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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친구집에서 바베큐 파티

그리고 드디어 방한 옷가지 마련

by 밍영잉

때가 됐다


9월의 카잔.

러시아 중부에서 이 계절을 버티기엔

내 배낭 속 옷들이 너무 얇다.


마샬이 빌려준 보라색 패딩 덕분에

며칠을 그럭저럭 버텼지만

언제까지 마샬의 옷으로

연명할 순 없었다.


결국 쇼핑을 결심했다.


목적지는 이케아가 입점해 있다는 대형 쇼핑몰.

막상 도착해보니

옷가게 하나하나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가게에서

어느새 한참을 보내버렸다.


결국 내 손에 들린 건

분홍색 라이트 패딩.

언제든 구겨서 배낭에 넣을 수 있고,

무게도 부담 없고,

추위도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는,

그 시점에서 내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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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귀걸이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 한짝을 잃어버렸다.) / 러시아 한정 에디션 하나 사올 걸 그랬다.



아델의 바베큐 파티


마샬의 집에서 친구 여러명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마샬의 친구 중 경찰서에서 근무한다는 아델

자연스레 대화를 나눴다.


“민영! 우리 집에 놀러 올래?

내일 바베큐 파티 해!

고기도 굽고, 맥주도 있고, 맛있는 것도 잔뜩 있어.

다른 친구들도 올 건데 그냥 다같이 자고 가~!!”


“오~ 스파씨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쇼핑을 마칠 즈음,

마샬이 쇼핑몰 앞으로 차를 몰고 와 나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어둑어둑해진 도시를 지나

차로 30분 정도 달려

카잔 외곽의 조용한 주택 단지에 도착했다.


아델의 집은 내 로망 하우스에 가까웠다.

마당 한가운데엔 수영장이 있었고

그 옆에는 바베큐를 위한 풀세트 그릴 장비들이

차곡차곡 준비되어 있었다.

통나무로 지어진 따뜻한 집 지붕 위에는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한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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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였지만

우리는 불 앞에 모여 열띤 수다를 시작했다.

아델은 우리를 위해 마당에서 고기를 구웠고

우리는 아델이 심심하지 않도록 주위를 둘러싸고

수다에 수다를 얹었다.


언제나 그렇듯

러시아어 교실이 또 열렸다.

이번엔 러시아식 필수 슬랭까지 마스터했다.


“고마워… 얘들아…ㅎ”

어디가서 써먹기는 힘들지 않을까.


고기가 익길 기다리다가

야채를 굽던 그릴 위에

바나나를 하나 턱 올렸다.


“얘들아, 한국에선 바나나 꼭 구워 먹어.

전통 방식이랄까?”


“헐, 진짜??”


다 구운 바나나를 먹기 좋게 잘라

입에 넣어주고 나서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장난이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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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리에서 유일한 여자 친구는 마리아였다.

그녀는 항상 자기가 막내였는데 오늘은 내가 막내라며

엄청 신난 얼굴로 말했다.


밤이 깊어갈 무렵,

우리는 다음 날 아침 함께 블린(러시아식 팬케이크)을 만들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안데스와 마리아, 나 셋이서

끝없는 수다를 이어갔다.


창 밖엔 별이 쏟아질 듯 떠있었고

내 마음엔 새로운 도시의 추억이

이렇게 또 쌓이고 있었다.


20170923_000534.jpg 마리아가 한국 과자라며 꺼낸 초코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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