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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생활자 Oct 07. 2020

예전 집의 부동산 시세를 확인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였다

얼마 전 언니가 서울 한복판의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분양받고 5~6년을 기다린 신축 브랜드 아파트였다. 위치는 아현동, 사대문 안에 들어가는 요지 중 요지였다. 6억대로 분양했던 30평 형은 현재 시점의 매매가가 13억을 넘겼고, 곧 15억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언니는 원래 나와는 좀 달랐다. 인서울, 학군 같은 것을 고려하는 스타일이다. 서울의 외곽과 경기도권을 돌던 언니는 인서울의 기쁨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에서인지 이런 얘기도 한다.


“20평 대 분양가는 4억 초반이었는데,

피도 없었을 때니 엄마한테 분양권을 사라고

강하게 얘기를 할 걸 그랬어.”


그랬구나. 20평 형 분양가는 4억 대였구나. 나도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데, 그때 분명 들었어도 한 귀로 듣고 흘렸겠지? 20평 형 또한 매매가는 10억을 훌쩍 넘는다. 현재 나의 집과 시골에서의 삶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그 집에 굳이 들어갈 맘은 없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 보니 10억, 15억이란 숫자가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도 이런 감정을 수십 번은 더 겪으며 살아가겠지.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고 며칠 후, 쉽게 잠들지 못하던 어느 날 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바로 전에 살던 집의 시세를 확인했던 것이다.


예전에 살았던 곳은 서울에서도 집 값이 가장 낮은 곳 중 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만 8년을 살았지만, 부동산 가격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 워낙 낙후된 이미지가 강했고 아파트 연식도 20년이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서울의 부동산이 언젠가 버블처럼 푹 꺼질 것을 믿는 사람이었고, 난 언제나 그렇듯이 중요한 문제는 남편의 의견을 따랐다. 우리는 그 동네에서 매매가에 준하는 전세로 8년을 지내다 작년 2월 양평으로 이사했다.


겨우 1년 반이 지났을 뿐인데, 그동안 예전 아파트의 매매가는 따블을 치고 있었다. 4억 전후였던 30평대는 8억으로, 3억 전후였던 20평대는 7억으로. 전세 살지 말고 매매하라던 친한 부동산 사장님의 조언이 8년 후 이루어진 것이다. 가슴이 쿵덕쿵덕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차피 전세 살았으니 가질 수도 없는 현실인데, 왜 이렇게 배가 아플까.


처음 살았던 20평대를 갖고 있었다면, 4억의 차익을 얻고 아현동 아파트에 입주해서 또한 5~6억의 차익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최고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팽팽 돌아갔다. 그러면 아현동 아파트를 전세나 월세로 주고 양평에 전세로 들어갈 만큼 여유가 생겼을 텐데. 이렇게 힘든 시기에 금전적으로 쪼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왜 부동산에 남편과 상관없이 더 과감하게 투자하지 못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언니처럼 서울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정말 단지 돈이 아쉬웠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잠이 오지 않아 평소처럼 커튼을 걷고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흐린 날 뿌옇게 빛나는 달, 그리고 어두운 밤 가장 밝게 빛나는 목성이 보였다. 그렇게 별을 보고 나니 괜찮아졌다. 만약 부동산에 목을 맸다면 지금의 이 곳으로 나의 삶의 방향이 정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파트 사이의 꽉 막힌 하늘이 떠올랐다. 깊은 밤을 알 수 없는 도시의 빛이 그려졌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아마 미래를 알고 있더라도 나의 선택은 시골의 집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좀 없는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아마 배도 아프지 않고 잠도 잘 잘 수 있을 거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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