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20170701)은 돌의 나라(石国)로 여행을 간다. 치바현(千葉県) 鋸山(노고기리 야마, 톱날 산, 安房郡鋸南町과富津市 경계)에 지옥 엿보기(地獄のぞき), 일본사 대불(日本寺 大仏), 백척 관음(百尺観音), 천오백 나한(千五百羅漢)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불교 관련된 유명한 곳이다. 덤으로 거산(鋸山, 톱날 산, 노고기리 야마)을 등산한다.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십리도 같이 가줄 오랜 선배가 적극 추천하여 두말 않고 따라나섰다. 특히 둘은 등산으로 다져진 혈맹이자 교우다. 산의 절벽이 톱날 모양으로 생겼다고 했다. 따라만 가면 되니 편안한 여행길이 될 것은 틀림없다. 관광 해설자를 대동하였으니, 든든하기 그지없다. 요코하마 간나이역에서 만나, 구리하마항에서 배를 타고 동경만 바다를 가로질러 치바현 금곡항에서 하선, 정상까지 등산하였다.
주요 경로는 다음과 같다. 요코하마 간나이역(関内駅)->구리하마역(京急久里浜駅)->꽃의 나라 공원(くりはま花の国)->구리하마(久里浜)항->금곡항 (金谷港, 카나야 항)->도보로 이동 거산(鋸山, 노고기리 야마, 표고 329m) 등산-> 암 무대/석절장적(岩舞台/石切場跡)->서국관음(西国観音, Saigoku Kannon)->지옥 산정 전망대(지옥 엿보기, 地獄のぞき)->통천관(通天関)->천오백 나한도(千五百羅漢) / 石段 / 木根道)-> 日本寺 大仏(にほんじだいぶつ)이다.
간나이 역(출입구 상단에 요코하마 팀 상징 대형 야구헬멧이 올려져 있다)
1) 요코하마 간나이역(関内駅) / 요코하마 스타디움(야구장)
언제나처럼 주요 장거리 여행 출발점이다. 흐린 날씨다. 옆에 요코하마 공원과 야구장이 있다. 미국 전설적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방문한 기록이 있다. 특히 한때, 이승엽 선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팀 소속 4번 타자로 대활약했다. 통합 참피언했던 최강팀이었다. 관람 당일 9회 말에 역전 홈런을 맞아 자이언츠팀이 졌다. 홈런을 맞아 역전패하자, 옆 자리에서 자이언츠팀을 열심히 응원하던 어린 소년 광팬이 얼굴을 감싸 쥐고 소리내어 흐느껴 울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게이큐 구리하마 역 주변 하천
2) 게이큐 구리하마 역 (京急久里浜駅)
역에서 나와 구리하마항까지, 수로 주변 도로를 따라 걸어서 가기로 했다. 여행의 기억은 걸어가면서 직접 볼 때 많이 남는 것 같다.
울타리 옆으로 지나갔다. 가보고 싶었지만, 배 타고 바다 건너 등산을 해야 한다. 시간이 없었다.
구리하마 항
4) 구리하마 항(久里浜港, 東京湾フェリー のりば)
오래간만에 배로 이동하니 감개무량하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 위를 달리는 배 갑판에서 보는 바다는 역동적이다. 배 뒤편에서 일어나는 물보라와 원거리 산들이 조화를 이루어 주마간산 달리는 기분이다.
도쿄 만 선상 풍경
5) 금곡항 (金谷港, 하마칸아야 항)
하선하여 물고기가 그려진 식당을 지나,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는 곳 근처까지 이동했다.
금곡항에서 등산로 이동
그 근처에 등산로가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 타는 곳
6) 도보로 이동 등산 乾坤山 / 鋸山 (標高329.5m)
선배가 오래전에 이곳에 와서, 등산로 진입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주로 등산객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가기 때문에 등산로 이용객이 적었고, 위험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오랜 풍화 작용으로 흙과 수목으로 가려 있지만, 표토 바로 발아래가 미끄러운 거대한 바위산이다.
등산 중턱에서 바라 본 바다
매스컴에 추락 사고가 종종 일어났다고 했다. 선배가 등산 스틱을 깜빡하고 준비해 오지 않아, 나의 지팡이를 빌려 주었다. 나는 마른나무 가지를 꺾어 지팡이로 사용했다. 7월 초입이라 덥고 땀이 계속 쏟아졌다.
노고기리 산 정상 표지판(329m)
공식 이름은 건곤산(乾坤山)이다. 하늘과 땅을 의미한다. 응회암(凝灰岩)으로 된 산이다. 고급 건축 석재 재료로 사용됐다고 한다. 에도 시대부터 석재 재료 채석장으로 유명했다. 채석장은 자연 보전 규정의 강화로 1985 년 채석이 금지되었다. 결과적으로, 노출된 산 표면 암석이 톱니처럼 보이기 때문에 鋸山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862년 영국 외교관 어니스트 사토가 도쿄만 바다 증기선으로 요코하마에 부임하러 가는 도중에 ‘오른쪽에 톱니처럼 보이는 톱산(鋸山)을 보았다’는 기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도쿠가와막부 말기부터 채집된 돌은 주로 요코스카 항구, 요코하마 항구, 도쿄 항구의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통천관
7) 通天関(통천관, Tuten kan)
바위를 뚫어 구멍을 낸 다음, 통로로 사용했다. 나무뿌리가 표토를 감샀다.
멜론 겉껍질 같은 나무 뿌리
멜론 겉껍질의 힘줄처럼지표에 나타나는 등산로가 있다.
암 무대/석절장적
8) 암 무대/석절장적(岩舞台/石切場跡)
바위가 많은 지역으로 둘러싸인 광장은 우수한 음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콘서트가 열렸다고 한다. 자연과 석재 채석장의 절묘한 조화다. 서국관음 앞 장소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작은 바위가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 튀어나온 작은 바위가 지옥 엿보기(地獄のぞき) 바위다.
관음상
돌 채석장의 유적은 절벽으로 도처에 남아 있다. 수직으로 자른 인공 절벽은 거대한 인공 작품이다.
한편으로 돌 채석장 유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자연 파괴의 결과물이자 흔적이다. 작업 중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을 것이다.
케이블카 장상과 채석 흔적
석공 기술자들이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절벽을 타고 내려가 각종 장비와 도구로 절단하였을 것이다. 작업 중 목숨을 잃은 이는 자기 몸을 가족을 위해 공양한 것이리라.
채석 흔적
에도말 시대라, 변변한 이동 도구도 없이, 인간의 육체로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석재를 마차나 조그마한 배로 옮겼을 것이다. 산중에 석재 이동로는 지금의 등산객이 다니는 가파른 계단 등산로다. 돌 계단석 하나를 밧줄로 묶어 4명이 어깨에 둘러메고 마차나 배까지 이동하는 고난의 작업 모습이 상상되었다. 힘든 노동의 결과가 쌓이고 쌓였다. 마침내 돌산을 100m 수직 절단하여, 거대한 절벽 장면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한때 지역 인구의 80 %가 석재 산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채석 이동 통로 계단
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 산을 옮겼다는 고사성어 전설이 생각났다. 옛날 중국의 북산(北山)에 우공이라는 90세 된 노인이 있었는데, 사는 곳에 큰 두 개의 산으로 가로막혀 교통이 불편했다. 우공이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남을 테고, 아들은 손자를 낳고……. 이렇게 자자손손 이어 가면서, 산을 조금씩 깍고 옮기면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하고 말했다. 한편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 자신들의 거처가 없어질 형편이라 천제에게 간절하게 호소했더니, 천제는 우공의 우직함에 감동하여 두 산을 옮겨 놓게 했다고 한다는 전설이다.
인간의 포기하지 않는 ‘우공이산’의 정신이 톱날 산을 만들었다. 愚公切山이다. 즉, 석공인 인간이 도마위의 무우처럼 산을 싹둑 잘랐다.
서국 관음상
9)西国観音(Saigoku Kannon)
석재 예술가들이 석재 표면을 파고들어 간 다음 직각으로 자른 돌로 둘러싸인 거대한 관음상을 표현했다. 관음 동상은 약 30.3m의 거대한 동상이다. 눈 위의 지옥 엿보기(地獄のぞき) 바위가 한눈에 같이 들어온다.
지옥 엿보기 바위
10) 지옥 산정 전망대(山頂展望台, 산 정상 329m) / 지옥 엿보기(地獄のぞき)
전망대에서 미우라 반도, 이즈 반도, 후지산 등을 대형 360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능선의 돌 산 끝에 아슬아슬하게 겨우 매달려 있는 듯한 지옥 엿보기는, 석재 장인들이 돌 절단기를 가지고 장난친 결과물이다. 장인들은 그렇게 유명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장인이 속한 돌 채석장의 이름은 여전히 바위 얼굴에 남아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히사시"라는 단어 위에 "나"라는 글자 표시가 있다고 한다.
채석 흔적
정상 근처에는 석조 채석장 절벽 위,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암반 아래 약 100 미터가 보인다.
채석 흔적
고소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야 한다.
지옥 엿보기에서 내려다 본 전경
인터넷 질문답에서 그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지바현의 톱산에 튀어나온 바위가 떨어지지 않을까? 언젠가는 거기에 가고 싶지만, 점점 더 무서워진다. 답해 주길 바란다.’고 질문했다. 답변은 ‘장기적으로 볼 때, 언젠가는 반드시 붕괴될 것이다. 또한 큰 지진으로 인해 갑자기 붕괴될 수 있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으며 당신의 운에 달려 있다.’고 누군가가 답변했다. 그러자, 질문자는 ‘답변해 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그 지옥 엿보기 바위 위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론은 그것은 확실히 미래 언젠가는 떨어질 것이다.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달도 거대한 행성이 지구를 강타하여 떨어져 나가서 생겼다는 가설이 있다. 하물며 인간이 만든 조형물에 영구불변이 있을 수 있을까.
천오백 나한상
천오백 나한상
11) 천오백 나한(千五百羅漢Sengohyaku Rakan)
바위를 사용하여 새겨진 많은 부처님 이미지로 점재 되어 있는 자연 박물관이다.
石工 장인 大野甚五郎 英令(hidenori)와 그의 제자 27명이 에도 시대 후반 1779 년부터 1798 년까지 약 21년 동안 등산로 주변 수십 군데에 1,553 개의 돌부처를 조각했다고 한다.
동일한 형태는 없고 그중에 어느 하나는 자신의 모습을 닮은 부처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온화한 상이 대부분이나 고행을 묘사한 상이 더러 있었다. 지진 등의 영향으로 머리 부분이 없어진 상도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형언 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표현한 등신불을 닮은 나한도 있었다. 그 고통이 그대로 전해 졌다.
12) 参道(삼도) 안내판
좀 과장된 장난기의 ‘심장이 약한 사람은 등산하지 마세요’
「心臓の弱い人は登らないように」라는 안내 간판이 있다. 수많은 오르내리는 돌계단길이 있어 일면 수긍이 갔다.
13) 日本寺, nihonji)
古刹 일본사(日本寺)는 서기 725年에 개찰되었다고 한다. 曹洞宗 계열이라고 한다.
일본사 대불
14) 日本寺 大仏 (Nihon-ji Daibutsu)
부처님의 자비로운 모습이다.
1783년 大野甚五郎英令(hidenori) 문하, 27 명의 제자가 바위를 3년간 조각하면서 세워졌다. 발기 당시의 높이는 약 37.7m였다. 그러나 수년 동안 비와 바람에 의해 침식되었고, 에도 시대 말기에는 지진등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로 붕괴 상태였다. 복원 작업은 1979년에 완성되었다. 동상의 높이는 31.05m로 원래 유형보다 약 7m 낮아졌다. 나라 지방에 있는 큰 부처님이 18.18m이고, 가마쿠라의 큰 부처님이 13.35m라는 것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크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