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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을 Jan 27. 2022

서울을 좋아하지만, 가는 것은 힘들어요


경기러에게 서울은 결코 쉬운 목적지가 아니다. 집에서 목적지까지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어야 그나마 ‘갈 만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리에 해당한다. 환승하는 것도 조금은 힘에 부친다. 두어 번쯤 환승해야 한다면, 그때부터는 외출이 아니라 여행이다. 왜,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travel의 어원이 고생, 고행에서 왔다지 않는가.


신도림이나 신길, 노량진 등에서 환승하고 나면 고행길의 시작이다. 땅속 깊은 곳만을 도는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오랜 시간 이동한다는 것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그래서 몇 가지 방침을 정하기로 했다. 일찍 나갈 것. 2호선은 최대한 이용하지 않을 것. 차라리 조금 더 걸을 것. 9호선 급행은 이용하지 않을 것 등등. 모두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이 방침은 20대 초반에 생겼다. 내 이동 범위와 출몰 지역이 동네를 넘어 서울까지 확장된 시기와 일치한다. 특히 서강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회사에 다녔던 시절의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출근길 합정역에서 나도 모르게 ‘내려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던 것. 심지어 열리는 문 반대편 끝자락에 매미처럼 딱 붙어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는 영락없이 플랫폼에 덩그러니 놓인 상태였다. 


길 잃은 어린양이 되어 방황하기를 여러 차례. 나는 결국 상대적으로 덜 북적이는 신길역까지 가서 두 번의 환승을 거쳐 대흥역에 이르는 루트를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겠지. 그렇게까지 돌아가는 게 더 힘들겠다고. 환승도 싫었지만, 사람들에게 치이는 것이 훨씬 힘들었다. 여기에 자발적인 오전 8시 출근, 오후 8시 퇴근이라는 나만의 근무 시간도 완성해 이너피스 사이클을 구축하기까지 했다. 선배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주제에 왜 매일 야근하냐며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도 출퇴근 시간 전철을 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직업 특성상 종종 서울 한복판에서 모여 출장을 가는 일이 있는데, 그런 날이라면 아예 밤을 새우는 쪽을 택한다. 첫차를 타고 나와서는 일찍 여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진한 커피를 마신다. 어차피 야행성으로 살아온 삶이기에, 어설프게 두어 시간 자는 것보다는 새벽까지 일하다가 길을 나서는 쪽이 더 편하다. 그러잖아도 큰 카메라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출장.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도 되는 전철을 타고 편하게 서울까지 나가는 방법이다. 잠은 버스나 기차에서 자면 된다.


그나마 1호선은 참아줄 만하다. 1호선의 절반가량이 지상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답답함이 덜하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그중에서도 노량진역과 용산역 사이의 한강철교는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책을 읽다가도, 유튜브로 영상을 보다가도 한강철교에 들어서는 그 순간만큼은 일시 정지다. 해 뜨는 시간대라면 더 그렇다. 동쪽에서 쏟아지는 햇볕이 창문을 넘어 삭막한 객차 내부를 반짝이는 게 어찌나 평화로운지. 지하화가 논의되고 있다고 하는데, 일부 구간만큼은 남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서울에도 낭만이라는 게 조금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서울에 나가는 방법 중에서 제일 빠르고 편안한 것이 전철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위치를 정할 수 있는 약속은 거의 1호선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영등포, 용산, 시청역 정도가 그렇다. 마지노선은 1시간 거리인 종각역이다. 여유가 있을 때는 시청역에서 내려 2호선 라인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다. 비나 눈이 내려도 지하도가 연결되어 있어서 편하다. 지하에 있는 비밀 통로를 지나고 있는 느낌이 재미있기도 하다. 그러니 나와 약속을 잡으려거든 1호선 종각 서쪽으로 고려해주기를. 

가끔 혹자가 묻는다. 그럴 거면 그냥 서울에서 사는 게 어떻겠냐고. 

누가 그걸 몰라서 경기도에 삽니까.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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