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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이전의 유아기의 아이들은 타인과 나의 생각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집에 있는 애착 인형의 존재를 오늘 처음 만난 초등학생 형아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기거나 자신이 지금 먹으려고 집중하고 있는 생크림 케이크의 형태를 다른 사람들 역시 똑같은 시점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래 친구들끼리 대화하는 모습을 관찰해보면 아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끼고, 자신이 아는 것은 다른 사람 역시 똑같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동 발달론에서는 이를 아동의 ‘자기 중심성’이라고 설명한다. 자기 중심성이 강한 시기를 지나 7세에서 11세 사이에서야 아이는 비로소 타인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이라는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명제 아래 주체성은 언제나 인간을 이해하는 근본적 흐름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자기 중심성’이라는 특징만 보더라도 오랜 세월 인간의 사유가 '나'와 '개인'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흐름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자기 중심성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 성숙한 사회성을 지닌 사람일 지라도 완벽히 벗어나기 쉽지 않다. 사람들은 내가 다른 사람을 보는 시각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전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타인도 옳다고 생각하기 쉽다. 인간이 태생부터 '다름'을 잘 인정하지 못하고 배타성을 띄는 것은 다소 본능적이고 근원적인 성질을 띄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평등주의가 사회 전반의 도덕률이 된 오늘날 '다름'에 다한 사유, 특히 '타자'에 대한 사유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흐름이자 주제일 수밖에 없다. 20세기 초의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인간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 자체를 본질로 보고 이를 경험한 있는 그대로 자세히 기술하여 분석하는 철학 사조) 이후 타자 담론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리투아니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주체보다 우위에 존재하는 개념이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으로서 참상을 겪은 그의 개인적 체험으로 말미암은 사상이기도 했다.
그는 동일자(나) 안에서 타자를 환원해서 사유하는 서양 사상의 주류적 흐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으며, 동일자 안에서 타자를 파악하는 서양 사상의 흐름이 나치즘이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를 만들어 냈다고 보았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타자성을 유지하고 그 타자가 지닌 이질적인 고유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나와는 다른’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야말로 나의 주체성을 이루는 근본이 된다고 여겼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며 느끼는 책임과 의무감은 우리가 윤리적으로 행동하기를 명령하는 신의 흔적과도 같다. 모든 주체성을 가진 ‘나’라는 존재자가 ‘타인에게 나아감’으로써 자기 초월이 이루어질 수 있고, 여기서 타인은 말 그대로 ‘내가 아닌 모든 존재’를 말한다. 그 범위는 ‘타인’은 물론 ‘죽음’이나 ‘자연’ 같은 범위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다.
“나는 강하지만 타인은 약하다. 타인은 가난한 자이며, 과부이고 고아다. ‘질서가 아주 잘 잡힌 자비’를 발명한 것보다 더 위선은 없다. 아니면 타인은 이방인, 적, 권력자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중
이 같은 레비나스의 철학은 내가 아닌 존재인 타자에 대한 주체의 도덕과 윤리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사회의 소수자와 비주류에까지 담론을 확장시킨다. 페미니즘, 이민자, 소수자 등 사회를 이루는 또 다른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의 역사는 오늘날 윤리적 토대 위의 반성과 철학적 사유를 확장시켜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현대미술에서 또한 미시적으로는 타인과 타인과의 관계, 거시적으로는 주체와 사회의 관계를 주요한 주제로 삼아 타자에 관한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선정되어 미술계의 스타로 떠오른 서도호의 작업은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본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지만 민족적 관습과 정서를 유지하면 살았던 유대인들의 상황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고국을 떠난 공동체 집단이나 이주 그 자체를 뜻하는 말로 의미가 확장되었다)를 겪은 작가가 체험한 노매드로서의 문화적 충돌과 그 이질감을 반투명한 집의 형상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한국과 미국 유럽 등을 오가며 그가 살았던 집을 실제 크기와 똑같이 복제하여 나일론 천으로 일일이 손바느질해 설치하기도 하고, 영국 리버풀의 건물 사이에 한옥집을 통째로 날아와 박힌듯한 형상으로 설치하기도 했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로 야기되는 불편함이기도 하고 직접적이고 물리적으로 연계되어 새로운 장소적 관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행동하는 예술가'라 불리는 벨기에 출신 멕시코 작가인 프란시스 알리스의 작업은 보다 직접적이다. 작가는 자신의 시각에서 사각지대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사회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프란시스 알리스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프로젝트성 퍼포먼스를 진행하여 이를 비디오에 담는 식으로 작업한다. 그의 2008년 작업 '지브롤터 항해일지'는 국가와 경계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담았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익숙한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제도적, 인식적 장벽을 치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모순을 지적한다. 13km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프리카를 경계 짓는 지브롤터 해협에서 아이들이 신발로 만든 배 모형을 들고 유럽과 아프리카 양쪽 해안에서 출발해 바다 위 수평선에서 만나도록 하는 이 프로젝트는 관람자에게 신선한 울림을 준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항상 타자와 마주 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많은 작가들이 '너'와 '다름'에 대해 사유하고 그 관계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다만 레비나스가 개인의 절망적 체험 속에서 타자를 사유하였으나 그 사유의 방향이 염세와 비관으로 나아가지 않듯,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자에게로 향하는 방향성 또한 희망과 주체와 타자 사이의 연결 혹은 믿음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앞서 소개한 프란시스 알리스의 대표작 '믿음이 산을 옮길 때'의 작업 내용처럼(페루 리마의 사막에서 500명의 지원자들이 하루 동안 일렬로 줄지어 삽질한 끝에 모래언덕을 10cm 옮기는 데 성공한 퍼포먼스다) 모두가 힘을 합쳐 거대한 모래언덕을 삽으로 옮기는 힘은 우리 안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