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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Jun 07. 2023

내 엄마가 그럴 리 없어(4)

신혼집 구하기 ④





  쇠뿔도 단김에 빼란 말은 이럴 때 쓰던가. 그 길로 여자친구가 추천한 아파트 단지를 방문했다. 허름한 상가의 공인중개사에 들어가 상담하니, 중개사 아주머니가 마침 보여줄 수 있는 집이 있다며 자기를 따라오라 했다. 높아야 10여 층, 낮으면 5층짜리인 아파트는 건물은 낡았지만 그동안 봐오던 집들에 비해 부지는 꽤 넓었다. 아파트 한 동 한 동이 널찍하게 펼쳐 저 있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뒤로 낮은 산을 끼고 있어서 인지 전반적으로 아늑한 느낌이 곳이었다.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복도를 따라 여러 현관문들이 죽 늘어서 있는, 복도식 아파트 배열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단지 입구부터 알 수 없는 기시감(旣視感)에 고민하던 나는 마침내 이곳이 어렸을 적 놀러 다니던 외삼촌 댁이었음을 생각해 냈다. 외삼촌이 회사에서 지급받은 아파트로, 꽤나 빈번히 오가며 사촌형과 놀았던 기억이 난 것이다.   


    ‘그땐 완전히 새 집에 최신식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낡았다니... 세월 참 빠르네...’     

감회에 젖은 것도 잠깐, 현관문을 들어서며 나의 눈동자는 한 군데라도 더 자세히 보기 위에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은 참 번거롭고도 민망한 과정이다. 새 집을 분양받지 않는 이상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야 되는데, 일면식도 없는 남의 집에 들어서서 그들의 세간살이를 낱낱이 살피는 것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게 될 집일지도 모르는데 대충 둘러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감내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본 집엔 결혼 2,3년 차라는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고, 남편이 우리를 따라다니며 자기들은 평수를 넓혀서 이사 가지만 신혼 때는 살기 좋은 집이라고 영업(?) 아닌 영업을 했다(나중에 집을 보여주는 입장이 되니 나도 그렇게 되었지만). 단지 내에서 제일 작은 평수임을 감안하더라도 비좁은 느낌이었다. 오래된 아파트답게 안방이 크고 거실이 좁은 구조였으며, 수납공간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거주 중인 부부도정리정돈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방문한 걸 감안하더라도 이곳저곳 구석에 무심하게 쑤셔 넣은 가재도구들이 눈에 띄었다.      



   “어땠어?”  집을 나와 주차장을 걸으며 여자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솔직히 이 정도 연식이 된 집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래도 이 위치에 이 정도 가격이면 최선인 거 같아. 내부야 예상하던 정도지만, 단지 환경은 기대 이상이야. 조용하고, 넓고, 넌 어때?”     


  실제 느낀 바에서 조금도 가감 없이 내가 말했고,      


  “난 여기 맘에 들어. 지하철 역도 가깝고, 지금도 구축 아파트에 살아서 그런지 위화감도 없고. 단지가 안락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아주 어렸을 때 잠깐 살아본 기억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네. 리모델링이나 수리 상태가 약간 아쉽긴 한데 이 정도면 살기엔 전혀 지장 없는 것 같아. 그리고 여기가 이 가격에 나오기 힘들거든.”     


  여자친구도 바로 답했다.     



  조금 더 둘러보고 오겠다고 뻔한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우리에게 중개사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 집주인분이 지금 지방에 살고 있어서 본인들이 입주할 생각이 없어요. 한 번 계약하시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을 거야. 연락 줘요.”     


  당연한 수순처럼 그동안 수많은 결정을 내린 카페에 또다시 마주 앉았다. 마침내 우리는 방금 본 그 집을 계약하자는데 의견을 모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가족끼리 집안 중대사에 대한 의논의 목적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비용 지원을 약속한 분들에 대한 보고에 가까웠다.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설마 그때 삼촌이 살던 그 아파트일 줄이야. 좀 낡은 거 빼곤 지금도 괜찮던데? 역에서 걸어서 5분도 채 안 걸리고....”


  그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마침내 괜찮은 집을 찾았다며 들떠있던 나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내 설명을 들으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던 엄마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나는 반대야. 다른 집 구했으면 좋겠어.”





결혼준비하며 허름한 아파트만 구경하고 다니다 보상심리(?)로 구경간 근교의 한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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