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주년을 며칠 안 남긴 어느 날, 이삿짐을 보내고 현관문 앞에 선 채 아내가 말했다. 짐을 다 빼고 나자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가 바닥에 등을 붙이고 잠자던 신혼집은 깨끗하다 못해 따뜻한 봄날에도 휑한 냉기를 뿜어내는 듯했다. 몇 달간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 하던 공간에 새삼 미련이 남았을까.마지막으로 닫게 될 그 문사이로 집의 모습을 눈에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고 노력했다.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풍경이건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뇌는 직접 눈에 담긴 풍경만을 추억으로 저장하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는 듯했다.
“우리 이 집 처음 보러 왔을 때 기억나? 나 정말 식겁했잖아. 내가 이런 데서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젠 너무 익숙하다.”
이삿짐을 따라 새집으로 향하는 운전대에서 내가 말했다.
“그것 봐. 살아보니까 괜찮지? 집 구하러 다닐 때오빠한테 번번이 까인(?) 걸 생각하면... 휴, 말을 말아야지.”
“아 뭐가, 결국 네 말대로 했잖아. 나도 그때 엄청 양보한 거거든?”
어쩐지 오늘따라 감상에 젖더니만 역시나. 우리는 또 해묵은 예전 이야기로 티격태격하며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나자 한결 여유로워진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전까진 스케줄이 일 단위나 주 단위로 움직여 늘 할 일이 있었다면, 이제는 장기 프로젝트만 남아있는 느낌이랄까. 오래간만에 해방감을 느끼며 이제는 취미가 되어버린 신혼여행 준비로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다(원래 여행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해서 신혼여행 준비는 딱히 부담이 아니었다).
이런 소강상태를 깨뜨린 쪽은 역시나 여자친구였다.가장 중요한 문제인 ‘어디에서 살 것인가’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 불안하고 했다. 반대로 나는 전혀 급하지 않았다. 아직 결혼식까지는 5달 정도가 남아있었고, 내 기준에서 그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 번은 성화에 못 이겨 공인중개사에 방문했다가 아직 입주까지 기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이유로(이사일 기준으로 3개월 정도 남았을 때 다시 오란다) 홀대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여자친구가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집이 구해지지 않으면 어쩌냐, 미리 집 구해놓고 가구나 가전이라도 하나씩 미리 사서 가져다 놓으면 여유 있고 좋지 않냐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나를 재촉했다. 결국, 약 2주간의 짧은 휴식(?)을 취하고 우린 다시 결혼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일단 집을 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정하기로 했다. 하나는 가용 예산, 즉 돈이었고 나머지 하나가 거주지역, 즉 살 동네였다. 예산이야 가진 돈에 한계가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따라서 갈등이 생길 일도 없었다. 물론 대출 여부로 갈등을 빚는 커플들도 심심찮게 보긴 했으나, 우린 둘 다 (그 당시엔) 빚까지 져가며 집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지역에 대해선 의견 차이가 있었다. 여자친구는 자기가 살아온 동네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지 않아 했다. 평생 거의 이사 다니지 않고 한 동네에서만 자랐고, 심지어 회사도 멀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 이사도 몇 번 다녀봤고, 당시 살던 부모님 댁에서 출퇴근 거리도 꽤 멀었으므로 딱히 고집하는 지역은 없었다. 오히려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한 번쯤 새로운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약간의 모험심마저 가지고 있던 차였다.
한 명은 호불호가 확실하고, 한 명은 딱히 선호하는 지역이 없으면 당연히 원하는 게 분명한 사람에게 맞추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살아온 곳이자, 그녀가 살고 싶어 하는 곳이자, 결혼 후 그녀의 친정이 될 곳이 늘 드라마 단골 소재인 사교육 1번지였다는 점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렇게 많은 건물 중 나 하나 살 집 없을까' 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