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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Sep 06. 2023

다시 만난 카흐라만마라쉬: 마지막 이야기

지진이 난 튀르키예로 가다 (12) 

1. 카흐라만마라쉬를 다시 만나다 


튀르키예에 대규모 강진이 일어나고 구호팀으로 카흐라만마라쉬에 방문한 지 5개월이 지날 무렵, 나는 다시 그곳에 가게 되었다. 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시 가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의 방문은 지진구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뿐이었다. 혹시나 이전에 방문했던 곳을 다시 가게 되지는 않을까,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정도 잠깐 방문할 수 있는 곳에 간다고 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곳에 가서 진료소를 차리고 사람들을 만났다면, 이번에는 집을 잃은 사람들을 모여 지내게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 곳에 가보니 대형 천막들이 있었다. 몽골의 '게르'라고도 알려져 있는 유르트(Yurt)였다. 그 대형 유르트들은 카자흐스탄 정부에서 보내주었다고 했다. 그 안에는 주방과 화장실이 작게 딸려 있어 좁지만 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아늑한 공간이었고, 한 천막에 가족 단위로 살고 있는 듯했다. 지진이 났을 때 임시로 지었던 천 하나로 가린 천막보다는 훨씬 견고하고 아늑해 보였다. 그 지역은 여름철 기온이 높고 햇빛이 강했던 탓에 유르트 안도 꽤 더웠지만, 나름 에어컨도 달려 있었다. 그곳 봉사자들과 관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꽤나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특히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교육이나 운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2. 다시 찾아온 일상과 평안 


우리는 아이들에게 줄 여러 가지 선물들과 활동들을 준비해 갔다. 매니큐어 칠하기, 머리 예쁘게 묶어주기, 헤어 악세사리 주기, 페이스페인팅, 그림 그리기, 공놀이하기 등등.. 별 것 아니지만 아이들은 정말 즐거워했다. 예전에 엘마랄 마을에서 몰려왔던 아이들 생각도 났다. 그렇게 엄마 손을 잡고 찾아오는 아이들, 동생들을 안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천막 안이 너무 더워서 그 때 어떤 아이들을 만났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겠다. 아이들도 더운지 땀을 뻘뻘 흘렸고, 우리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어 아이들과의 만남은 일찍 마쳐야 했다. 



이후에는 각각의 천막에 방문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정이 많고 손님 초대를 즐거워한다. 비록 그들이 살던 집과는 다르게 손님 초대를 하기에는 조금 어색할 수도 있는 작은 천막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었고 늘 그렇듯 우리를 위해 차이를 끓였다. 여러 사람들을 만났지만, 아저씨 한 명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아이 세 명이 있던 가정이었다. 아저씨는 지진 때문에 친척이 많이 죽었다고 하며,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는 것 같았다. 지진이 일어난 날 아저씨는 타지에 있었는데 부인이 아이 셋을 급히 데리고 나온 덕에 살 수 있었고, 아저씨는 먼 거리를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과 가족들이 살아남았고, 지금은 지붕이 있는 이런 공간에 살 수 있으니 만족한다고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일과 아픔들을 지나왔으나 평안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아저씨처럼 안정되고, 평화를 찾았을 거라고 조금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3. 생명을 가진 우리, 다시 한 번 하루를 살아가기를. 


다시 만난 카흐라만마라쉬는 이전의 참혹함과 슬픔을 어느 정도 걷어내고, 다시 일상이 찾아온 듯 보였다. 상처에 난 피가 멎고 딱지가 지듯이 말이다. 지진이 난 지 5개월이 지났다. 우리가 방문했던 곳들뿐만 아니라 가지 못했던 수많은 지진피해지역이 지금은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 그곳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지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눈 앞의 이 사람들이 한 쪽에 자리를 잡고 그들을 향한 호의의 손길들도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 같다.



사실은 모르겠다. 지금도 여진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데, 또 언제 어디서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막을 수도 없는 재난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에게 늘 가까운 민족인 튀르키예의 아픔도 다 공감하고 느끼기 벅찬데, 이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이해 안 되는 비극들을 내가 다 알 수나 있을까? 만약 그중 하나라도 나에게, 나의 나라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친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이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의 결말처럼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몇 초 혹은 눈을 감았다 뜨기 전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곳에 감히 그런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기원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에게는 오늘 하루가 있다. 나에게 오늘 하루가 주어졌기에 내가 5개월 뒤에 다시 튀르키예에 와서 다시 튀르키예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도 아픔 속에서 살아남았기에, 생명이 보존되었기에 그 아픔과 어려움의 시간을 지나고 오늘 이 곳 좁은 천막에서 "이 곳이 있어 감사하다"하고 웃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생명이 살아가는, 지나가고 있는 오늘 하루는 가장 확실한 행복이며 존재이다. 원하는 것은 그 하루들을 조금 더 감사하게, 생명을 느끼면서, 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같이 그렇게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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