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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Nov 19. 2019

이데아와 미메시스

#1.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동양에서는 솔거, 서양에서는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이야기다. 솔거의 일화는 한국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렇다. 때는 신라시대로 솔거라는 뛰어난 화가가 있었는데 그의 명성을 들은 임금님이 그에게 황룡사의 벽화를 의뢰하게 된다. 그는 황룡사 벽에 "노송도(老松圖)", 그러니까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를 그렸단다. 이 소나무 그림을 본 새들은 그림을 나무로 착각하여 가지에 앉기 위해 벽으로 돌진을 감행하게 되고, 중력과 가속도를 이기지 못한 수많은 새들이 벽에 부딪혀 연쇄 사망한다는 새의 입장에서는 다소 끔찍한 얘기다.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고대 그리스에 그림 그리는 재주로 자웅을 겨루는 화가 둘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이 바로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였다. 그중 제욱시스는 한국의 솔거 못지않은 살조마(殺鳥魔)였는데 그의 주된 무기는 소나무가 아니라 포도넝쿨이었다. 제욱시스는 자신의 라이벌인 파라시오스와 누가 더 그림을 잘 그리나를 놓고 내기를 했고 결전의 날 당당히 자신의 포도넝쿨 그림을 선보인다. 그러자 포도넝쿨을 진짜로 착각한 배고픈 참새 한 마리가 그의 그림으로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장렬히 산화한다. 이를 본 파라시오스는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며 패기 있게 제욱시스를 자신의 그림 앞으로 데려간다. 대체 파라시오스가 어떤 그림으로 자신을 놀라게 할 것인가 가슴을 졸이며 그림을 씌운 천을 걷으려던 제욱시스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마는데... 그가 걷으려던 장막 자체가 바로 그림이었던 것이다! 제욱시스는 "나는 참새의 눈을 속였지만 자네는 그 화가를 속였으니 자네가 이겼네"라고 쿨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대인배의 풍모를 자랑했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이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대중들에게 콩라인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동·서양에 모두 존재하는 다른 듯 비슷한 이 이야기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오랜 세월 미술의 목표는 '재현(再現)'에 있었다. 어떤 사물의 특징과 본질들을 모아 환영과도 같은 효과를 일으켜 마치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경지. 여기서의 재현은 단순히 외적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눈속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솔거나 파라시오스 때의 재현은 좀 더 본질적이고 이상적인 미를 세상에 내놓는 일을 말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미'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 '아름다움'에 대한 최초의 사유들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조형 예술의 미적 목표에 대한 여러 사유들은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의 그리스에서부터 이미 꽃을 피우고 있었고, 서양 철학의 조상님인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의 대한 사유와 함께 '미(美)'에 대해서도 사유했다. 때로는 '좋은 것'이나 '선한 것' 때로는 '즐거운 것(快)'으로 여겨졌던 아름다움의 정의를 보다 종합적으로 체계화해 다룬 이들은 그리스 철학의 끝판왕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였다.


  플라톤은 '세상을 이루는 진리' 혹은 '본질'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를 '이데아(idea)'라 명명했다. '이데아'는 플라톤 철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개념이다. 그는 '동굴의 비유'라는 비유를 들어 이데아를 설명했는데, 이야기를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태어나서부터 동굴에 갇혀 벽 쪽으로만 시선이 갈 수 있게 몸을 고정시켜 놓은 죄수들이 있다고 치자. 이 동굴에는 별다른 조명시설이 없었고, 죄수들은 오직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에만 의지해 앞만 보고 살아왔다. 그들은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만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는데, 어느 날 죄수들 중 한 명이 석방되어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처음 보는 빛을 보고 "이것이 바로 진짜 세상이구나"라는 큰 깨달음을 얻어 동굴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전한다. 하지만 '진짜 세상'이 존재한다는 죄수의 말을 동료들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밖으로 나간 죄수에게서 약간의 선민의식이 느껴지는(?) 이 이야기에서 동굴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상이며, 그림자는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동굴 바깥세상은 '이데아' 즉 본질에 빗댈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한 신념은 매우 확고해서 그의 철학의 기반은 이 이데아로부터 존재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의 인식 바깥에 '참된 실재'인 이데아가 존재하는 마당에 현실세계의 물질적인 것, 외연적인 것은 그에게 부차적인 종류였다. 때문에 플라톤은 이 부차적인 현실세계를 다시 '모방'한 회화나 조각 같은 것들은 한 단계 더 낮은 종류(!)라고 생각했다. 이데아의 모방이 현실세계인데 이 현실세계를 모방한 예술은 모방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대신 그는 좀 더 정신적인 것, 이상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 여기고 더 찬양했다.

 

 "그것은 지상의 미들을 유일한 계단으로 이용하여 첫 계단에서 두 번째 계단으로, 두 번째 계단에서 모든 아름다운 물질적 형식들에게로, 아름다운 물질적 형식들로부터 아름다운 실제들에게로, 아름다운 실제들로부터 아름다운 학문들에게로, 그리고 아름다운 학문으로부터 내가 말했던 학문, 즉 절대적 미 이외에는 다른 대상이 없는 학문에 도달할 때까지 올라가서 마침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 바로 절대적 미를 관조하면서 인간이 살아가야 할 만물 위의 삶인 것입니다."

* 플라톤 <향연> 中 (타타르키비츠 미학사 : 고대 미학, 2005. 4. 20., W. 타타르키비츠, 손효주)


('너무나 아름다운 삼각형' 등과 같은 문과 출신들은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이과 출신들의 미적 감각론의 시초는 플라톤임이 이로써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메시스(mimesis)' 개념을 미학사에 편입시킨 최초의 사람이었다. 플라톤 이전까지 사람들은 사물을 똑같은 형상으로 옮겨오는데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르카익 미소'로 유명한 다소 경직된 얼굴의 조형예술이 대세이던 시대에서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고전기(B.C 480 ~323년)에 들어서면 보다 생생하고 사실적인 조형 예술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처럼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조각가들이 등장하는 이 시대에 플라톤은 시대에 발맞춘 독창적인 미학적 사유를 내놓는다. 그는 '모방하는 예술'에 관심을 두었고, 이를 '창조하는 예술'과 구분 지었다. 그리고 예술에 "자유, 개성, 독창성은 필요 없다"는 현대의 예술관과 매우 괴리감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무슨 말인고하니 화가가 사과라는 사물을 묘사한다고 했을 때 화가는 결코 '본질적인 사과'를 볼 수 없고, 오직 자신이 인식한 사과의 본질적 '이미지'를 그려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상적인 미는 '이데아'로서 존재하고 화가는 자신의 주관 없이 그저 진리의 사과를 똑같이 '모방해야'(mimesis) 한다는 거다.


 아리스토텔레스 경우는 플라톤처럼 이렇게 극단적으로 예술의 목표를 정의 내리지 않았다. 그는 스승보다 이 '미메시스(mimesis)'의 개념을 좀 더 밀도 있게 사용했다. 실제로 '미메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 미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회화, 조각, 음악, 문학 등을 최초로 오늘날의 순수예술 개념으로 분류한(완벽하게 현재의 개념으로 분류한 것은 아니었지만) 철학자였다. 그는 이런 예술분야들을 통해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연을 모방하거나 자연이 할 수 없는 것을 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방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닌 본능적인 행위이며 모방 행위는 인간의 '행복'에 기여한다. 플라톤이 예술을 이데아를 모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과 달리 '모방하는 행위 자체'가 자연스러운 인간의 충동이라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미메시스'는 특정한 현상이나 피사체를 모사하는 것이 아닌 보다 능동적인 '모방'을 뜻했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린가 싶은 이들을 위해 예를 들자면 이렇다. 예술가가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고 할 때, 무용수들은 폴짝폴짝 빠르게 뛰어다니며 춤을 출 수도 있고 화가들은 분홍, 노랑, 연두색 등의 색조로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무형의 언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비슷한 감정과 느낌으로 전달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춤이나 그림들은 아리스토텔레스식 '미메시스'를 통한 결과물들이다. 더 거칠게 얘기하면 시청자들이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보며 불륜커플에게 느낀 격렬한 분노는 자연 속의 감정인 '분노'를 능동적으로 모방한 산물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같은 미학은 서양 미학의 가장 중요한 근간 중 하나였으며, 이후 플라톤과 함께 그리스 미학의 양대산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살아있는 새를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생생하고 생동감 넘치는 존재의 표현, 혹은 가장 '이상적인 미(美)'를 현실세계에 소환시키기 위한 작업은 고전 미학의 정립 이후로 오랜 세월 미술의 본질인 것처럼 여겨졌다.  용의 눈동자를 찍었더니 용이 승천했다거나 미인이 되살아 났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들이 예술가의 뛰어남을 증명하듯 전해 내려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제욱시스보다 더 유명하고 신화적인 인물인 '피그말리온'의 예를 보라. 그는 현실의 여자 사람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조각을 이상형으로 사랑한 끝에 여신의 축복을 얻어  진짜 사람이 된 자신의 조각 갈라테이아(실제 조각의 이름이 갈라테이아였는지는 불명이라 한다. 후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와 결혼에 골인한다. 시대를 앞서간 성덕이었던 피그말리온은 예술가를 소우주를 창조하는 조물주에 비견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이는 단순히 '똑같이 보고 그린다'는 개념을 넘어선 '재현'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물론 각종 기계와 기술로 손가락 운동 한 번이면 실제와 똑같은 형상을 수십수백 건씩 복사해 내는 오늘날에 와서 '재현'은 미술이라는 체계를 이루고 있는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현은 미술(美術)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누구든 맨 처음 연필로 선을 그으며 무언가를 따라 그렸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충동으로 시작했을 수도 있고, 학교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리는 행위'를 시작했을 때 무언가를 '따라'한 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매우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미(美)'의 문제가 이제 진리의 문제라기보다 선호의 문제가 된 오늘날, 무엇이 되었든 간에 중요한 점은 우리의 시작점이 여기서부터 라는 사실이다. 미술사에서 전개된 수많은 개념과 기법과 현상들 사이를 지나 '현대 미술'의 수많은 갈래들이 생기고 나뉘었지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같은 케케묵은 격언이 여전히 힘을 가지는 근원적 은 결국 모방과 재현이라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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