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동네에 밤송이가 즐비하게 떨어질 때쯤, 아이와 밤을 주우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뒷산에 지천으로 널린 게 밤나무이건만, 야생 밤은 밤송이가 작기도 하고 맛도 좋지 않다. 동네에 제법 크게 달린 밤송이들은 떨어지기 무섭게 새벽 산책 다니시는 어르신들이 모조리 주워 가시니 밤을 주울 기회가 없었다.
시골 사는데 밤 주울 곳이 없다니. 웃픈 현실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알아본 것이 바로 ‘밤 따기 체험’. 만원을 내고 작은 망에 한 시간 동안 밤을 주워 넣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전화로 이번 주 주말을 이야기하니 이미 체험 인원이 가득 차서 다음 주 주말이나 가능하다고 한다. 아직 밤 철이 지나지 않았으니 다음 주 주말로 예약을 넣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밤 체험을 위해 40분 거리의 양평군 강상면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가족들이 체험장 주변에 가득했다. 모두 마스크를 낀 채, 목장갑을 끼고 집게와 붉은색 망을 하나씩 손에 쥐었다. 5분 거리의 산을 오르니 산 하나가 모두 밤나무로 가득 차 있다.
밤 줍는 요령은 별 게 없었다. 밤 떨어지라고 괜히 나무를 흔들거나 할 게 아니라, 다 여문 밤송이에서 툭 떨어져 나온 알밤을 주워 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는 마트에서 생밤을 사다가 뿌려 놓은 거 아니냐며 깔깔 웃었지만, 밤나무 밑에는 그렇게 떨어진 생밤이 널려 있었다.
어차피 한 시간 동안 한 망을 채우면 되는 것이기에 작고 벌레 먹은 밤은 모두 버리고 알이 크고 통통한 것들 위주로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래도 밤 따기의 하이라이트는 가시로 가득한 밤송이를 신발과 집게로 벌려 쏘옥 드러나는 알밤을 채취하는 게 아니겠는가. 통통한 알밤이 가득한 밤송이를 발견할 때마다 아이에게 밤송이를 벌릴 기회를 주었다. 제법 큰 알밤이 밤송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아이는 작은 환성을 질렀다. 따끔따끔 밤송이에 손발을 살짝 찔렸지만, 아픔이 대수롭지 않았다.
빠른 사람들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작은 망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어차피 체험을 위해 온 것이기에 아주 천천히 한 시간을 채우면 산을 여기저기 살폈다. 그렇게 붉은색 망이 알밤으로 묵직해질 때쯤 한 시간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와 찜통에 물을 채우고 한 망 가득 알밤을 올렸다. 30분쯤 폭폭 끓이다가 10분 뜸을 들이고 다시 10분 찬물에 담갔다 빼면 두터운 껍질을 까기가 훨씬 수월하고 맛도 좋은 삶은 밤이 된다. 같이 간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밤을 까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쉽게 해도 수월치 않은 밤 까기지만, 직접 수확한 밤을 쪄 먹는 즐거움에 노동도 웃음이 되는 날이었다.
내년에도 꼭 가야지. 아쉽게도 밤 따기는 9월 초~9월 말까지만 가능하다. 지나쳐 버리기 쉬울 만큼 짧은 시기이니 놓치지 말고 내년을 기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