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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Oct 19. 2022

타나토스와 언캐니

#9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1995년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된 후 한 TV 쇼에 나와 스스로를 변호하며 했던 이 말은 김영하 작가의 소설 제목으로 쓰였을 정도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발언이다. 도박, 마약, 섹스 스캔들 등 요란하고 화려했던 그녀의 삶은 프로이트가 말한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본능 에로스와 타나토스 중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 충동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초기 정신분석 연구에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인을 에로스와 타나토스로 설명한다. 성적·애착적 욕망인 리비도가 성 본능 혹은 자기 보존적으로 움직일 때 나타나는 에로스와 달리 타나토스는 무기물로 환원되고자 하는 죽음의 본능이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파괴하고 공격하고 싶어 하는 타나토스 충동은 인간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한 축이다. 물론 오늘날의 정신분석학에 와서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을 에로스와 타나토스로 단순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음의 움직임을 큰 범주에서 해석하는데 매우 훌륭한 틀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때때로 추, 혐오, 불쾌, 죽음과 같은 온갖 부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요소에 매료되곤 한다. 특히 오랜 세월 예술 분야에서 죽음은 매혹적인 소재였다. 타나토스적 충동과 더불어 죽음 이후를 예측할 수 없다는 신비로움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상상과 창조를 가능케한다. 16-17 세기 무렵 전 유럽지역을 흑사병이 덮친 후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바니타스 정물화가 유행하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의 의미를 담았던 것이나 수많은 화가들이 죽음의 순간을 포착해 화폭에 담았단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대미술에서 역시 타나토스 충동을 담은 죽음과 폭력의 이미지들은 인기가 많은 소재 중 하나다. 그러나 전하려는 메시지와 의미가 얼마나 온건 한 지와 관련 없이 타나토스적 충동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현방식을 놓고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동시대 미술계의 슈퍼스타 데미안 허스트다.  죽음을 주제로 작업하 그는 동물의 사체나 박제를 그대로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여 동물학대를 자행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를 고수한다는 의심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여러 비판과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나비 9000마리 이상의 나비를 죽인 뒤 이를 접착제로 붙여 작품으로 만든 '사랑의 안과 밖', 나뉜 두 개의 유리 상자 각각에 피 흘리는 소의 머리와 파리를 넣고 관으로 연결한 뒤 죽은 소의 냄새를 감지하고 반대쪽으로 넘어오는 파리가 포충기에 닿아 죽는 과정을 계속 보여주는 설치작품 '천년'은 그 형태와 재료에 대한 충격과 동시에 그 표현방식에 대한 도덕성을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초창기 상어나 양의 시신을 포르말린에 담아 전시해 '죽음'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세를 얻은 데미안 허스트는 실제 인간의 두개골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18세기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두개골을 구매해 백금을 입힌다음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해골 이미지와 현대 사치와 부유함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결합시켜 죽음과 욕망에 대한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그 유골을 훼손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 역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과 충격의 이미지를 선사하며 현대미술을 모르는 사람도 '데미안 허스트'의 이름은 한번 들어봤을 정도로 대중적인 작가가 그이기도 하다.



데미안 허스트, <천년>(1990)(왼)<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오)

 

미국 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 중 하나로 분류되는 안드레 세라노 역시 충격적인 표현방식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다. 주로 종교, 죽음, 섹스의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하는 안드레 세라노의 작업은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를 사진에 그대로 담았다고도 설명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연작 '시체 공시소' 시리즈에서 그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조명을 통해 시체 안치소 내에 보관된 냉동 사체들을 촬영했다. 불에 타 그슬린 시신과 해부된 시신, 에이즈에 감염된 시신, 총에 맞아 죽은 시신 등 사체의 모습을 솜털 하나까지 그대로 담은 사진은 그 자체로 충격적인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그는 체액을 통해 종교의 의미를 새로이 해석했던 것처럼 사체를 통해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죽음의 리얼리티를 일깨운다. 


안드레 세라노, <시체 공시소> 연작, (1992)


 죽음의 이미지와 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감각은 '언캐니 밸리' 이론을 통해 더욱 확장된다. 1906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에른스트 옌치가 처음 소개한 이 개념은 프로이트의 논문 '운 하임리히 Das Unheimlich (1919)'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익숙한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낯섦과 두려움을 뜻하는 이 말은 흔히 로봇 공학자들에게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를 지닌 로봇을 만들고 싶은 로봇공학자들이 로봇을 만들었을 때, 인간을 닮을수록 로봇에 대한 호감은 높아지고 이 닮음의 정도가 과해지면 호감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로봇이 인간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을 때 호감도는 다시 올라간다. 그 과도한 닮음과 구분하기 어려운 재현의 사이 깊은 u자를 그리는 그래프를 '언캐니 밸리(섬뜩함의 계곡)'라고 부른다. 


 인간과 꼭 닮은 인형 예를 들어 서양의 비스크 인형이나 마네킹, 자동인형을 볼 때 우리가 느끼는 다소 불쾌하고 두려운 감각 역시 언캐니로 볼 수 있다. 이 언캐니는 무생물 속에서 보이는 유기물의 환영, 생명 없는 물질에서 느끼는 죽음에 대한 살아있는 자들의 혼란에서 온다. 그리고 이 기이한 감각을 이용한 언캐니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들은 '낯설게 하기' 혹은 '불편하게 하기'의 기법을 사용한다. 그로테스크하거나 섬뜩하고 불편한 이미지를 통해 관람자가 느끼는 감각은 좀 더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다. 여기에는 아브젝트 미술이 보여준 더럽고 추해 보이는 것, 외설적인 이미지나 죽음충동으로부터 촉발된 것처럼 보이는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들과 더불어 낯설고 기괴한 이미지 모두 포함된다. 


아니쉬 카푸어, <스바얌브>, (2007)


 자신의 피를 5년 동안 모아 작가 자신의 얼굴 본을 떠 그 안을 모아둔 피로 채운 마크 퀸의 <자아>나 아니쉬 카푸어의 2007년작 <스바얌브>등의 작품들을 봤을 때 이들 모두 시각적으로 그로테스크의 이미지를 취하고 있으나 각각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르다.  피의 자화상으로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표현한 마크 퀸과 거대한 핏덩어리를 연상시키는 바셀린 덩어리를 통해 자생(bor by itself)을 표현한 아니쉬 카푸어를 같은 범주로 묶는 일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언캐니 한 이미지를 통해 보이는 감각과 세계가 작가가 담은 메시지 이상의 것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이 선하고 좋은 것이라는 옛 관념에서부터 출발한 미술이 인간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모를 그 어떤 분야보다 넓게 끌어안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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