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삼국 중 한 곳쯤은 들려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갑작스럽게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향하게 됐다.

by 밍영잉


바로 바르샤바로 향하자니 뭔가 아쉬웠다.

헬싱키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하는 길은 발트삼국을 꼭 거쳐야 했다.

*발트삼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그렇게 갑작스럽게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향하게 됐다.

발트삼국 중 한 곳쯤은 들려야 하지 않겠나!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 듣고 느끼기로 한 여행이니까.


탈린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다였다.

북쪽으로 펼쳐진 발트해의 바닷바람은 짭조름하면서도 시원했다.

올드타운은 중세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니 층층이 겹친 붉은 기와지붕과 뾰족하게 솟은 첨탑이 두 눈에 가득 찼다.

바닷바람이 좁은 골목과 성곽 사이를 누비며 오래된 돌벽에 부딪혔다.

탈린의 심장과 같은 올드타운이었다.


이제야 탈린이 어떤 곳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도를 펼쳐보면 탈린은 발트 삼국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이어진다.

세 나라 모두 소련의 그림자 속에서 긴 시간을 견뎠고

1991년 비슷한 시기에 독립을 되찾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발트 3국은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린다.


탈린은 그저 유럽의 작은 항구 도시가 아니라

북쪽의 바다를 통해 수세기 동안 물자와 문화가 오간 통로였다.

좁은 자갈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마치 중세 상인이나 장인들이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았다.

특히 시청 광장에 서면 이 도시가 한때는 북유럽 한자동맹의 요충지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편으로 탈린의 역사는 늘 전쟁과 누군가의 지배 아래 있었다.

덴마크, 독일, 스웨덴, 러시아가 차례로 이곳을 지배했고

그 흔적이 지금도 건축물과 거리 곳곳에 남아 있었다.

성 니콜라스 교회, 알렉산더 네프스키 대성당 같은 건물은 동서유럽 문화가 이곳에서 어떻게 뒤섞였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동시에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언어와 노래를 지켜내며 살았다고 한다.

‘노래하는 혁명’으로 불리는 20세기말의 평화적 독립운동은 이 작은 나라가 얼마나 강한 정체성을 지녔는 지를 증명한다.


탈린에서 머문 시간은 딱 1박이었다.

이번 배낭여행을 통틀어 가장 짧은 체류기간,

사실 나는 탈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사전정보 없이 방문한 탈린은 왠지 모르게 관광지인 올드타운이 전부이며

꽤나 낙후된 곳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종일 비가 오고 배낭이 모두 젖었지만 탈린의 오묘한 분위기와 구석구석 스민 역사의 흔적을 만끽하며 하루를 충만하게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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