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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Oct 05. 2022

아브젝트와 아브젝시옹

#7



 현대 미술에서 관객은 이제 웬만한 소재나 주제로는 놀라거나 충격받지 않는다. 쓰레기가 예술의 소재가 되는 것 역시 크게 놀랍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배설물, 썩은 음식, 피, 체액 등 본능적 혐오감을 일으키는 소재와 주제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1961년 이탈리아의 피에로 만초니가 자신의 똥을 깡통에 밀봉하여 '예술가의 똥'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아 센세이션을 일으킨 일부터 이제 도저히 '미(美)술'이라고 부르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영역이 미술의 영역에 포함되고 있다. 새로운 것, 독특한 것, 예기치 못한 것 등 온갖 자극적인 요소들을 마다하지 않는 현대 미술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요소들이 미술의 영역에서 포용되는 일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혐오감, 역겨움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현대 미술이 놓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은 더럽고 추하고 버려진 것에 대해 그 어떤 분야에서보다 중요하게 사유하고 다루고 있다. 온갖 더러운 오브제들과 섬뜩한 주제와 소재들이 등장하면서 여전히 논란도 거세지만 이전에는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았던 새로운 시선들 또한 제시되기 시작했다. 혐오감을 주는 요소를 활용함으로써 '혐오 미술(Abject art)'이라 불리는 종류의 작품들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이를 설명할 때 현대 미술이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철학자는 프랑스의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다.



 본래 비참하고, 비천하고, 내버려진 것을 의미하는 형용사 아브젝트(Abject)에 크리스테바는 주체의 개념을 더해  아브젝트가 형용하는 주체가 일으키는 혐오감, 거부감, 배척 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명사형 단어인 아브젝시옹(Abjection)을 사용했다.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는 상징계(프로이트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분석 학자 중의 하나인 자크 라캉이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의 주체적인 영역을 말하는 상상계, 초자아가 지배하는 현실의 영역을 지칭하는 상징계, 상상과 상징 사이에 존재하거나 혹은 넘어서는 지점인 실재계가 있다고 설명했다)가 요구하는 올바른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졌거나 추방한 것들, 실존적 위협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들, 모호하여 안과 구별이 확실하지 않은 주체도 객체도 아닌 경계 등을 의미한다. 아브젝트한 이 존재들은 본능적으로 혐오감 혹은 두려움을 일으킨다.


 크리스테바는 아브젝트는 주체가 주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억압하거나 밀어내야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의 생물학적 몸을 예로 들어 설명했을 때 우리 몸이 온전하게 존재하기 위해 몸 밖으로 밀어낸 것들인 변, 토사물, 체액 등을 아브젝으로 지칭할 수 있다. 잘린 신체의 일부, 시신 등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다 떨어져 나간 것 들도 마찬가지다. 주체였으나 이제 주체가 아닌 것을 보며 인간은 불편함과 낯섦,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가 주체로서의 안정성을 거부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끼고 배척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젝트를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떼어내 주체 이외의 것으로만 여길 수는 없다. 아브젝트는 무의식 속에 남아 끊임없이 주체를 위협하면서 정체성이나 기존의 질서와 법칙, 이성적 사고를 위협하는 체제 전복적인 힘을 내재하고 있다. 아브젝트가 주체를 집어삼킨 상태를 크리스테바는 ‘디젝트(Deject)’ 라고 칭한다.


키키스미스, <born>, 2002


  아브젝트는 어머니의 몸이 삶과 죽음을 제공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숭배와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양가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듯 주체와 완벽한 경계를 이루고 있지 않고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크리스테바는 이런 양면적 속성을 지닌 아브젝트를 주체가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이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바라보았다. 아브젝트 개념은 사회적 범위로 확장했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산업시대에 들어와 기계와 장비들에 존재 의미를 빼앗긴 생산 노동자들은 사회의 아브젝트가 되고 가부장제에서 타자가 된 여성들 역시 아브젝트로서 설명된다. 아브젝트가 지닌 이질적이고 불편한 타자성을 주체가 마냥 억압하기보다 적절히 수용함으로써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페미니즘에서 중요한 철학자로 다뤄지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떨어져 나가거나 도태된 것들을 근대 이전에 사람들은 보통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심지어 '금기'로까지 치부되던 영역을 철학의 영역에서 온전히 사유할 수 있게 된 것에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크리스테바는 아브젝트가 숭고함과 비슷한 일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숭고한 대상인 자연이 일으키는 재난이나 재앙 등 자연의 비합리적인 일면은 유한한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절대적 타자이며, 그 힘과 규모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를 넘기기 때문에 공포를 유발한다. 인간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작고 하찮은 존재인 스스로를 깨닫고 압도감과 공포와 흥분을 느끼는 동시에 감탄과 존경 숭고함을 느끼는 것처럼 아브젝트 역시 무제한적이고 무정형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숭고’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과거에는 아브젝트가 종교로써 ‘승화’되었지만(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액운과 병마를 막기 위해 굿을 했다) 현대에 와서는 종교 대신 예술이 이를 대체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미학적으로 승화된 아브젝트에 우리는 매혹을 느끼게 된다.


 크리스테바의 이러한 이론을 통해 신디 셔먼, 크리스 오필리, 채프만 형제 등 혐오 미술(Abject art)의 범주에 속한 작품들을 내놓은 작가들의 작품을 바라보면 그녀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신디 셔먼은 자신을 피사체로 여성과 그 신체에 대한 주제로 사진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작가다. 특히 그녀가 1985년부터 1991년 사이에 발표한 작품들은 '역겨운 사진'이라는 평을 듣는 동시에 그녀 자체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준 문제작들 이기도 했다. 아름다움으로 규정되어 있던 여성의 신체가 불쾌감으로 전이되며 여성의 주체성이 회복되는 일련의 메커니즘은 불편함과 매혹을 한꺼번에 느끼게 만든다.


신디셔먼, <untitled#190>, 1989(왼) / <untitled#153>, 1985(오)


 크리스 오필리의 경우 주된 재료가 '코끼리 똥'이다. 그가 1997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열린 YBA(Young British Artist)의 그 유명한 '센세이션 전'에 출품한 <성모 마리아(The Holy Virgin Mary)>는 성모 마리아를 흑인 여성으로 표현한 동시에 그 주변을 여성 성기와 코끼리 똥으로 장식했다. 이 작품을 보고 당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이 전시 철수 명령을 내리고 미술관의 자금을 끊으면서 법정 소송까지 가게 된 일화 역시 유명하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혈통의 영국인이었던 작가에게 코끼리 똥이라는 재료는 아프리카의 전통적이고 토템적인 속성을 부여하고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 등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적 메시지를 담은 상징적 재료였다.


크리스 오필리, <성모 마리아>, 1996


 제이크&다이노스 채프먼 일명 채프먼 형제가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좀 더 적나라하고 끔찍하다. 절단되고 마음대로 이어 붙여진 신체와 피와 살점으로 점철된 끔찍한 이미지들은 전쟁, 학살, 섹스, 죽음 등 인간의 어두운 일면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예술은 혼돈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장"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세상에 대한 진실한 투영'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들의 시니컬한 시선에서 사회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세상이며, 예술가들은 어떠한 목적성 없이, 자유롭게 이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채프먼 형제, <접학적 가속도, 유전공학적, 탈승화적 리비도 모델>, 1995


 세상은 아름다운 것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고, 항상 양면적인 모습을 가진다. 그리고 이 양면성은 크리스테바의 말처럼 완벽한 경계를 이루지 않고 어떤 때는 밝고 아름다운 면이, 어떤 때는 어둡고 끔찍한 면이 부각되기를 반복하며 서로 보완하고 침범하기를 반복한다. '아브젝트'는 이러한 속성 그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선에서 갑자기 내 앞에 불쑥 내밀어진 불편함을 바라보는 일이 이제는 마냥 거북하고 혐오스럽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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