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생활자 Oct 04. 2020

즐겁고 벅찬 자유

어쩌면 평생을 모르는 채로 살 수도 있는 것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배달음식을 시킬 수 없다. 마켓컬리의 새벽 배송도 이 곳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가끔은 10여 분 거리의 작은 읍내에서 조리된 음식을 사다 먹기도 하지만, 그 마저도 살만한 식당은 몇 군데 없다. 외식을 하고 싶어도 저녁까지 문을 여는 식당은 소수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불편하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시골에 와서 가장 즐거운 부분이 바로 이 불편한 상황이라는 걸 남들은 알까? 

간단하게 우리가 음식을 먹는 행위에 앞서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 농사 - 수확 - 요리 - 취식 >

배달음식을 먹는 경우, 위의 과정에서 오직 ‘취식’만 남는다. 마트에서 음식 재료를 사다 먹는 경우, 농사를 제외하고 나름의 ‘수확’과 ‘요리’, ‘취식’을 경험할 수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위의 네 단계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얼마 전 마당에서 수확한 바질 잎으로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보았다. 바질 페스토는 바지락이 잔뜩 들어간 오일 파스타에 들어가 그 맛과 풍미를 가득 뽐냈다.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이면 집 앞까지 오는 바질 페스토를 직접 만드는 경험의 단계를 확인해보았다.

그 시작은 씨 뿌리기부터이다. 작년에 받아둔 바질 씨를 봄에 뿌리면 싹이 돋는다. 흡사 오동통해 보이기도 하는 작은 바질의 싹은 윤기가 좌르르 흘러 몹시 사랑스럽다. 거름을 잔뜩 준 텃밭에서 몇 달을 키우면 바질은 무릎 높이만큼 쑥쑥 자란다. 봄부터 가을까지 바질 잎은 몇 달을 계속해서 돋아난다. 

직접 키운 바질, 텃밭에 심으니 바질 나무가 됐다


여름에 한번, 가을에 한번, 무성한 잎을 뚝뚝 뜯어 물에 가볍게 씻고, 올리브 오일, 잣, 치즈, 레몬즙 등과 함께 갈았다. 집에 있는 믹서기로는 물기가 없어서 그런지 잘 갈리지 않아서, 다이소에서 산 핸드믹서를 이용했다. 전기 없이 사용하는 핸드믹서를 수백 번 잡아당기니 팔뚝이 뻐근해왔다. 팔뚝은 아팠지만, 믹서기 안에서는 바질 향이 진하게 뿜어져 나왔다. 

바질 한 포트만 심어도 두 계절 3~4병의 바질 페스토를 만들 수 있다. 바로 먹을 것을 따로 챙기고 나머지는 모두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는다. 물론 잣 값이나 여러 재료비를 따지면, 만들거나 사 먹거나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은 돈 주고 살 수가 없다. ‘외식’과 배달음식’이라는 편리한 체계는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수확과 요리의 즐거움을 빼앗아간다. 빼앗긴 자유가 무언지도 모르고 대부분 십수 년을 살아가기도 한다. 

내가 만든 바질 파스타는 모두가 엄지 척을 할 만큼 맛있다. 좋은 올리브 오일에 마늘과 새우, 바지락을 잔뜩 넣고 만들면 맛이 없을 재간이 없다. 물론 파스타 면을 삶을 때 간을 적절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골 동네에서 맛있는 파스타를 사 먹을 곳이 없어 여기저기를 다니다 결국 포기하고, 궁여지책으로 집에서 만들다 보니 바질 파스타 장인이 되고 말았다. 도시에 살았다면, 내가 숨겨진 바질 파스타 장인이 될 사람이란 걸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바질 꽃 사이로 바짝 마른 씨앗을 갈무리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바질 씨들이 꽃 사이에 숨어 있었다. 지퍼백 안에 바질 씨를 담고 겉 봉에 ‘바질’이라 적어 넣었다. 시골에서는 그렇게 할 일이 많다. 나는 그렇게 불편함으로 경험을 사고 있다.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는 즐겁고 벅찬 자유를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