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것들에 대하여
아이는 틀리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아버지는 아이를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고,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오래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확신을 경계했고,
성급한 판단을 가장 위험한 오류로 여겼다.
아이의 말은 언제나 정확했다.
시간을 틀리지 않았고,
사실을 과장하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왜곡하지도 않았다.
그 정확함은 오히려 불편했다. 아이의 말에는 감정이 거의 섞이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 기대하는 ‘아이답지 않음’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재능으로 보지 않았다. 문제로도 보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특성으로 기록했을 뿐이다.
그가 늘 하던 방식대로.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사람을 고치려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대상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설득하려 는 자신을 통제했다.
아이의 삶에 개입하기보다
같은 하루를 함께 살아보기로 선택했다.
사랑은 늘 그렇게 시작된다.
확신이 아니라 유예로.
결론이 아니라 동행으로.
그러나 아버지는 한 가지를 알지 못했다.
사랑이 언제나 윤리 안에 머무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말들 역시
선택만큼이나 무거운 결과를 남긴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아이를 분석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를 구원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사랑을 선택한 한 인간의 윤리에 관한 기록이다.
그 윤리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