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8학군의 유난스러움은 1980년대에 이미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수업을 하는것부터 시작된다. 조기교육이라는 말이 번지기도 전에 강남 엄마들은 영어조기교육을 몸소 실천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는 영어 수업이 가능한 학부모의 주1회 봉사를 바라는 가정통신문을 배부했다. 그런 공지는, 예비 초등 엄마들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주산, 피아노, 가야금, 미술, 한자, 16비트 컴퓨터, 수영 학원들만 다니던 나에게도 영어학원이 추가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발 빠른 어느 출판사가 미국의 ‘뽀뽀뽀’라며 세서미스트리트 비디오테이프를 영어자막을 담은 교재와 묶어 판매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영어 공부는 6살부터 시작되었다. 수십개의 비디오테이프와 수십 권의 책들이 배달되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영어 선생님이 집으로 오셔서 나에게 영어로만 말하다가 가셨다. 그때 나는 아이컨택만 잘해도 관계가 어색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떨결에 영어전집과 수업료를 뺏기듯 낸 아빠는 벌써 무슨 영어냐며 엄마를 나무랐고, 엄마의 불안한 눈빛은 오히려 나에게 학습 동기가 되어주었다. 나는 엄마에게 힘을 주기 위해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추어 열심히 영어 소리를 흉내를 냈고, 그 방법이 지금의 영어낭독법 같은 거였으니 꽤 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드디어 내가 3학년이 되었고, 반 친구의 엄마가 영어 선생님으로 오셨는데, 내 짝꿍의 엄마였다. 평소 머리 맵시부터 학용품까지 뭔가 미국 냄새가 났던 그 남자아이는 엄마가 너무 창피하다며 책상에 이마를 붙인 채로 시간을 견뎠다. 영어 선생님은 그런 아들이 신경이 쓰이는지 옆에 있던 나를 수업 시간에 자주 지목하셨다. 나는 짝꿍 덕분에 단어 읽는 기회가 많이 왔고, 가끔 칭찬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대한민국에 영어교육 열풍이 최고조였고, 강남을 시작으로 고액의 영어유치원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나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언론고시보다는 어학 점수들을 모아서 영어교육 회사에 취업하기가 더 쉬웠다. 캘리포니아에서 한 어학연수는 면접관들이 언제나 짚고 넘어가는 질문이었다. 어학연수는 아빠의 두 번째 박해였는데, 영어교육에 대한 엄마의 두 번째 판단 역시 옳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어교육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나의 실력을 올려준 영어 공부의 비법은 따로 있다.
첫 번째 비법은 엄마의 ‘엄만 영어를 모르잖아’라는 겸손함이다. 엄마는 영어를 전혀 모른다고 하니까 엄마 앞에서 마음껏 아무 소리나 지껄여도 칭찬을 하셨고, 잔소리는 물론 없었고, 그저 세서미스트리트 비디오테이프만 틀어놓아도 기특해하셨다. 그런 엄마의 응원과 지지가 나의 영어지구력의 첫 번째 비법이다.
나의 영어 공부의 근력을 길러준 두 번째 비법은 미국 쇼핑몰에서 찾았다. 가이드 아저씨에게 아빠를 맡기고, 엄마는 10살인 나와 신발가게로 향했다. 가이드 아저씨가 말해준 대로 미국에서 엄마 발 사이즈는 6이라는 것을 달달 외우며 상점에 함께 들어갔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6으로 달라고 했지만, 막상 신어보니 엄마에게 너무 꼭 맞았다. 우리 표정을 살핀 점원은 얼른 신발 사이즈 7을 가져다주었지만 이번에는 너무 컸다. 그때부터는 나도 아는 영어단어도 없었고 한계를 느끼자, 엄마만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그런 나를 답답해하거나 혼내기는커녕 엄마는 점원에게 영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6사이즈 신발을 들어올리며) 디쓰 싸이즈 / (7사이즈 신발을 들어올리며) 디쓰 싸이즈 / (손바닥을 세워 양쪽 신발 사이허공을 가르며) 디스 중간싸이즈, 오케?”
그렇게 엄마는 나에게 영어는 기세라는 것을 몸소 가르쳐주고 계셨다. 알파벳밖에 모른다던 엄마의 겸손함은 버렸는지, 확신으로 가득 찬 엄마의 말과 당당한 아이컨택은 점원이 6.5 사이즈의 신발을 가져오도록 만들었다. 그날부터 우리 모녀는 가이드 아저씨 없이 신나게 쇼핑몰을 휘젓고 다니게 되었다.
어릴 적엔 엄마의 응원과 지지 덕분에 내가 영어 공부를 신나게 할 수 있었고, 실전에서 내가 자신 없어 할 때는 태권도 사범님처럼 박력 넘치는 영어를 터뜨리는 엄마의 기세 덕분에 난 여전히 영어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사회인이 되었다. 열혈 강남 엄마의 영어조기교육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마의 교육비법은 이 두 가지가 전부이다. 영어를 모르니 진심으로 겸손한 태도와 당당함이 전부였다. 알파세대를 키우는 내가 딸아이를 영어유치원도 영어학원도 보내지 않아도 편안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엄마의 두 가지 비법 덕분이다. 딸아, 꼭 기억하렴, 할머니의 신발 쇼핑 사건을. 영어는 기세야, 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