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글 쓸 시간이 없어
잘 나오시던 문화센터 수업의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출석을 못 하신다. 대부분 농사일(농사꾼 아님 주의)에 바빠지셨거나 여름 맞이 손님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양평은 6개월이 겨울이다. 산속에서 차가운 강바람을 맞아야 하는 지역의 특성상 겨울이 무척 길다. 겨울이 아닌 6개월 동안 짧은 봄, 가을과 여름을 보낸다. 그래서 겨울 6개월 동안 한가한 만큼 남은 6개월 동안 더욱 몰두해서 번잡하고 바쁘게 보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중에서도 여름은 휴가철을 맞아 가장 좋은 때의 양평을 보고 싶어 하는 지인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
우리 집에도 여름 맞이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가 있는 집이기에 대부분의 손님들도 아이가 있는 가족인 경우가 많다. 여름 손님맞이의 기본 옵션은 수영장 개장이다. 우리 집에는 지인이 증여한 튜브 수영장이 있다. 손님이 오면 아침부터 바쁘게 튜브에 바람을 넣고 물을 채운다. 접었던 어닝을 펼치고 일 년 내내 마당에 방치한 코끼리 미끄럼틀도 설치한다.
그렇다. 이렇게 끝내주는 풍경을 마음껏 누리는데, 아무리 멀어도 한 번쯤 올만하지 않은가. 사실 별로 멀지도 않다. 일산에서도 차만 안 막히면 한 시간 만에 올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엔 나의 요리력이 상승한다. 산으로 둘러 싸인 우리 동네는 배달이 가능한 음식이 없다. 시골로 들어오면서 <요기요>와 <배달의 민족> 어플을 지웠다. 시골의 나에겐 있으나 마나 한 무의미한 어플이었다.
더욱이 바쁜 이유는 주변에 갈 곳이 많다. 30분 거리에 전국에서 찾아오는 계곡이 있다. 물놀이가 가능한 카페도 있다. 근처에 있는 유명 콘도의 수영장도 평일에 한가하게 즐길 수 있고 SNS의 성지 같은 카페들도 지천에 널려있다. 물론 지역 주민들만 알고 있는 한적한 스폿들도 소문 안 나게 살금살금 다녀온다. 철 좋은 여름에 이 곳들까지 챙기려면 시간이 없다.
그래서 글 쓸 시간이 없다. 웃기는 얘기지만 실제 상황이다. 시간이 나면 글을 쓰기보다는 원두를 갈아 내려,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시며 저 아름다운 산을 봐야 한다. 잠깐 글을 쉬어가면서 빠르게 지나가는 이 여름을 만끽해야겠다. 게으름마저 용납되는 시골의 여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