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책을 구매하려고 교보문고에 갔다.
사려는 책이 있던 게 아닌 터라 전시 공간에 가장 눈에 띄는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이 ‘Whale’이라 영화 <The Whale>의 소설 버전이려니 했다.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라는 기억 외에는 영화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집에 와서 책 뒷면 소개를 보니 천명관 작가의 한국 소설이다.
굳이 한국 소설을 영어 번역본으로 보게 된다니,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첫 장에서 곧바로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한번 내 머릿속에 정제되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영문 번역본으로 읽어서 그런지 이야기는 더 몽환적이면서 신비로웠다.
산골 소녀 금복이 어촌 마을로 나가 건어물 사업을 하고 커피와 영화관을 처음 경험한 뒤, 한국전쟁 이후 한 시골 마을로 흘러 들어와 우연히 돈벼락을 맞으며 카페와 벽돌공장, 영화관까지 사업을 확장해 가며 도시를 일구는 내용이다.
등장인물들과 상황, 사건에 대한 묘사는 너무 우스꽝스럽고 해학적이고 전체적인 느낌은 몽환적이다.
이 느낌을 설명할 만한 적절한 비유도, 단어도 찾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굳이 끌어오자면, 팀 버튼의 영화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원스>를 버무린 것 같은 느낌이다.
또, 중간 중간 ‘Readers’라고 부르며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에서 소설이라는 것을 환기해, 어처구니없는 등장인물들과 사건을 한 발 떨어져 지켜보게 한다.
또, 거리를 표현하는 ‘리’와 같이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는 한글 발음 그대로 ‘li’라고 표기해 '어색한 끊김’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19년이 지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로 오른 데는 번역가 김지영 님의 역할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원작자와 번역가에게 함께 주는 상이라니 그녀의 공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연히 영문본으로 읽은 행운 덕에 ‘고래’의 신비로움에 한껏 취할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줄을 읽은 후 그야말로 무언가에 취한 사람처럼 멍해져서 무거운 눈물이 뺨 위로 흘러 내렸다.
What I Thought
- 인생은 유한하고 누구나 죽는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한 명씩 죽게 된다. 하지만 어느 죽음 하나 슬프게 묘사되지 않았다.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아온 이들은 '차라리 죽는 게낫겠다' 생각해도 길게 살아남아 온갖 시련을 감내해야 했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부유하고 달콤한 행운을 누리던 이들은 허무하게 죽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의 죽음은 다행이라는 감정과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래도 주인공과 함께 살던 죽은 ‘코끼리’의 환영을 통해 전한다. 아무리 힘든 인생도 죽음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고. 그리고, 누군가가 기억해 준다면 죽어서도 존재한다고!
- 죽으면 육체는 다 썩고 결국 뼈만 남게 된다. X-ray 사진을 처음 찍어보고 이러한 깨닳음을 얻은 금복은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뚱이’라고 말하며 그나마 남아있던 수치심마져 던져버리고 남자들과 하룻밤 정사를 즐기기 시작한다. 그녀의 '단순함'과 '추진력'이 부럽다. (절대로 그녀의 행동이 부러운 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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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become ourselves according to our behavior. This might explain a human’s irrational actions; a person doesn’t act according to a predetermined personality, but rather their behavior reveals their personality. _p170
- Are other people in so much pain?
too. But life can never be worse than death. _p298
We’re disappearing for good. But don’t be scared. Just like you remembered me, you exist if someone remembers you. _p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