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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Oct 22. 2023

마지막 밤 천막촌을 찾아가다

지진이 난 튀르키예로 가다 (9)

공식적인 구호활동의 마지막 날. 원래는 아침부터 저녁 전까지 하루 일정을 보냈으나 마지막 날인만큼 저녁에도 쉬지 않고 필요가 있는 곳으로 다니기로 했다. 우리 팀은 지금까지 지진피해가 있어 의료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지역으로 찾아가 튀르키예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했었다. 하지만 지진피해지역은 시리아인들도 많이 살고 있고, 특히나 법의 바깥에 있는 난민들도 있을 것이라 의료의 필요가 그들에게 절실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의료인 몇 분은 비공식적으로 시리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의료,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아픈 곳을 봐주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그 비공식적인 활동에 모두가 참여하게 된 것이다. 튀르키예어를 하지 못하는 시리아인이 많기에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동행해야했고, 그 밖에 튀르키예어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은 튀르키예인들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1. 시리아 가정 방문 의료 


나도 튀르키예어를 할 줄 알아서 원래 같으면 그쪽으로 가는 게 맞았을 것이지만, 시리아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사실 내가 튀르키예에서 살게 된 이유는, 시리아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으로 튀르키예에 방문했던 것은 시리아 난민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고, 그때 맺은 인연으로 튀르키예에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때 아니면 언제 시리아 사람들을 만나볼까 싶기도 했던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과 아랍어를 쓸 수 있는 현지의 학생과 함께 동행했다. 이 도시 어딘가에 지진 때문에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간다고 했다. 거기에 어린아이가 둘인 시리아 가정을 방문한다고 한다. 어디가 아플지 모르기에 작은 캐리어 가득 약품과 오전 어린이 사역때 썼던 물품 몇 가지를 챙겨서 갔다. 


그렇게 차를 타고 오르막을 거쳐 도착하니, 원래는 빈 공터였을 법한 곳이 하얀색 천막으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이미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던 시간이어서 곧 깜깜해질 것만 같았다. 천막이 가득한 곳에 전기가 제대로 있을 리 있나. 그곳은 곧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주변에서 뛰노는 아이들 소리 빼고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새삼 가득찬 천막들이 생소하게 보였다. 이들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서운 거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이지만, 자신이 누워 있던 곳을 에워싼 그 건물이 무너짐을 경험했기에. 차라리 한 겹 얇은 천막이더라도 그곳이 훨씬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그리고 나도 아파트를 선호한다. 고층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진을 겪은 이 사람들은 천막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고 불편함을 감수한다. 고층일수록 무서워할 것이다. 차라리 지면 위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우리가 안전할 것이라고 더 두껍게 벽돌을 올리고 펴 바르는 그 모든 것이 무상할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지진이라는 흔들림 앞에서는 더욱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젊은 시리아 부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들은 천막에 살고 있지 않았고, 하얀 시멘트를 바른 작은 주택에 살고 있었다. 이제 막 이사를 왔는지 가구는 거의 없었고, 그들이 살고 있는 작은 방 한 칸에는 이불과 옷가지들이 있을 작은 장롱 하나가 전부였다. 한쪽에는 어린이 장난감도 있었다. 태어난 지 백 일도 안 된것 같은 신생아가 잠들어 있었고,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지진 때문에 이곳으로 피난을 온 것 같았다. 둘째 아이가 너무 어렸는데 알고 보니 지진이 날때 쯤 탄생했다고 한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잘 감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작은 방 한 칸을 얻은 그들의 얼굴이 불행해보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어려운 시기에 이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잘 기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때문에 지금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어 보였다. 



태어난 지 몇 주 되지 않은 신생아를 키우다 보니 젊은 엄마와 아빠 둘 다 몹시 지쳐보였다. 게다가 언제든 지진이 나면 대피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 집안에 집기도 많지 않은 걸 보니 어찌어찌 삶을 꾸려 나가는 듯 했다. 소아과 선생님이 아픈 곳을 묻고 아이를 키우고 밤에 재울 때 여러 요령들을 알려 주셨다.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얼굴을 보니 누군가 진심어린 조언을 준다는 것이 한결 마음을 나아지게 하는 듯 했다. 나야말로 통역도 안 되고 가서 가져온 물건들이나 나눠주면서 근심어린 부모를 보고 웃어주는것 밖에는 할 게 없었다. 왕관 만들기 몇 개를 가져가서 그 집 아이와 친구들에게 나눠줬더니 몇 분 뒤 많은 아이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자신도 달라고 하는 바람에 당황했지만, 넉넉히 챙겨와서 나눠줄 수 있었다. 


2. 튀르키예 가족의 천막을 방문하다


그렇게 그 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튀르키예인이 찾아와 자신의 집에도 어린아이가 아프다며 와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픈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잠깐이라도 가보자고 하셨다. 어둠에 싸인 수많은 천막들을 지나쳐 한 천막 안에 당도했다. 안에는 난로가 켜져 있었고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삼대에 걸친 대가족이 그 천막 안에 다 모여 있었다. 그들은 다 튀르키예인이었으니 내가 통역을 해야 했다. 그곳에도 아까 만난 시리아인의 둘째아이만큼이나 어린 아이였다. 보니 감기에 걸려서 목에 가래가 있고 밤중에 열이 난다고 했다. 어디가 아프고 어떻게 아픈지를 통역하는 게 왜 이리 힘든지... 그 단어가 뭐더라 뭐더라 하면서 (인터넷도 없어서 번역기도 못 썼다) 온갖 아는 단어를 동원해서 통역하느라 진땀을 뺐다. 선생님이 진단을 해주시고 약 처방을 해 주려는데 아이가 너무 어리다 보니 쓸 수 있는 약이 한정되어 있는데, 쓸 만한 약은 가져오지 않은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약을 주고 복용량을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우리의 베이스캠프에 있는 약을 전달해줄 수 있다면 전달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실내에 화로가 있어서 엄청 더웠다.) 진찰하고 통역하는 우리에게 고마워했다. 


그렇게 만난 두 가정과 작별하고 우리는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차를 탔다. 짧은 만남이었는데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안되는 통역이지만 하나하나 필요한 사항들을 전달하면서 느낀 게 있다. 시리아 사람들을 만나러 왔지만, 우연히 만난 이 튀르키예인들을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언어가 통한다는 큰 차이 때문임을 느꼈다.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언어를 할 수 있는 곳에 마음이 더 갈 수밖에 없는 것. 나도 그들을, 그들도 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삼 튀르키예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어려운 시간에 이곳을 찾아오게 된 것도 감사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토록 배우기 싫었던 언어였는데, 지금은 나에게 크나큰 감동과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언어가 되었다. 나의 모든 것, 작은 것 하나라도 누군가를 만나고 이해하고 돕는 데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 만큼 불쌍하고 비극적인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모든 존재가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타인과 연결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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