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도서관이 새로 생겼는데,
몇 번이나 가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늘 36시간 굶기로 한 김에 산책을 이 도서관으로 가봐야지 하고 나왔다. 그러다가도 마음 바뀌면 가지 않을 생각으로 가볍게. 평일 낮인데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고 쾌적하고 밝은 건물 그리고 동네 분위기에 햇빛이 든 것처럼 밝은 기운이 들었다.
문학 쪽 서가로 바로 향해 추천으로 꺼내놓은 고전 도서인 자메이카 킨케이드의 애니 존을 조금 읽다가 이런 글을 메모에 남겼다.
'어린 청소년이 주연인 소설을 좋아함
내가 경험해 본 거니까 이해가 잘 간다고 느낌
반대로 늙은이의 마음은 내가 헤아릴 수 없다고 느껴서 어렵게 느껴짐'
그리고 이렇게 뜬금없이 도서관에 와 있는 내 기분을 생각했다. 고독한 기분, 즉 혼자의 시간을 갖는 게 좋은데 그게 약간은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이 필요한 건지 아니면, 좋아하는 상대와 온종일 붙어있다가 보면 상대방이 질려 하는 거 같아서 혼자 있는 방법을 기르려고 노력하는 걸까.
빌려볼까 싶어서 킨케이드의 루시를 들고 몸을 오른쪽으로 트니, 시집 서가가 있어 이제니와 박준의 시집을 골라들었다. 또다시 오른편에는 편지지가 있는 코너가 있어서 책의 좋은 부분을 마침 메모장이 필요했기에 편지지에 적었다.
편지지 맨 위에는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기분을 맨 위에 적었다.
'사람이 있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내가 책을 고르고 열중해서 읽어내는 모습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깨끗하고 쾌적한 도서관이면 더 좋겠다.' 부끄럽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흥미로운 소설보다는 아름다운 문장을 수집하는 게 좋다. 맑은 단어들과 모호하지 않고 오히려 투명하여 바로 관계성을 지을 수 있는 문장들을 나의 메모장에 가득 담고 싶다. 그리고 언제든 펴내어 읽고 싶다. 버스, 카페, 길거리에서 열어볼 나만의 책이 되는 거다.
그리고 예뻐서 받아 적고 싶었던 문장들을 받아 적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살구 곁에는 분홍.
이름 없는 사물의 그림자를 건너뛰면.
우울을 꽃다발처럼 엮어가는 사람.
너를 품어주는 것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세요 걷고 걷고 걷다 다시 본래의 깊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세요.
헐벗은 마음이 불을 피웠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한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모서리로부터 우유가 쏟아진다. 삼각으로부터 안부가 전해진다. 안부는 다정하고 숨 고르고 너는 생략된 것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