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 올 따름, 그 옆에 순순(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 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 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 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이 시는 고등학교 때 문제집에서 처음 읽고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곱씹어 읽는 시다.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그 집 우물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찬찬해진다. 산문시이지만 낭독하다보면 시인이 숨겨놓은 운율이 느껴진다. 2연에서 시인은 춘향의 기다림을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물살짓는 어깨’에 담아낸다. 시를 빚은 시인의 감각이 놀랍다.
이 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을레'라는 어미였다. 고등학생 쯤 되면 처음 보는 단어는 종종 있을지언정 처음 보는 어미는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어미는 이 시 말고 다른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어린 나도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작품들을 읽다 보면 한국인으로 태어나 이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는 게 감사하게 느껴진다.
'푸른 산 언덕들', '산과 언덕들의 만 리 같은 물살들' 같은 구절 역시 한국인이라야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시어들이다. 독일에 살 때 지인을 따라 그 주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랐는데, 산 하나만 덩그러니 있어서 산맥을 보며 자란 한국인으로서는 도무지 산 같지가 않았다.
나중에 다시 독일에 가서 살게 될 수도 있지만 독일 행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의 한국어이다. 아무리 한국에서 책을 많이 가져가서 읽힌다한들 사회, 자연, 역사 속에서 어우러져 습득되는 수많은 지식과 감성들은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나름 문학소녀인 엄마의 로망은 좋아하는 작품들을 아이들과 함께 읽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주언어가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되는 것은 아무리 아이들 미래에 유익하다고 해도 내키지가 않는다.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을 아이들도 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언제쯤 아이들과 이 시를 함께 읽을 수 있을까.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이 시를 읽을 때 시어들이 불러내는 선연한 이미지를 아이들도 떠올릴 수 있도록 부지런히 한국의 산과 들로 데리고 다녀야겠다. 그리고 우선 오늘밤엔 오랜 만에 책 좀 많이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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