마다를 보냈다.
그리고 피곤함에 전 Yul이 방에 오자마자 쓰러져 잘 줄 알았다.
“엄마, 나 일기 쓰고 잘게.”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겠어?”
“응, 일기 쓸 거야.”
Yul은 개발새발 필체로 일기로 둔갑한 식단일지를 썼다.
그래도 먹은 거 나열하는 중간에 한 일도 추가하는 것 보면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12월 22일 Yul의 일기 (Yul이 쓴 글을 그대로 옮기면 도저히 알아볼 수 없어, 철자법은 고쳐서 기재한다.)
오늘 아침은 튼튼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침은 안 먹었지만 불타올랐다.
비행기를 탔는데 상상했던 거랑 달랐다.
오늘 점심은 햄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수영했다.
재미있었다.
오늘 저녁은 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마지막은 큰 신전을 갔다.
평가 x1000000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