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평생을 모르는 채로 살 수도 있는 것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배달음식을 시킬 수 없다. 마켓컬리의 새벽 배송도 이 곳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가끔은 10여 분 거리의 작은 읍내에서 조리된 음식을 사다 먹기도 하지만, 그 마저도 살만한 식당은 몇 군데 없다. 외식을 하고 싶어도 저녁까지 문을 여는 식당은 소수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불편하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시골에 와서 가장 즐거운 부분이 바로 이 불편한 상황이라는 걸 남들은 알까?
간단하게 우리가 음식을 먹는 행위에 앞서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 농사 - 수확 - 요리 - 취식 >
배달음식을 먹는 경우, 위의 과정에서 오직 ‘취식’만 남는다. 마트에서 음식 재료를 사다 먹는 경우, 농사를 제외하고 나름의 ‘수확’과 ‘요리’, ‘취식’을 경험할 수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위의 네 단계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얼마 전 마당에서 수확한 바질 잎으로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보았다. 바질 페스토는 바지락이 잔뜩 들어간 오일 파스타에 들어가 그 맛과 풍미를 가득 뽐냈다.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이면 집 앞까지 오는 바질 페스토를 직접 만드는 경험의 단계를 확인해보았다.
그 시작은 씨 뿌리기부터이다. 작년에 받아둔 바질 씨를 봄에 뿌리면 싹이 돋는다. 흡사 오동통해 보이기도 하는 작은 바질의 싹은 윤기가 좌르르 흘러 몹시 사랑스럽다. 거름을 잔뜩 준 텃밭에서 몇 달을 키우면 바질은 무릎 높이만큼 쑥쑥 자란다. 봄부터 가을까지 바질 잎은 몇 달을 계속해서 돋아난다.
여름에 한번, 가을에 한번, 무성한 잎을 뚝뚝 뜯어 물에 가볍게 씻고, 올리브 오일, 잣, 치즈, 레몬즙 등과 함께 갈았다. 집에 있는 믹서기로는 물기가 없어서 그런지 잘 갈리지 않아서, 다이소에서 산 핸드믹서를 이용했다. 전기 없이 사용하는 핸드믹서를 수백 번 잡아당기니 팔뚝이 뻐근해왔다. 팔뚝은 아팠지만, 믹서기 안에서는 바질 향이 진하게 뿜어져 나왔다.
바질 한 포트만 심어도 두 계절 3~4병의 바질 페스토를 만들 수 있다. 바로 먹을 것을 따로 챙기고 나머지는 모두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는다. 물론 잣 값이나 여러 재료비를 따지면, 만들거나 사 먹거나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은 돈 주고 살 수가 없다. ‘외식’과 배달음식’이라는 편리한 체계는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수확과 요리의 즐거움을 빼앗아간다. 빼앗긴 자유가 무언지도 모르고 대부분 십수 년을 살아가기도 한다.
내가 만든 바질 파스타는 모두가 엄지 척을 할 만큼 맛있다. 좋은 올리브 오일에 마늘과 새우, 바지락을 잔뜩 넣고 만들면 맛이 없을 재간이 없다. 물론 파스타 면을 삶을 때 간을 적절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골 동네에서 맛있는 파스타를 사 먹을 곳이 없어 여기저기를 다니다 결국 포기하고, 궁여지책으로 집에서 만들다 보니 바질 파스타 장인이 되고 말았다. 도시에 살았다면, 내가 숨겨진 바질 파스타 장인이 될 사람이란 걸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바질 꽃 사이로 바짝 마른 씨앗을 갈무리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바질 씨들이 꽃 사이에 숨어 있었다. 지퍼백 안에 바질 씨를 담고 겉 봉에 ‘바질’이라 적어 넣었다. 시골에서는 그렇게 할 일이 많다. 나는 그렇게 불편함으로 경험을 사고 있다.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는 즐겁고 벅찬 자유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