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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May 17. 2023

내 엄마가 그럴 리 없어(3)

신혼집 구하기 ③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일정은 촉박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 단계, 회사 일로 따지면 서류검토 단계부터 후보들이 무더기로 탈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자기 넉넉해진 시간만큼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녀의 집(나에겐 곧 처갓집이 될) 부근에서 내가 꿈꾸던 번듯한 신혼집을 찾기는 우리 예산으로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테헤란로 근처에서 어느 정도규모가 있는 아파트 단지를, 게다가 두 명의 출퇴근을 위한 교통 편의까지 고려해서 찾아야 했으니까.          


  처음 가본 곳은 그녀의 회사가 있는 오피스가에서 멀지 않은 작은 아파트 단지였다. 부모님 댁 근처지만 10년을 넘게 얹혀(?)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동네였다. 약간 경사는 있지만 차 두 대는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골목길들 사이로 소규모 단지들이 몇 개 들어서 있었다. 각각 이름도 디자인도 다른 아파트들은 10층이 조금 넘는 높이로 미루어 봤을 때 그렇게 오래되지도, 그렇다고 최근에 지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근처 공인중개사에 들어가서 대략적인 정보를 들었다. 가격은 얼마인지, 연식은 얼마나 되는지, 장단점은 무엇인지, 우리 결혼시점에 맞춰 거래 가능한 물건(物件)은 있는지. 별로 실수요자처럼 보이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원래 말투가 그런 걸까. 사장인지 직원인지 모를 공인중개사 아주머니의 설명은 딱딱한 걸 넘어 무미건조할 지경이었고, 그걸 듣는 여자친구도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별다른 질문도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문을 나서며 여자친구가 물었다.     


  “어땠어?”     


  “음..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대로변에서 떨어져 있어서 동네도 조용하고. 너 회사에서도, 양가(兩家)에서도 가깝고. 자기는?”     


  “난 싫어. 일단 단지가 너무 좁아서 답답하고 주차도 힘들어. 그리고 동네 분위기도 내가 원하는 아늑한 주거지 느낌은 아니야. 지하철도 너무 멀잖아, 오빠 지하철 타고 출퇴근할 거 아니야?”     


  나보다 훨씬 면밀한 그녀의 분석을 들으며 약간의 반성과 함께 각오를 다졌다. 한두 푼 하는 거래도 아니고 우리가 살 집을 고르는 건데 내가 너무 단순했다는 생각은 반성, 그리고 앞으로 신혼집 고르기 여정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은 각오였다. 돌이켜보면 연애 초반부터 그녀는 미래의 주거지 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하길 원했고,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의견을 숨기지 않았다.          


  며칠 후 다른 후보지를 한 군데 더 방문했다. 처음에 봤던 곳보다 조금 더 낡았지만, 그만큼 위치는 더 괜찮은  곳이었다. 지하철역도 바로 앞이고 인근엔 우리가 자주 가는 백화점과 대형 문화쇼핑몰이 도보 가능한 거리에 있었다. 공인중개사 (이번엔) 아저씨와 상담을 한 뒤, 이렇게 괜찮은 집을 내가 찾았다는 뿌듯함에 도취되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어때? 위치 정말 좋지? 대로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어서 시끄럽지도 않을 거고. 알고 보니까 내 친구 00이도 신혼생활 여기서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음... 오빠. 난 좀 그래. 여기도 일단 단지가 너무 좁고, 주거지 같은 느낌이 아니야. 굳이 따지면 오피스텔이 있어야 될 위치에 아파트가 들어와 있는 느낌? 난 집을 고를 때 안락하고, 안전한 느낌이 제일 중요하거든. 우리 나온 김에 내가 찾은데도 한 번 가볼래? 어디냐면...”    

 

  당연히 한 번에 여자친구의 결재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아직 여기저기 비교해 볼 필요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보낸 인터넷 링크 주소를 클릭하자마자 ‘그럼 그렇지’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곳은 그녀가 살고 있는 곳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소규모의 아파트 단지였다.




꽃 피는 봄에 시작한 결혼준비건만, 신혼집을 구할 때쯤엔 어느덧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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