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것들에 대하여
그 선택은 결심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살아왔다.
사람을 이해하려 들기보다
먼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아이에게도 그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밤이 되면 아버지는 아이를 재우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노래도 부르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나 약속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잠들 때까지 호흡의 리듬을 맞췄다.
아이는 아버지의 품에서
쉽게 잠들었다. 눈을 감기 전까지
주변을 한 번 더 훑듯 바라보고,
마치 확인이 끝났다는 듯 아무 미련 없이 잠에 들었다.
아버지는 그 장면을
좋아했다. 아이에게서
의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붙잡고 있는 아이.
그것은 그가 믿고 싶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을 때,
아이는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단어는 늦지 않았고 발음도 정확했다.
다만 아이는 부르는 말을 먼저 사용하지 않았다.
“아빠”도,
“엄마”도
필요할 때만 입에 올렸다.
대신 사물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색깔, 모양, 위치.틀리지 않았다.
어른들이 감탄할 만큼 정확했다.
“똑똑하네.”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에
기쁨을 얹지는 않았다.
지능이 아니라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칭찬에 반응하지 않았다.
꾸중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그 반응은 늘 짧고 기능적이었다.
마치 필요한 신호만 주고받는 것처럼.
아버지는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비교하지도 않았고, 정상이라는 말로 덮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를 반복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식탁에 앉고 같은 길을 걸었다.
아이에게 기대도,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아이 스스로 사람을 향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윤리였는지
사랑이었는지는 아버지 자신도 아직 구분하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는 이 아이를 혼자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는 점이다.
이해할 수 없어도,설명되지 않아도, 끝까지 같은 자리에
서 있겠다는 선택.
그날 밤, 아버지는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기록은 아직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이 정확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묻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문장을 덮고 노트를 서랍에 넣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정장을 입었지만 깔끔함보다는
오래 입은 옷의 익숙함이 먼저 보였다.
병원은 도시의 중심에서 한 발짝 비켜난 곳에 있었다.
아버지는 정신과 병동을 지나 상담실로 들어갔다.
복도에는 낮은 목소리와 길게 늘어진 침묵이 섞여 있었다.
문 앞에는 오늘 만날 이름들이 조용히 붙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일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을 고치지 않는 일을 했다.
진단을 내렸고, 약을 처방했고, 필요할 때는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는 누구에게도
“이래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상담실 안에는 책이 많았다.
심리학 서적, 정신의학 교본,
철학책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칸트와 프로이트, 니체와 융, 정신분석과 윤리학이 뒤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환자의 말을 끊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져도 재촉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순간이 말을 멈췄을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이야기를 왜 꺼내셨을까요.”
그 질문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유를 열어두기 위한
최소한의 틈이었다.
병원을 나설 즈음이면 아버지는 늘 피로해 보였다.
그러나 그 피로에는 후회가 섞여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람 곁에 머무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아직 퇴근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아내는 회계사였다.숫자와 계약, 마감과 책임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집 안 서재 한쪽에는 두꺼운 장부와 노트북, 계산기가 정리되어 있었다.
아내의 일은 감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정확함과 지속성을 요구했다.
아내는 그 요구를 묵묵히 감당하는 사람이었다.
저녁 무렵 아들이 먼저 숙제를 했고, 딸은 마루에 앉아
블록을 정렬하고 있었다.
쌓기보다 맞추는 일에 가까웠다.
색을 나누고,크기를 맞추고,남는 조각을 옆에 두었다.
“같이 놀아.”
아들이 말하면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가 잠시 멈췄다.
“지금은 아니야.”
거절은 짧았고 감정은 섞이지 않았다.
아들은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자기 일을 했다.
그들은 다투지 않았고, 설득하지도 않았다.
아내가 돌아오면 가족은 식탁에 앉았다.
하루의 이야기는 주로 아내와 아들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듣는 쪽에 머물렀고, 딸은 음식을 먹는 데 집중했다.
아이가 말을 할 때는 대개 필요한 것만 말했다.
“물.”
“밥 더.”
“불.”
아버지는 그 단어들의 정확함에 익숙해지려 애썼다.
사랑은 언젠가 말로 나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밤이 되면 아내는 서류를 정리했고, 아버지는 책을 펼쳤다.
아들은 잠들었고,딸은 혼자 앉아 창밖을 보았다.
그 장면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아버지는 그 평온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매일 불안과 혼란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 집 안까지 끌려오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같은 문장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아이는 틀리지 않는다.
아직은 그 정확함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날은 비가 오지 않는 오후였다.
아내가 잠시 전화를 받으러 방을 나갔고,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아들은 방문을 닫고 숙제를 하고 있었다.
딸은 거실 바닥에 앉아 작은 고무 공을 굴리고 있었다.
공은 테이블 다리를 맞고 방향을 바꿨다.
딸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공을 집어 들고 다시 같은 각도로 굴렸다. 이번에도 같은 지점에서 같은 반응이 나왔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때 공이 테이블 아래로 들어갔다.
딸은 몸을 숙였다. 테이블 아래에는
며칠 전부터 기르기 시작한 작은 햄스터가 있었다.
아들의 요청으로 들여온 것이었다.
딸은 그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딸은 햄스터를 꺼냈다.손에 올려놓고
잠시 바라보았다.
움직임,체온,저항의 정도.
그리고 손가락을 조금 더 조였다.
햄스터는 짧게 몸을 떨었다.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딸은 놀라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않았다.
손의 힘을 풀고 햄스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아내가 거실로 돌아왔다. 딸은 말했다.
“안 움직여.”
그 말은 보고가 아니라 현상 전달에 가까웠다.
아내는 비명을 질렀고,
아버지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는 딸의 얼굴을 보았다.
거기에는 후회도, 공포도, 기대도 없었다.
아이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실험의 끝을 확인하듯.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딸을 안지 않았고,
혼내지도 않았다.
그저 햄스터를 치웠다.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그날 밤 아버지는 노트를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열어두지 않았다. 펜을 들었다.
아이는 틀리지 않는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그러나 정확함은 언제나 선을 향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질문을 하지 않기로 한 선택이 얼마나 오래 자신을 붙잡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침묵이 선택이 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