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3.04.16. 일. 흐림) 오전에 대구 앞산공원을 탐방하고, 오후에 대구 도시철도3호선을 타고 청라언덕(신남) 역에서 하차했다. 계산오거리 180m 전에서 좌측 골목으로 조금 올라 가면 청라언덕이 나온다. 계명대 동산병원 남문 앞 청라언덕 진입로에 들어섰을 때 마침 계산오거리에서 자전거바퀴를 굴리며 올라오고 있는 여학생이 보였다. 핸들 바구니에는 책가방이 담겨 있었다.동무생각의 백합 같은 그 친구의 후예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골목 투어 벽화 및 안내 표지판 (동산병원 남문 앞)
오후 일정은 다음과 같다.
청라언덕(동무생각 노래 비)>미국 선교사 주택(스윗즈 주택,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 선교사 무덤(은혜 정원)>대구 제일교회>3.1 만세운동길> 계산성당>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국채보상운동 서상돈 선생 고택
청라언덕 가는 길
1. 청라언덕
외국 선교사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대구 근현대사와 개신교, 가톨릭 역사를 볼 수 있는 유적이 있다. 청라언덕에는 선교사주택, 3.1 운동 기념 계단, 사과나무, 대구제일교회 계명대 동산병원등이 위치해 있다.근대건축물의 밀집지역이다.
청라(靑蘿)라는 이름의 유래는 언덕 위 선교사 주택들의 벽면이 푸른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어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써 ‘푸른 담쟁이덩굴’에서 왔다. 푸른 담쟁이덩굴이 있는 언덕에 있다. 개화기20세기 초 황무지였던청라언덕 땅에1898년 선교사 아담스와 존슨이 병원과 학교와 주택을 지었다.
이야기는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곡자 박태준(1901∼1986)은 청라언덕 서쪽에 있는 계성학교(현 계성고)에 다녔다. 그는 등하굣길에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한 여학생을 짝사랑했다. 언덕 아래에 있던 신명여학교(SM이란 애칭으로 불림. 현 신명고) 학생이었다. 내 기억으로도 여고생들 교복 입은 모습이 단아한 백합을 닮았다. 가사의 ‘백합 같은 내 동무’가 바로 그 여학생이다.
이후 박태준 선생이 경남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 동료 교사였던 노산 이은상(1903~1982)에게 자신의 첫사랑을 이야기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동무생각이다.대구 중구문화원과 계명대 동산병원은 2009년 청라언덕에 ‘동무생각’ 노래비를 세웠다. 봄이 되면 ‘백합 화단’에 꽃이 만개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백합 화단은 대구 중구가 40개 화단에 700 포기를 심어 만들었다고 한다.
스윗즈 주택
선교박물관(스윗즈 주택)
선교사 마사 스윗즈(Martha Switzer)가 거주하던 곳이었다. 방명록 작성 후 출입할 수 있다. 현재는 선교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1층에는 각종 성경 책자와 선교 유물이 있고, 2층에는 성막모형과 성경 관련 소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1910년경 건축되었으며 당시 대구읍성 철거 시에 나온 성돌을 기초석으로 하였다고 한다. 대구 유형문화재 24호다.
챔니스 주택
의료박물관(챔니스 주택)
1910년경에 건축되었으며 선교사 본 챔니스(O.Vaughan Chamness), 계성학교 제2대 교장 레이너(Reiner), 제7대 동산병원장 마펫(Moffet)이 거주했던 주택이었다. 현재는 의료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1800년대~1900년대 동서양의 많은 의료기기가 소장되어 있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청진기, 최초의 피아노 등이 있다. 대구 유형문화재 25호이다. 2017년에 선교사 챔니스의 후손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블레어 주택
교육/역사박물관(블레어 주택)
선교사 블레어(Blair)가 살았던 곳이었다. 1910년경에 건축되었으며, 현재는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층에는 시대별 교과서와 서당초등용 교육자료등이 있으며, 2층에는 대구지역 만세운동 관련 자료 사진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대구 유형문화재 26호이다.
은혜 정원
은혜정원
외국인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의 묘지이다. 묻힌 사람 중에 생후 1년 남짓한 아기가 5명이나 된다고 한다. 당시 열악한 의료 상황이 주요 원인이라고 추정한다. 비석의 내용은 이렇다.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생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여기 잠들어 있다.” 숙연해진다.
탐방객과 인사하고 있는 검은 고양이
경내 순환로 옆 잔디밭에서 놀던 커다란 검은 고양이가 관람객에게 접근하며 장난치는 광경을 포착했다. 검지 손가락을 고양이 코에 갖다 대도 능청을 떨며 장난을 받아 준다. 이곳에서는 고양이도 젠틀 맨이다.
대구 3.1 운동 만세 길 (청라 : 벽의 당쟁이)
대구 3.1 운동 만세 길
1919년 3월 8일(토요일)오후 3시경 대구에서도 3.1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길목이다. 계단이 90 개라 구십 계단이라고도 불린다. 계단 옆 벽면에 당시 상황과 생활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대구고등보통학교, 계성학교, 신명학교등 학생들이 이 골목길에서3월 8일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큰장(西門外場,당시 전국 3대 시장의 하나, 현재 섬유회관 건너편 위치, 후에지금의 서문시장위치로 이전함)에서 학생과 교회지도자들이 주동하여 일어났다.
독립선언문 등사 건물(계성학교 지하실)
선교사들이 모여 살던 동산에는 나무가 우거져 일경 몰래 이동하기가 수월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척, 빨랫감을 들고 빨래터에 가는 척하면서 큰장가는 지름길이었던 90 계단길을 올라가 청라언덕을 넘어 큰장으로 몰려갔다. 학생들이 모여들자 미리 시장에서 기다리던 이만집 김태련 등은 쌀가마니등으로 연단을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읽었다. 계성학교 지하실에서 등사를 한 유인물을 뿌리고 1,000여 명(157명 체포)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3방향 대구경찰서(현 중부경찰서), 남성정(현 약령시 일대), 달성군청(현 대구백화점)으로 행진했다.
고종 황제 서거로 3.1 운동 신호탄
3월 9일 10일 29일에도 시위가 계속 일어났다. 3월 30일에는 가장 큰 시위로 3,000여 명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학승들도 참가하고, 상인들도 철시 운동으로 가세하였다. 4월 15일(대명동) 26일 28일(공산면 미대동, 현 동구)에도 계속 시위가 이어졌다.비밀결사 단체인 혜성단에서는 친일파(官公吏)들에게 암살 경고문을 보냈다. 혜성단 주동자 김수길(계성학교 학생, 19세) 학생은 체포되어 4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처 뉴스민)
사과나무
청라언덕은 대구 사과의 고향이다. 1899년 동산병원 초대 원장 존슨 (Woodbridge Johnson) 박사가 이 땅 최초로 서양 사과를 미국 미조리주에서 가져와 심었다. 최초 사과나무의 자손목(3 세목)들을2007년에 육성하여2012년에 청라언덕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최초의 동산의료원 개원 100주년을 기념하여, 전국 담장 허물기 첫 행사로 철거한 동산의료원의 정문 및 중문 기둥과 담장을 옮겨다 세웠다. 이곳에서실제로 종을 칠 수도 있다.
대구 제일 교회
대구제일교회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다. 대구지역 최초의 교회인 대구제일교회를 계승하여 2002년 완공한 교회이다. 청라언덕에 있는 대구제일교회는 언덕에 위치하여 계산오거리 부근에서 그 모습이 매우 잘 보인다.90 계단 방향의 계산 성당과 마주 보고 서 있다.
계산 성당
2. 계산 성당
대구시 중구 서성로 10(계산동 2가)에 있는 성당이다. 계산오거리 매일신문사 옆에 있다.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1898년 본당을 세웠다. 1901년 2월 성전 부지정리작업을 시작하여 1902년 12월 1일 외부 공사를 완료하고, 1903년 11월 1일 뮈텔 주교가 축성식을 거행했다.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디자인하였고,외부공사나 벽돌조달은 청나라 인부들이, 부지공사나 벽돌공장 건설은 일반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결혼식 (1950)
박정희 전 대한민국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1950년 12월 12일6.25 전쟁 중에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결혼식 주례를 보던 대구시장 허 억(許億)이 신랑 육영수 군, 신부 박정희 양이라고 소개한 일화의 그 장소이다. 두 사람 모두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당시가 전쟁 중이라 마땅히 결혼식 장소가 없었던 탓에 성당에서 식을 올렸다고 한다. 제대 하단부 중앙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팔)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계산 성당 방문(1984년 5월 5일)
1984년 5월 3일부터 5월 7일까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천주교회 선교 200주년과 순교자 103위 시성식을 위하여 한국 교회를 방문하였다. 그기간 중 5월 5일 계산 성당을 방문하였다.
글이 길어져, 민족 시인 이상화 고택과 국채보상운동 서상돈 선생 고택은 다음 편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