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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Jun 15. 2023

내 엄마가 그럴 리 없어(5)

신혼집 구하기⑤





  “네?... 왜?”     


  너무 당황한 나머지 존댓말과 반말이 섞여 나왔다. ‘뭐지? 대출 조금 끼는 게 마음에 안 드시나?  그 아파트에 하자라도 있나? 아니면 아들이 너무 낡은데 살면 불편할까 봐?’ 잠깐 동안 온갖 가능성을 따져보던 나에게 돌아온 말은 사뭇 충격적인 것이었다.    

 

  “거긴 완전히 처가 근처잖아. 엄마는 그게 마음에 안 들어.”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반 쯤 입이 벌어진 내 모습을 보긴 한 걸까. 어머니는 말을 이어갔다. 요약컨대 ‘보증금도 부모님 당신들께서 도와줘서 해결하는 건데, 아들이 처가에 더 가까이 사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당황스웠지만 나름대로 성실히 해명(?)과 설득도 해봤다. ‘어차피 양가가 차 타고 10분 남짓한 거린데 어느 한쪽이 조금 더 가까운 게 대수냐, 이 정도 좋은 위치에 이 가격으로 집 찾기가 쉬운 줄 아시냐’로 시작해서 마지막엔 ‘나중에 애 낳으면 예비 장모님께서 봐주신다는데 그러면 처가와 근접한 게 낫지 않느냐’는 말까지.      


  “애 낳으면 그때 가서 이사하면 되지. 신혼인데 2년쯤 다른데 사는 게 뭐 어때서”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어머니의 마음 돌리기를 포기했다.     


  오늘 겪 일을 여자친구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하는 부담감에 벌써부터 속이 쓰려오는 것 같았다. 이제는 조금 덤덤해질 법도 하건만, 부모님의 반대 의사를 여자친구에게 전달하는 건 단연코 결혼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경험이자 익숙해지지 않는 스트레스였다.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내용을 전달해서가 아니다. 나는 내가 결혼할 사람이 우리 부모님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면 좋겠는데, 거절이란 과정은 필연적으로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니까.


  그래서 처음엔 부모님(특히 어머니)의 말을 순화도 해보고, 마치 내 의견인양 연기도 해봤다. 하지만 결국 깨달은 점은 ‘어차피 거절의사를 전할 것이면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결혼식 날짜도, 결혼식장도, 상견례 날도, 내 나름대로 편집한 내용이 더 큰 오해를 불러오고, 오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더 불편하게 만들곤 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여자친구를 만나 어제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자, 그녀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마치 이럴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리고는 말했다.    

  

  “오빠, 그러면 차라리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각오를 보여드리는 건 어떨까? 얼마를 대출받아, 몇 년 동안 살고, 돈을 어떻게 모아서 나중에 어디에 집을 장만하겠다. 이렇게 인생 계획을 보여드리는 거야. 이 정도로 개념 있는 모습을 보이면 긍정적으로 봐주시지 않을까?”       

   

  용기 있다고 해야 할까, 끈질기다고 해야 할까. 나는 의기소침한 감정을 털어내고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회사에도 이런 일은 일상이지 않은가. 상사도 다시 설득하고, 고객사의 마음도 돌리려 하는데 왜 상대가 내 부모님이라고 바로 포기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녀 말대로 우리의 미래 계획을 작성하여 부모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실패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남의 부모 근처에서 사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매우 감정적인 이유로 생긴 상황인데, 그걸 인생 계획 같은 이성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설득하려 했다니.     


  그렇게 우리는, 마침내 합의를 봤던 그 집을 뒤로하고 다른 신혼집을 찾아 나섰다.      


지상에 빼곡히 주차된 차와 복도식 아파트, 그 어느 쪽도 나에겐 생소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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