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하면 한심한 강남 초등학생

by 여슬

유재선 감독의 영화 ‘잠’에서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넌 어디에 기준을 둘래?”

만일 내가 20대 초반에 이 영화를 보았다면, 영화 속 이선균 배우가 잠결에 한 말 “누가 들어왔어.”를 들은 순간부터 그가 몽유병인지 빙의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삶에서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묻는 영화로 이해하는 입장이 되었다.


80년대 생인 나는 초등학생으로 졸업했고, 입학때는 국민학생이었다. 그랬던 시절에도 강남 8 학군 초등학교 근처 상가에는 다양한 학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의 학원가는 국, 영, 수 위주로 형성되어 있지만, 그 시절은 학원의 종류가 다양했다. 한가하면 한심한 강남 초등학생들을 흡수해야 하는 학원들은 피아노, 주산, 서예, 암산, 웅변, 미술, 한자, 수영까지 다채로웠다. 특히, 내가 살던 동네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부터 영어수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영어 학원들도 있었을 것이다. 정식 영어 선생님이나 원어민 수업도 아니었음에도, 강남 초등학생들의 영어 공부는 6살부터 시작되었다.


나 역시 한가하면 한심한 강남 초등학생이 될 수는 없었기에 기본 학원에 남과 다른 학원을 몇 군데 더 다녔다. 가야금 교습소와 16비트 컴퓨터 학원이 그것이었는데, 지금은 쓰지도 않는 디스켓을 꼽고 모니터 속 커서를 키보드로 옮기는 것을 배우느라 몇 달이 걸렸던 학원비가 새삼 아깝다. 남들 다 배우는 피아노는 기본이고, 국악기 하나는 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에 가야금을 선택했다. 황병기 가야금 산조를 배울 때는 손가락에서 피가 나긴 했어도 소심했던 나를 무대 체질로 만들어 주는데 도움이 된 가야금 학원비는 본전이다.


렸기에 인생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리가 없었다. 어디에 기준을 두고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고민하기 쉽지 않은 나이였다. 그저 한가하면 한심한 강남 초등학생이 되지 않기 위하여 나는 그 흐름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떡볶이가 200원이고, 과자 홈런볼이 300원이었던 시절이었다. 나의 아홉 군데의 학원비와 과외비는 모두 얼마였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한가하면 한심한 불안함이 나를 조정했다. 그러던 중 손 한 뼘 길이의 종양이 내 뒷목에 생겼고, 그제야 난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지금껏 살아온 방식과 반대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글쓰기가 휴식이 되어주기 시작한 것은 종양 덕분이었다. 종양은 내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니라 나를 다르게 움직이도록 해주었다.

광고인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만큼 직관적인 제목이 또 있을까 싶다. 얼어붙은 정신을 깨 주는 도끼가 바로 ‘책’이라는 것인데, 평론가 신형철도 고전 수업 강연에서 유사한 말씀을 하셨다. 내가 하고자 했던 표현을 책 속에서 만났을 때의 기쁨이 독서의 맛이라고 하였다.

한가해져야만 할 수 있는 것이 독서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내가 휴식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라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휴식시간조차도 자기 계발을 하는 데 사용하느라 진짜 쉼이 없었다.


풍족해야만 나눌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 역시 아니었다. 시간이 남은 후에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듯이, 내가 쓰다 남은 돈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나눔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기 시작했다. 한 줄 일기부터 쓰자고 시작한 2000일 전의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겠다고 키보드 앞에서 인상 쓰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강남에서 30년을 살면서는 시민을 강남사람과 강북사람으로 나누었었다. 나누기에 지쳐갈 때 인천 신도시로 이사 왔는데, 80년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2000년대 생들이 보였다. 혹시 그들도 한가하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옛날 사람들의 주장에 설득된 것일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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