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이 유행하던 90년대에 미라클 모닝은 KBS라디오 굿모닝팝스가 필수였는데, 그당시에 굿모닝팝스는 새벽 6시에 찾아온 엄한 영어과외쌤 같았다. 지금은 조깅을 하며 듣는 러닝크루 같은 굿모닝팝스가 2024년 6월을 끝으로 종영된다.
굿모닝팝스를 들을 때는 오성식 선생님과 학교 영어 선생님의 극명한 발음 차이에 안도했던 적이 있다. 발음이 별로여도 영어선생님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학교 영어는 문법이라는 바늘귀에 단어라는 실을 꿰는 기분이었는데, 굿모닝 팝스는 외제 미싱처럼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최대한 오선생님 발음을 따라 하려고 흥얼거리던 수많은 팝음악들이 여전히 혀 끝에 남아있는 걸 보니 나도 꽤 허세를 좇던 청소년이었다.
실리콘밸리 IT 인재들의 국적은 중국과 인도가 가장 많아, 오히려 원어민들이 그들의 발음, 강세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아시아인으로서 반가운 일이고, 영어 강사로서 아이들에게 짐을 줄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 단어를 아무렇게나 읽어도 되는 것은 아니기에 나의 꼴찌 학생에게 단어 낭독 숙제를 없앨 계획은 없다. 지금 나의 제자는 영단어를 암기하기도 바쁜데 발음까지 챙겨야 하니 매우 고달픈 인생을 지나는 중이다. (machine을 머친이 아닌, 머신으로 읽어야 하는 현실을 피하고 싶고, chicken은 왜 시킨이 아니라 치킨인지 납득이 어려운 나의 귀여운 꼴찌아이)
실리콘밸리에서 세계인의 발음을 존중한다는 말이 영단어를 네 멋대로 읽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란다.
90년대 나의 하루는 굿모닝 팝스로 시작해서 별이 빛나는 밤으로 저물었는데, 홀연히 떠났던 별밤지기 이문세아저씨가 2024년 6월에 라디오국으로 돌아오셨다. 중학생에게 한가한 시간이 밤 10시였던 그때, 이제는 아줌마가 한가해지는 시간오전 11시인데 마치 그 사정을 알고 맞추어 다시 오신 것처럼 감격스럽게 말이다.
공부하는 학생의 필수 액세서리였던 라디오기기는 사라졌지만 마구간 아저씨를 반기는 라디오 세대들이 라디오앱을 내려받으며 나처럼 설레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