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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Jun 20. 2023

내 엄마가 그럴 리 없어(6)

신혼집 구하기 ⑥





  며칠이 흘렀을까. 한풀 꺾여 의욕을 잃은 나와 달리, 그녀는 용케도 또 다른 신혼집 후보를 선정해서 나를 찾아왔다. 이번 집은 양가(兩家)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거리는 양쪽에서 모두 멀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치 삼각형의 각 꼭짓점을 우리 집과 그녀의 집, 그리고 신혼집 후보가 각각 차지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결혼 준비 초기부터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집만은 자기한테 맞춰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그녀였다.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잘 알기에 일언반구 없이 그 길로 바로 후보지로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한 아파트 단지. 내비게이션과 차창 밖의 풍경을 번갈아 보던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여기에 이런 아파트가 있었다고?’ 왕복 8차선 대로에서 고작 100, 200m를 들어왔을 뿐인데 수십 개는 될 듯한 10여 층의 건물들이 도로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온갖 풍파를 겪은듯한 낡은 외관과 그 앞에 즐비하게 주차된 차들, 그리고 외부인의 출입에 대한 제재가 전혀 없는 오픈형(?) 구조가 이 집들이 겪은 세월은 짐작케 했다. 휴대폰을 꺼내 검색해 보니 세상에, 이 아파트 형님은 30대 중반으로 향해가는 나보다도 몇 살이 더 많다.           



  부동산에 들어가 문의하니 마침 보여줄 수 있는 집이 있단다(신기하게도 어느 부동산에 가‘마침’, ‘원래 이런 집 잘 안 나오는데’라는 말이 고정 수식어처럼 붙는 건 내 기분 탓일까). 드문드문 페인트칠이 벗겨진 외벽과,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낡은 복도식 구조에도 불구하고 방문한 집의 내부는 매우 깔끔했다. 본인들이 거주하는 집이라 얼마 전 싹 리모델링을 했으나, 회사 이직 때문에 세를 준다는 부부 뒤로 유치원쯤 다닐법한 아이가 얼굴을 삐죽 내밀었다.      


  내 결혼이 늦었다는 생각은 여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건만, 나랑 비슷한 나이또래로 보이는 부부가 자가(自家)와 다 큰 아이까지 가지고 있는 걸 보니 묘하게 조급한 감정이 들었다. 그동안 열심히 결혼식을 향해 달려왔음에도 아직도 해결할 문제가 산적해 있으며 남은 기간도 4개월이나 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 집을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낙후된 주변환경이 마음에 조금 걸리긴 했으나, 그동안 돌아다녀본 집들 중 내부 수리 상태는 그곳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교통도 잘 돼 있었다. 나와 여자친구가 각각 출근 시 이용하는 지하철 노선을 모두 갖춘 환승역이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위치했기 때문이다(물론 출근시간은 내가 2배 걸리지만). 나보다 여자친구가 특히 적극적이었는데, 자신은 구축 아파트 특유의 빽빽하지 않은 건물배치와 나무가 무성한 자연환경조차도 친숙해서 마음에 든단다.


  이번에는 부모님의 허락도 바로 떨어졌다. 마음 졸이며 새로 본 집에 대한 장점을 장황하게 늘어놓긴 했지만, 그것보단 처가에서 멀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터였다.      


  계약일은 결혼을 세 달여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결혼 전까지 집을 비워놓는 것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여자친구 말대로 가전제품과 가구를 하나씩 하나씩 준비되는 대로 들여놓으니 한꺼번에 이사하는 것에 비해 훨씬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쉽지 않았지. 나 결혼 못하는 줄 알았다니까?"


 "응, 난 진짜 도중에 때려치울까도 생각했어."


  농담조로 웃으며 말을 꺼낸 나와 달리 아내의 대답은 사뭇 진지했다.      



  "하하... 어쨌든 신혼집 보러 다니며 ‘결준남이 해서는 안 되는 두 번째 착각’을 깨달았지."    


  "아, 그때 상견례 얘기 때 착각 No3. 인가 뭔가 말했던 거?"


  궁금한 듯한 그녀의 표정을 읽으며, 분위기가 반전된 것 같아 내심 안도했다.     



  "내 부모님은 다른 부모님들과는 다를 거라는 착각. 누구보다 쿨하실 거라는 착각. 생각해 보면 같은 세대 어른들인데 왜 아들들은 그런 생각을 할까. 딸들보다 대화가 적어서 그런가."

          

  "아, 오빠. 그런데 이번에 우리 이사 가는 거, 어머님이랑 아버님께선 뭐래? 설마 다시 생각해 보라거나 그런 말씀은 안 하시지? 사실 신혼 때 내가 처음 말한 집으로만 이사 갔어도 이렇게 또 옮길 안 생기잖아."

  

  심기가 불편한 듯한 아내의 말에 나는 다시 온몸이 긴장으로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많은 일이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잊히지만, 어떤 일은 사람의 뇌리에 깊이 남아 오랜 시간 감정을 자극하는 법이다. 특히 그 선택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더더욱. 우리 부부에게 있어 첫 신혼집을 구하기는, 바로 그런 종류의 일이다.


천신만고 끝에 구한 우리의 신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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