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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un Oct 05. 2024

연애는 무슨, 일이나 하자

2017년 스톡홀룸에서


9년 차 J, 서른 중반에 들었다.

토요일 저녁, 10월 중순 날씨는 좋지만 딱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거실 소파에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휴일이 가길 기다린다.


주말이면 J는 '나 혼자 산다'를 본다. 

스무 살 이후 혼자인 삶, 적응 따윈 없다. 그냥 지낼 뿐이다.

갓 스물, 홀로 사는 생활이 이리 오래될 줄 몰랐다.

서른 전 결혼 제도 속에 들어갈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비껴갔다.


외롭진 않다. 

외롭다는 감정은 벗어던진 지 오래다. 

이 감정을 안고 있으면 일상이 더 초라하고, 삶에 자신이 없어진다.

씩씩한 척하다 보면 씩씩한 거 같고 씩씩하게 보이고.


심심하긴 하다. 

출근하지 않는 날엔 혼자 밥, 혼자 TV, 혼자 대화, 이건 적응이 서툴다.

TV 채널로 티격태격도 하고, 배달음식 뭘로 시킬지 얘기하고,

늘 안 맞는 부장과 동료 얘기도 하고 싶은데.

 공간, 내뱉는 말은 허공에 사라진다.


'까똑'

핸드폰 화면에 「민희영 과장님」이 찍히더니 사라졌다.


'엥? 민과장이 주말에 무슨 일이지?'

민과장은 J의 회사 밥친구다. 같은 부서는 아니지만, 동갑에 업무도 얽히지 않은 적당한 거리의 동료다.


노란 앱을 눌러 들어가니,

책임님, 전화 안 받으시네용.. 전화 부탁드려용~


'어, 전화했었나? 아, 무음으로 되어 있구나.'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있었다.

전화를 건다.

신호가 울리고 밝은 민과장 목소리가 들린다.


"책임님, 소개팅 안 할래요?"

"네? 아하하, 소개팅요?"

오랜만에 들어온 소개팅에 멋쩍게 헛웃음이 난다.

"응, 울 남편 중학교 동창인데, 이번 동창회 갔다 만났대요. 직업, 외모, 학벌, 집안 다 괜찮아요. 서울에 집도 있고요. 진짜 괜찮아요."

직업, 외모, 학벌, 집안... 다 괜찮다고? 그런 사람이 서른 후반인데 아직 남아있다고? 에이~

"글쎄요."



서른 넘기며 J는 연애와 결혼을 인생에서 뒤로 미루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일은 노력하면 성과가 나고, 일은 애쓰면 보람있고, 일은 한만큼 결과가 돌아왔지만,

J에게 연애는 늘 아니었다. 

연애는 늘 예상을 벗어났고,

J 손이 닿지 않는 저 멀리에 있었다.

연애가 흔들리면 일은 엉망이고 일상은 진창이었다.


일은 안 할 수 없지!

J는 누군가에 기대 평생을 사는 인생이 허락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성공해 최소 중산층, 운이 좋다면 상류층이 되고 싶었다.

일하는 과정 돌아오는 성취는 J를 그곳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그냥 가볍게 밥 함 먹는다 생각하고 나가봐요~ 

이 오빠 이상형이 책임님이랑 되게 비슷해요. 

그리고 나도 몇 년 전 본 적 있는데 괜찮아요. 

진짜 책임님이랑 소개해주고 싶어요."


민과장 남편은 무리에서 유명하다. 

집값 비싼 동네서 자랐고, 스펙도 좋은데, 자상하고 친절하기도 해서.


"그럼 한 번 해볼까요."

혹시나 인연이지 않을까, 아주 가느다란 희망의 실을 놓치고 싶지 않아, 거절을 거둔다.

"오호, 좋아요. 책임님. 책임님 전번 전할게요."

"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뵐게요."




J는 다시 소파에 누웠다.

소개팅이라, 몇 년 만인가.

20대 솔로일 때는 한 달 한두 건은 들어왔는데, 30대가 되니 확연히 줄었다.

적극적으로 소개팅을 찾으러 다니지 않기도 했고.

솔직히 이제는 기대도 안된다.

횟수가 준 만큼 괜찮은 사람도 없어졌다, J의 경험으로는.


아니 어쩌면 J가 바뀐 건지도 모른다. 

사회생활 버텨내기 위해 설레는 감정은 저 안 어딘가로 꾹꾹 눌러 놓거나 멀리 보내야 했다.

프로페셔널한 이성과 연애의 감정을 J는 함께 두지 못했다.

불안하게 저글링 하다 이내 하나를 떨어뜨려 균형이 깨졌다.


이렇게 마흔을 맞으면 어떡하지, 걱정하지만 대안은 없다.

이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그래, 연애는 무슨, 일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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