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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Jul 12. 2023

다시 한 번, 튀르키예로

지진이 난 튀르키예로 가다 (11)

이 글을 쓰는 새벽 6시 55분. 나는 카타르 도하에 있는 하마드 국제공항의 카페테리아에 앉아 있다. 이곳은 경유지이고, 목적지로 가는 비행기는 약 2시간 뒤에 이륙할 예정이다. 그렇다. 제목처럼, 다시 튀르키예로 간다. 지진이 나고 구호활동을 위해 그곳을 방문한 지 거의 6개월 만에 다시. 무엇이 나를 이끌었는가 하면 나도 대답하기 쉽지 않다. 그때는 지진 때문에 방문했고, 목적이 뚜렷하게 하나로 모인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러나 이번엔 혼자 출국하고 있다.


브런치에 튀르키예 구호활동을 정리하는 글을 약 10편 정도로 써보자고 결심하고 글을 썼지만, 사실 쉽지 않았다. 뭘 시작하면 잘 끝을 못 내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본 것들과 느낀 것들이 잘 언어화되지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의 아픔들을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것도 쉽지 않았던 듯하다. 나는 겪어보지 못한 그 정도의 강진을 겪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도움을 건네는 일조차 사실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튀르키예를 몇 번 만났고, 그곳에 친구들이 있고, 무엇보다 그 나라 말을 할 줄 알아서, 그들의 아픔에 더욱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나의 시간과 돈을 들여서 그곳에 가기로 한 결정은 인생에서 정말 두고두고 큰 자산으로 남을 것 같다. 나의 자산이라… 사실 나는 자산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직업은 수입이 없고, 많지도 적지도 않은 장학금으로 생활하는 대학원생. 내 또래들은 사회생활이 2~5년차로 접어들면서 저축도 하고, 빚을 내서나마 자신의 차를 갖고, 주택청약에 도전해보는 등 우리 나라에서 크든 작든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데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 물론 아직도 과정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 원하는 걸 찾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런데 나는 원하는 걸 찾았지만 그것이 나의 ‘입지’를 다지는 것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래서 걱정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내가 방학 때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원생이어서 터키에 가는게 큰 어려움 없이 가능했던 거고, 다음 학기에는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되니 이번 학기의 장학금에 세이브되는 돈도 있다. 낼 수 있는 시간도 있고 돈도 있으면 그것으로 자유롭고 부유한 것 아니겠나. 비록 이 땅에서 내 것이라고 부를 만한 작은 공간이나 나의 이름이나 직책을 갖고 맡은 일은 없지만 말이다. 나는 이번 2월 무엇보다 중대한 가르침을 얻었다.


인간에게는 생명이 전부이고 그것에서 가치를 재는 그 이상과 이하는 없다는 것.  

생명이 있는 한 우린 다 가진 것이고 그것만큼은 우리에게 무한과도 비슷한 가치를 제공한다.


나는 걸을 수 있는 두 다리와 생각할 수 있는 머리와 내 앞에 놓인 모든 기쁨과 슬픔을 관조할 수 있는 마음도 가지고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닐까.


그러니까, 튀르키예는 다시 무슨 일로 가느냐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르겠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이제 정말 백수인데,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곧 나가야 하는데, 보증금도 안 모으고 일자리도 찾지 않고, 무엇보다 석사논문이 아직 남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길 또한 현실의 여러 길들과 책임 못지않게 중요한 길이고 현재이다. “지금을 즐기자”는 카르페디엠과 같은 신조와는 조금 다르다. 이 길은 한 번 여행을 다녀오면 휘발되어버리는 시간이 아니다. 나의 영혼에 쌓이는 시간이고, 나에게 주어졌던 것들 중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언어를 쓰면서,

내 생명이 그런 것처럼 그들의 생명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전해줄 수 있는 시간임을 믿기 때문이다.


왜 가냐고 다시 묻는다면. 사랑하고 사랑받으러 간다고 말하는 게 가장 정확하겠다. 여기 살아 있는 생명을 다시 한번 자각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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