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불편한 침묵

흐르는 것들에 대하여

by 아르칸테


2장 불편한 침묵

딸이 네 살이 되었을 무렵,
집 안에는 묘한 규칙이 생겼다.
아무도 정하지 않았고
누구도 합의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지켜지고 있는 규칙이었다.

질문을 서두르지 않는 것.

아이는 여전히 말을 아꼈다.
필요한 말만 했고,
불필요한 감탄이나
공유의 언어를 만들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은 거의 하지 않았고,
대신 사물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그 시간을
깨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의 침묵을
결핍으로 부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가끔 물었다.
“말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아버지는 대답 대신
아이의 등을 한 번 쓰다듬었다.
그 행동은 설명이 아니라 유예였다.

딸은 놀이터에서도 비슷했다.
다른 아이들이 소리를 높일 때
아이는 미끄럼틀 옆에 앉아
그 순서를 지켜보았다.
누가 먼저 오르고,
누가 밀리고,
누가 울고,
누가 금방 잊는지.

다가가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필요한 만큼만 가까웠다.

어느 날
아이 하나가 넘어졌다.
무릎을 쓸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른들이 달려갔고,
아이들은 몰려들었다.
딸은 그 장면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았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다가가며
딸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 얼굴에는 놀람도, 동요도 없었다.
다만 사건이 어떻게 정리되는지를
끝까지 확인하려는 시선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물었다.
“아까 왜 가만히 있었어?”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다른 사람이 있었어.”

그 말은 도움이 필요 없다는 판단이었고,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었다.
아버지는 그 논리가 너무 이르다는 생각과
너무 정확하다는 생각 사이에서 잠시 멈췄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질문을 줄였다.

“왜 그랬어?” 대신
“그랬구나.”를 썼고,
“어땠어?” 대신 아이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다림은 편안하지 않았다.
침묵은 언제나 무언가를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질문은 방향을 만든다는 것을.
지금 던지는 질문 하나가
아이의 세계를 너무 빨리 좁힐 수도 있다는 것을.

밤이 되면 딸은 혼자 그림을 그렸다.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신 선과 도형,정확한 간격들이 반복되었다.

아버지는 그 그림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석하지 않았고, 의미를 찾지 않았다.

말을 멈춘다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딸은 아버지가 묻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
더 말하지 않았고,더 숨기지도 않았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끔 이 침묵이
사랑인지, 회피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 질문조차 아이 앞에서는 꺼내지 않았다.

그는 선택했다.
아이에게 의미를 요구하지 않기로. 감정을 강요하지 않기로.

불편한 침묵 속에서
아버지는 점점 더 오래 멈추는 사람이 되었고,
아이의 세계는 아직 아무 이름도 갖지 않은 채
자라가고 있었다.

불편한 침묵은 어느 순간 일상의 배경이 되었다.

그해 여름,가족은 짧은 여행을 떠났다.
멀지 않은 바다였다.
차로 두 시간 남짓, 딸이 지루해하기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딸은 차 안에서 창밖을 오래 보았다.
바뀌는 풍경을 말로 옮기지 않았고,
아버지도 묻지 않았다.
라디오가 흘렀고,아내는 가끔 웃었고,
아들은 앞좌석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숙소는 조용했다.
아이들은 신발을 벗었고,
짐은 정리되었고,바다는 그 자리에 있었다.
가족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일을 그대로 했다.

모래를 밟았고,사진을 찍었고,간단한 음식을 먹었다.
딸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가
금방 뺐다.
차갑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이미 몸으로 계산한 듯 보였다.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았고,
딸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붙잡는 힘도,기대는 무게도 없었다.
그저 같이 걷는 상태였다.

저녁이 되자 딸은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짜증을 내지 않았고, 졸리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누웠을 때,
딸은 말없이 잠들었다.

아버지는 그 평온이 조금 낯설었다.
너무 무리 없는 하루였기 때문이다. 사건도,흔들림도 없었다.

다음 날도 비슷했다.딸은 사진을 찍자고 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기록하지 않았다.
그들은 행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무난한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날,차에 오르자마자
딸은 울기 시작했다.갑작스럽지 않았고,
격하지도 않았다.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아내는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 아파?”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울음은 요구가 아니라 지속이었다.

아버지는 차를 세우지 않았다.속도를 줄이지도 않았다.
뒤를 보지 않고 앞만 보며 운전했다.
딸은 중간에 쉬지 않았고,
울음의 강도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내는 물을 건넸고,아들은 말을 걸었다.
딸은 받지도,거부하지도 않았다.
울음은 정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차는 집을 향해 그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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