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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금이 Nov 09. 2020

하얀 숲 007

남겨진 자들 3

“저, 정은안 씨 아버님 되시죠?”

“네.”

“경기지방경찰청 구인호 형사입니다. 이런 말씀 전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정은안씨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지금 빨리 동아종합병원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머리를 방망이로 얻어맞은 사람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은 정영식이었다. 택시를 운전하는 도중 받게 된 은안의 소식은 마치 보이스 피싱 전화 같았다. 사기인 것을 뻔히 알지만 딸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 만으로도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손이 덜덜 떨리는 느낌. 이전에도 몇 번인가 이런 전화를 받았었다. 누군지도 모를 여자의 비명소리와 더불어 “아빠, 살려줘.”라는 멘트가 녹음된 절박한 목소리. 부모라면 이것저것 따지고 볼 여유가 없이 깜빡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서에 신고하고 말 것도 없이 당장 은행으로 달려가 있는 돈을 모두 납치범에게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딱 맞춰 걸려온 은안의 전화에 자신이 말로만 듣던 보이스 피싱에 낚인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놈의 새끼가,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이런 식으로 사기를 쳐?!!! 그래서 얼마 송금해주랴!!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정신 차려!!”


전화를 끊고도 가라앉지 않은 흥분에 영식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켰다. 아무리 세상이 요지경이라지만 부모한테 자식을 가지고 장난질이라니..교통사고 후 그나마 나아졌던 허리가 신경을 쓰니 더욱 저려왔다.


“진통제가 어디 있더라...”

“R-r-r-r-r-r-r-r”


아까 받은 전화와 같은 번호임을 확인한 영식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이번에는 쌍욕을 해줄 요량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 개새끼가, 어디 남의 자식을 가지고.."

“따님 중환자실에서 근무하셨죠?”

“..!!!! 당신 누구야?!!!”

“보이스 피싱 아닙니다. 정은안씨 아버님. 지금 당장 동아종합병원으로 오십시오. 따님 지금 영안실에 있구요. 원하시면 부검도 가능합니다. 확실한 것은 좀 더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자살일 가능성이 높습....”


상대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영식은 30년간 몸에 밴 습관으로 택시를 출발시켰다. 아무리 따따블을 준다고 해도 해 본 적 없던 곡예운전을 비가 거세게 몰아치는 도로 한 복판에서 미친 듯이 해댔다. 사정을 모르는 운전자들이 본다면 죽으려고 환장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인정사정없었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허리의 통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영식의 온몸은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얼얼해졌다.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멘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완벽하게 경험한 영식은 은안의 병원에 단숨에 도착했다.


“저..영안실이 어딥니까?”


영식이 안내 데스크에서 영안실의 위치를 알아보고, 자신에게 부음을 알린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은안의 주검을 확인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이 보이스 피싱의 피해자이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지금 겪고 있는 끔찍한 상황이 사실은 조작되었다고 누군가가 말해주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영식의 간곡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랑스러운 딸 은안은 온몸이 산산조각 난 채로 영식을 맞이했다.


“은안아.. 니가 왜 여기에 이렇게.. 형사님, 왜 우리 딸이..누가 이랬습니까? 누가!!!!!!!!”


딸을 잃은 아버지의 오열은 영안실을 가득 채웠고 그 누구도 영식에게 가타부타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백색천에 덮여 뼈조차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누워있는 은안을 바라보는 영식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질 만큼 고통스러웠다.


꽃 같이 예쁜 내 딸 은안이.

천만금을 주고도 안 바꿀 내 딸 은안이.

온몸이 아파도 너만 보면 씻은 듯이 싹 나았는데, 네가 없으니 이제 나는 죽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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